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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26. 여인숙에서 자며 여행의 관점이 바뀌다[정읍⇒김제](09.04.24.금)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26. 여인숙에서 자며 여행의 관점이 바뀌다[정읍⇒김제](09.04.24.금)

건방진방랑자 2021. 2. 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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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에서 자며 여행의 관점이 바뀌다

 

 

지금까진 여관에서 이틀을 자고 그젠 집처럼 편안한 교육관에서 잤다. 교육관이야 3년 전에 한 달 정도 생활하던 곳이니 불편할 이유는 없었지만, 여관은 아무래도 낯선 곳이라는 느낌 때문에 푹 잘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제 여인숙에서 자보니, 여관은 그나마 천국이었다는 것을 알겠더라. 곰팡이 낀 벽지들, 창문도 없이 날림으로 지어진 건물, 나무로 대충 틀을 만들어 비치해놓은 침대와 그 위에 얹힌 언제 빨았을지 모를 이불과 전기장판, 켜지지 않는 먼지만 수북하게 쌓여 있는 티비까지 모든 게 잠을 자기엔 최악의 장소였던 거다. 그러니 나도 밖에서 노숙을 한다는 생각으로 우의까지 완벽하게 껴입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마음으로 누운 만큼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 오늘은 소설 [아리랑]의 고장 김제로 간다.

 

 

 

돈을 무작정 아끼며 여행 하자는 생각에서 돈을 제대로 쓰는 여행을 하자

 

그럼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불평불만조차도 지금처럼 그나마 자고 난 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일 뿐이다. 어제저녁에 이곳에 자리를 꾸렸을 때만 해도 가까운 길을 헤매고 헤매 돌고 돌아온 탓에 힘도 빠지고 의욕도 사라져 그저 쉬고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는 곳을 잘 고르고 말 것도 없이, 그저 보이는 곳에 들어가 빨리 잘 수 있기만을 바랐었다. 그런 마음일 때 한 번 정도는 잠을 자고 싶었던 여인숙이 눈에 보인 것이니, 사막에서 신기루라도 찾은 마냥 달려든 것이다. 그땐 당연히 군대에서도 훈련을 할 때 야간에 길가에서 그냥 침낭만 두르고서도 잠을 잤었는데, 방에 들어가는데 자지 못할 리가 있겠어?’라는 생각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건 한 편으론 자신감이었고, 다른 한편으론 뭐든 괜찮다는 식의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가격을 조금 더 깎은 후에 바로 값을 지불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자신감과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문제였음을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잘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넉넉한 돈으로 여행을 하는 게 아니어서 어떻게든 아껴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그래도 나름 질적으로 잘 갖춰가며 하는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역시 경험만큼 나를 즉각적으로 바꾸는 것도 없다. ~ 오늘은 32km를 걸어야 해서 꽤 많이 걸어야 하는데, 아주 고생하게 생겼다.

 

 

▲ 정읍에선 좋은 기억보단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떠난다. 그러나 좋은 경험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아침식사부터 호사를 누려본다

 

오늘부터 비가 온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일기예보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무래도 계속 바깥에서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예전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나, 바다에 나가는 사람들이 일기예보를 자주 본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남의 일처럼만 여겼다. 그들에겐 하루하루의 기상상태가 일을 하는데 매우 중요하기에 그런 것인데, 그런 마음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막상 내가 그런 처지에 있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도 이해할 수 있겠더라.

월요일에 경험했던 대로 배낭의 방수커버 만으로는 비를 막고 짐이 젖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짐들을 하나하나 빼서 비닐로 꽁꽁 싸뒀다.

준비도 되었겠다, 조금이라도 빨리 여인숙을 나가고 싶겠다 바로 출발했다. 하늘은 흐리기만 할 뿐 아직 비는 내리지 않기에 우의는 입지 않고 걸었다. 그런데 얼마나 걸었을까 비가 한 방울씩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다시 여인숙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가 우의를 챙겨 입었다. 아직 비는 제대로 내리는 건 아니었기에 그렇게까지 챙겨 입을 필욘 없었지만, 아무래도 계속 비가 내리는 양을 보고 우의를 입을까 말까 고민하기보다는 아예 입고 다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어느덧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정읍은 역 주변이 나름 변화한 곳이었기 때문에 바로 편의점이 보이더라. 그곳에서 김밥과 라면을 먹었다. 라면과 김밥은 임용을 준비하던 때에 나에게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특별식이었다. 늘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그게 물릴 때쯤 거금 2500원 정도(?)를 지출하여 만찬을 즐기곤 했다. 왕뚜껑 짬뽕과 김밥을 함께 사서 먹고 있노라면 세상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행복이 느껴졌다. 지금이라 해서 달라진 건 없으니, 아침 식사치고는 만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호사를 누려본다.

 

 

▲ 그때나 지금이나 컵라면에 김밥은 나에겐 영원한 진수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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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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