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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24. 생각지 못한 헤맴, 그 속에 담긴 일장일단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24. 생각지 못한 헤맴, 그 속에 담긴 일장일단

건방진방랑자 2021. 2. 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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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한 헤맴, 그 속에 담긴 일장일단

 

 

새벽기도에 참여해야 하기에 일찍 일어났음에도 몸은 활기찼고, 목사님과 함께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니 맘은 가벼웠으며,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 배는 불렀다. 이 기분 그대로 오늘은 참 즐거운 여행이 될 것만 같다.

 

 

▲ 밥도 배불리 먹었고, 오랜만에 사람의 정도 듬뿍 맛봤다. 고로 이제 신나게 출발하면 된다.

 

 

 

짧은 거리가 길어진 사연

 

아침에 가는 길은 익숙한 길이다. 교생실습 때 매번 다녔던 길로 중학교 아이들과 나름 친해져서 함께 재잘거리며 등하교를 했기 때문이다. 이 길이야말로 빠르게만 변해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시대에 하나도 바뀐 게 없는 길이었다. 일반도로라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한적했고, 3년 전의 감흥이 그대로 느껴져 정말 좋았다. 더욱이 어제 국도를 거닐며 한껏 힘들어했던 탓인지 한적한 길을 걷는 기분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던 것 같다.

신림중학교까지는 가던 식으로 가면 됐고, 그 다음부턴 가본 적이 없으니 지도를 계속 살펴보며 걸었다. 708번 지방도를 타야 하기에 그곳이 어디인지 놓치지 않으려 계속 직진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708번 지방도가 나왔고, ‘역시 맞게 잘 왔구나라는 안도감으로 걷기 시작했다. 계속 가다 보니, 저 멀리 호수 같은 게 보이더라. 지도엔 호수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 불안하긴 했다. 그럼에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눈앞에 보이는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쉬고 일어나 좀 더 걷다 보니, 4차선의 국도가 보이더라. 그걸 보는 순간 아까 전까지 들었던 의심은 확 걷히고, ‘저기야말로 1번 국도구나라고 쾌재를 불렀다. 이미 시간은 12시가 넘어가고 있었기에, 저 도로를 타고 걷다가 첫 번째로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부터 지도를 보며 ‘708 도로를 따라가다가 1번 국도를 타고 정읍에 간다는 식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터라,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 별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 교회이니, 위와 같은 경로로 가서 1번 국도에 안착했을 거라 상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4차선 국도에 올라서서 이정표를 보니 여전히 23번 국도라지 않은가? 하지만 그 순간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꼬이고 잘못됐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는 분명히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순간에도 내가 22번 국도에 있다(흥덕 부근이라 생각했음)’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니 어제 신림교회로 향하는 길에서 봤던 건물이 다시 나오는 게 아닌가. 아무리 우리나라 건물이 무개성적으로 천편일률적으로 생겼다 해도 그건 단순히 비슷한 정도를 넘어 완전히 똑같았으니 문제였다. 허걱! 그제야 모든 게 명확해졌다. 나는 708 국도를 타긴 했지만,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고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708을 따라 남하하여 신림저수지를 지나고 다시 23번 국도로 가게 된 것이다. 모든 게 명확해지는 순간 온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지라는 노래가사처럼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어졌다. 오전 내내 걸은 모든 게 헛수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황당한 이유로 정읍까지 가는 길은 엄청 길어졌다.

 

 

▲ 그런데 실제론 북쪽으로 가야 할 것을 남쪽으로 향하는 바람에 한 바퀴 도는 상황이 된 것이다. 으아아악~~~~~

 

 

 

내 생각과 같지 않을 때 좌절하지 않으려면

 

더 이상 걷고 싶은 마음도, 점심을 먹고 싶은 생각도 모두 사라졌다. 어젠 국도에 된통 당하고 오늘은 지방도에 된통 당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도 보는 게 서툴고 이제 초보 여행자다보니 당연한 실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같은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건 죽기보다도 싫은거였다. 흔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매우 커서 이대로 국토종단을 그만 둘까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양발의 복숭아뼈가 찔리듯 아팠다. 그래서 빨리 걸을 수도 없었고 절뚝절뚝거리며 걸어야만 했다. ‘여행한 지 4일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이러면 나중엔 아예 못 걷게 되는 거 아냐?’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걷는 것 자체는 좋은데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서 땅을 디딜 때마다 찌릿찌릿 통증이 오고 복숭아뼈 있는 곳은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프기까지 하니, 이래저래 참 힘이 들더라.

 

 

▲ 오전에 갈 때만해도 이렇게 힘차게 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23번 국도에 올라 얼마 걷지 않으니, 역시나 신림교회가 저 멀리 보인다. 이미 그 상황을 알고 있었음에도 눈에 보이는 순간 한숨부터 나왔다.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나 자신을 절벽으로 몰아넣으며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 후회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분명히 어제 걸었던 이 길은 목적지를 눈앞에 둔 기쁨과 환희의 길이었지만, 지금 걷는 이 길은 헛수고를 감내하며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저주와 비관의 길이었으니 말이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도로는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몸도 오전에 비하면 한층 무거워져 있었다.

그때 잠시 ! 그냥 오늘도 신림교회에서 하루 더 머물까?’라는 생각까지 들더라.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했겠냐 만은 그땐 그랬다. 정말이지 같은 길을 다시 걷고 싶은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건 아니지? 아무튼 그때부터 주저리 주저리 혼잣말로 내 자신을 타이르며 그런 잡념들을 떼쳐내려 노력했다.

이런 상황에선 군대의 명언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적격이다. 진정한 여행은 이런 극도의 상황(?)에 몰렸을 때 주저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며 그런 중에도 여유를 찾아야 하는 걸 테다. 모든 일에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고 ‘+’‘-’가 늘 함께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일엔 어떤 ‘+’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걸어야만 한다. 그렇게 맘먹었는데도 걷다가 지칠 때면 아까 그런 실수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은 어디쯤일 텐데...’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더라. 그건 나의 이성이 아닌 몸이 보내는 자연스런 후회였다. 그래서 사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막상 그런 상황에 닥쳤을 때의 행동은 이렇게도 다르니 말이다. 그런 후회들이 부질없다는 걸 알고 그런 실수를 통해 지도 보는 법도 익혔으며 걷는 즐거움을 만끽했다는 걸 아는 데도 그런 건 다 묻히고 낭비된 시간만 머리에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을 통해 내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알 수 있었고, 그렇기에 예측치 못한 상황들을 많이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는 것 자체가 언제나 예측치 못한 상황에 내던져지는 것인데 아직도 모든 게 내 생각만 같기를...’하는 바람만으로 세상을 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지금은 그냥 죽을 맛이다. 신도 안 나고, 하고픈 맘도 싸그리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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