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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19. 백 가지도 넘는 핑계를 대고 도망치던 그대에게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19. 백 가지도 넘는 핑계를 대고 도망치던 그대에게

건방진방랑자 2021. 2. 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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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가지도 넘는 핑계를 대고 도망치던 그대에게

 

 

한참을 걸어 4시가 되었는데 아직도 영광 9km’라지 않은가. 아직도 2시간 반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는 말씀되시겠다. 이미 몸은 지쳤는데 갈 길이 멀다.

 

 

 

 

 

내일 신림에 가기 위해 오늘은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래서 가는 도중에 마을이 보이면 마을 회관 같은 곳에서 하루 묵고 갈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오늘 못 간만큼 내일은 고창까지 36km, 거기에 신림까진 4km를 더 가야 한다. 내일 도착지를 이미 마음속으로 정했으니, 오늘 편한 만큼 내일은 그만큼 더 고생하게 될 게 뻔했다. 이거 은근히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라는 식의 일반적인 성공담 같은 뉘앙스의 말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라는 뉘앙스의 말이 아니라, 그저 내일까지 가야할 목적지가 분명한 만큼 지금은 서둘러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맘을 먹은 이상 내일까지는 무리한 목표일지라도 한 번 해보고 모레부턴 다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갈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걸어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는 물집이 되기 전의 작은 공기층이 발바닥 앞 쪽에 생겼었는데 오늘은 결국 물집이 되고 말았다. 걸을 때마다 발 앞쪽이 닿으면 찌릿찌릿 통증이 온다. 그런데 지금은 통증이 온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럴 땐 확실히 사람이 강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목표에 따라 자신의 몸 상태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기적일 때만 유용한 것일 뿐, 긴 인생의 안목으로 보자면 더 큰 손해를 낳는다.

 

 

▲ 영광에서 신림까지 33km를 걸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걷지 못하면 내일은 정말 최악의 날이 될 거다.

 

 

 

백 가지도 넘는 핑계 대고 도망친 그대에게

 

그때 불현듯 사람들은 막상 떠나고 싶은 맘이 절실한데도 그걸 실행하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해도 막상 떠나기로 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길을 떠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길을 잃거나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이렇게 떠나려 하는 게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지 하는 불안함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면 애초에 맘먹었던 생각들도 비현실적이라 치부하며 그만두게 된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 해야 하는 일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법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들이 핑계이진 않을까? 그런 식으로 자신의 다양한 가능성을 거세하고 길들어가는 건 아닐까?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에서 강마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음에도 제대로 연습하지 못하는 단원들을 보며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백 가지도 넘는 핑계 대고 도망친 겁니다. 여러분들은~ (ep 4)”이라고 일갈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내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지금껏 그런 핑계를 대며 나를 억누르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이유보다 할 수 없는 핑계가 언제나 많았다.

 

 

▲ 수많은 해야 하지 않아야 할 이유로 도망가던 사람들에게 강마에는 질타한다.

 

 

그러던 내가 드디어 첫 발을 뗀 것이다. 온갖 핑계로 하지 못하던 일을 드디어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도망만 치던 내가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이렇게 막상 떠나고 보니 그간에 괜한 고민들만 많았다는 것을 느꼈다.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정말 그랬다. 모든 일이 현실로 닥치면 저절로 하게 된다. 내 몸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일은 술술 풀린다. 바로 그런 간절함, 절실함이 문제였던 거다. 어떤 일이든 계획만 하고 실천하지 못할 때, 그걸 막는 현실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맘 속에 간절함, 절실함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이제 간절함으로 절실함으로 살아간다.

 

 

 

간절함으로 현실을 살아보자

 

이런 논리로 현장인문학(현장인문학의 자세한 이야기는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 고병권의 추방과 탈주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에 접근해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현장 인문학은 지식의 확고함, 이론의 정확성을 일반인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에 있지 않다. 얼마나 나와는 다른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절실한 마음이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장애인들을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화성간척사업으로 쫓겨난 대추리 주민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함께 하며 용산 철거민들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그건 그들의 마음을 이성적으로 공감하려는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한 순간의 공감은 진심이 아닌 그러는 척하는 가식에 다름 아니다. 이성적인 이해보다 온 몸으로 절실히 느끼고 공감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으로 현장인문학에 임할 때 우리는 어느새 같이 아픔에 동참하며 공부를 통해 생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건 바로 그거다. 머리로만 재지 말고 절실함으로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자는 것.

 

 

▲ 넌지시가 아닌 현장에 들어가 함께 호흡하며 공감해야 한다.

 

 

 

도민체육대회를 하는 영광에서 여관 잡기와 싼 여관 찾는 법

 

발바닥이 욱신욱신하고 무릎도 점차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힘을 내서 걷고 또 걸었다.

5시가 넘어가니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해가 진 다음에 걷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좀 더 속도를 냈다. 615분이 되어서야 영광 시내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오늘부터 전남도민체육대회라지 않은가. 시내 진입로부터 도민 체육대회를 알리는 현수막과 시설물들이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었다. 그건 곧 숙소들도 꽉꽉 찼을 거란 얘기고 당연히 값도 비쌀 거라는 얘기다. 두둥~ 어찌하여 이런 고난을 주시나이까^^

영광은 무안보다 훨씬 컸다. 여기 저기 모텔들도 많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림의 떡이었다. 새 건물이었고 엄청 좋아보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한참 돌아다니다가 제일 허름한 곳을 찾았다. 다행히도 이곳은 처음부터 25.000원을 부른다. 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5000원을 더 깎아달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그렇지 않아도 도민체전으로 모든 숙소가 다 찼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계산을 했다. 아깝다~ 다른 때 같았으면 더 깎을 수 있었을 텐데. 여관에 제 돈을 주고 들어가는 건 왜 그리 돈이 아깝던지ㅠㅠ

 

 

▲ 하필이면 오늘부터 체육대회 시즌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텔을 이용하다 보니, 깎을 수가 없다.

 

 

어제 오늘 모텔을 두 번 잡아보니 나름대로 요령이 생기더라. 모텔이라고 다 같은 모텔은 아니다. 돈이 넉넉하다면야 좋은 모텔에 들어가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아끼고 싶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우선 근처에도 가볼 필요가 없는 모텔은 건물장식이 호화롭고 깔끔한 전형적인 러브호텔풍 건물이다. 이런 곳은 십중팔구 비싸다. 그 다음은 자동차 주차장이 잘 정비되어 있고 자동차 표지판을 가려주는 모텔들이다. 건물이 좀 안 좋더라도 비쌀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싼 곳은 예전으로 치자면 여관을 찾는 것인데 온천마크가 그려진 곳들이 바로 그런 곳이다. 건물도 허름하고 굴뚝도 달린 그런 곳 말이다. 이런 곳이면 적당히 흥정도 가능하다. 여관은 국토종단자에게 있어 그저 잠자기 위한 곳일 뿐이다. 고로 이곳에 돈을 많이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이런 곳에서 아낄 수 있어야 베스트 여행자(베스트 드라이버에서 착안한 신조어^^) 축에 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비야씨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여행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난 그 분의 꼬랑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인데, 어찌 금방 뛸 수 있기를 바랄 쏘냐^^

 

 

 

지출내역

 

내용

금액

김밥

2.000

점심

6.000

여관비

25.000

총합

33.000

 

 

인용

목차

사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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