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인숙에서 처음 자며, 최악의 경험을 하다
원랜 점심을 식당에 들어가 제대로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오전의 헤맴로 입맛마저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걷는 길에 찐빵집이 보이자, 그걸로 점심을 대신하기로 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온 터라 그 정도로도 진수성찬이란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 구하기를 실패하다
오후엔 걸음걸이에 그다지 감흥이 실리지 않더라. 마지못해 행군하는 군인처럼 무거워진 발걸음을 떼었다. 더욱이 4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더라. 생각조차 멈춰버린, 그래서 맹목적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엔 나도 없었고 풍경도 없었다.
어제 교회에서 신세를 지고 나니까 여관에서 자는 게 이래저래 최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니 여행의 의미가 반감되기도 하고 돈도 깨지며 잠도 깊게 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마을회관에서 잘 수 있도록 시도해보려 한다. 5시 전까지는 마을회관이 꽤 보였다. 하지만 정읍에도 도착하지 않았고 시간도 많이 남아서 그냥 걸었던 거다. 하지만 막상 5시가 넘어 찾으려 하니 마을회관도 교회도 보이지 않더라. 이게 뭐니? 꼭 맘먹고 찾으려 하면 나오지 않는단 말이지. 평소엔 택시도 흔하다가 막상 잡으려 하면 택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는 수없이 꾹 참고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덧 정읍 시내에 도착하더라. 보이는 교회는 모조리 들렸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건 뭐 약속이나 한 듯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머피의 법칙’이 제대로 적용되는 날인 건가?
여인숙의 꺼림칙한 경험
한참을 걸어 시내 쪽에 진입하니 여인숙이 보이더라. 지금껏 지나온 마을엔 여관만 있던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여인숙을 봤다. 무안에 갔을 때 여인숙이 싸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어찌나 반갑던지. 그래서 바로 들어갔다. 20,000원을 불렀고 18,000원으로 깎았다. 그때 쾌재를 불렀다. 왠지 돈을 번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을 보지도 않고 무작정 계산부터 한 것은 매우 경솔한 행동이었다. 방엔 창틀만 있고 창문도 없이 커튼이 쳐져 있었고 장판과 도배지는 누리끼리한 게 폐가의 그것과 같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곰팡이 선 냄새가 진동했다. 방엔 티비 한 대와 침대 하나가 있었는데, 오래되어 망가진 티비는 켜지지도 않았으며, 침대는 나무를 덧대어 골격만 갖추고 오래된 매트를 얹어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 위에 전기장판이 놓여 있는데 습기에 오래 노출된 장판에선 칙칙한 냄새가 날 정도였다. 과연 켜지기는 할까? 그 위엔 요와 이불이 놓여 있는데 과연 여기서 묵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다른 여관에서는 이렇게까지 찝찝한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는데, 여긴 방의 꺼림칙한 기운 탓인지 있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뜨거운 물이라도 콸콸 나와 몸이라도 개운하게 씻을 수 있다면 방이 어떻든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주인집 세면장을 같이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들어갔다. 욕실도 어쩜 그리 허술하게 생겼던지. 내 눈이 여행을 하면서 너무 높아진 건가? 뜨거운 물이 잘 나오길 기대하며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는가 싶더니 곧 차가워지더라. 이게 뭥미? 그래서 결국 족욕도 못하고 양말만 차가운 물에 빨고 대충 씻고 나와야 했다. 이로써 하나 깨달았다. 싼 게 비지떡이다~ 호강하려고 여행한 게 아닌 이상, 이런 경험도 꼭 나쁜 것만은 않을 것이다. 단지 오늘 이래저래 힘들었던 만큼 푹 쉴 수 있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오늘은 깊이 자긴 글렀다. 그래도 잠은 자야 하니 나에게 자장가라도 불러줘야겠다. 그리고 정읍으로 오는 도중에 지도까지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있었다. 그래서 기분 참 이래저래 ‘거시기’하다. 아침엔 기분이 최상이었는데, 낮부터 급전직하하다가 밤엔 완전히 넋다운 되었다. 이래서 인생은 모르는 거다.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찐빵 |
2.000원 |
저녁 |
4.000원 |
여인숙 |
18.000원 |
총합 |
24.000원 |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년 국토종단 - 27. 김제평야와 KTX에 알알이 박힌 역사 (0) | 2021.02.05 |
---|---|
2009년 국토종단 - 26. 여인숙에서 자며 여행의 관점이 바뀌다[정읍⇒김제](09.04.24.금) (0) | 2021.02.05 |
2009년 국토종단 - 24. 생각지 못한 헤맴, 그 속에 담긴 일장일단 (0) | 2021.02.05 |
2009년 국토종단 - 23. 고창 신림교회에서 맞이한 아침[고창신림⇒정읍](09.04.23.목) (0) | 2021.02.05 |
2009년 국토종단 - 22. 제2의 고향, 고창신림교회에서 다시 묵다 (0) | 2021.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