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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 9. 성경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 9. 성경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

건방진방랑자 2021. 7. 2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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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경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

 

 

쇼생크의 죄수들은 앤디의 폭발적인 인기를 실감하며 그를 우러러보기 시작한다. “간수가 죄수한테 별 아양을 다 떨더군.” “앤디가 간수들을 아주 가지고 놀았구먼?” 앤디는 털끝만큼도 우쭐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냉정하게 말한다. “난 안 그랬어. 그저 재정 자문을 해 주는 죄수일 뿐이야. 귀여운 강아지지.” 죄수들은 세탁소의 고된 잡무에서 벗어난 앤디를 부러워하며 말한다. “귀여운 강아지니까 세탁소에서도 빼준 건가?” 앤디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 이상이지, 도서실을 확장할 거야.”

 

 

 

 

그는 언제나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자신의 사용법을 찾아낸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앤디의 두 눈에는 언제부턴가 은밀한 광채가 돌기 시작했다. 주 의회에 편지를 보내 도서 기금을 요구하겠다는 앤디의 황당한 제안에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찰뿐이다. 죄수에게 책이 무슨 소용이냐, 그저 당구대나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죄수들. 단지 앤디가 힘겨운 육체노동에서 벗어난 것을 부러워하던 죄수들은 앤디의 마음속에서 이제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한 저 내밀한 꿈의 지도를 짐작도 하지 못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앤디가 결국 탈옥에 성공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탈옥시키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감옥의 훈육에 길들여지거나, 감옥에서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다치거나 미치는 수밖에 없었던 죄수들에게, 앤디는 이 움쭉달싹할 수 없는 광대한 원룸, 그 어디에도 간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것만 같은 치밀한 감시체계 안에서도, 우리의 욕망이 꿈틀거릴 수 있는 ‘CCTV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증명한다. 아니, 그는 무엇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무언가를 있도록만들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임을 증명한다.

 

그는 잃어버린 영토를 찾는 정복자나 탐험가가 아니라 지도에도 없는 영토를 만들어 내놓고 마치 그곳이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그로 인해 리더스 다이제스트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빼고는 별로 자랑할 것이 없던 쇼생크 감옥 도서관은 총천연색 문화의 향기가 넘실대는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앤디는 자신이 말 한대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노튼 소장이 말했듯이 답장이 없었습니다. 쇼생크의 간수의 절반은 듀프레인의 손을 거쳤습니다. 일 년이 지나자 소장을 포함해 모든 간수들이 그를 찾아 왔습니다. 체육대회를 핑계로 다른 지역 간수들도 모여들 정도였지요. 그들은 모두 한 해의 세금 공제를 위한 명세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잘나가는 사업이었습니다. 세금 징수기에는 너무 바빠 조수가 필요했죠. 저는 기쁘게도 한 달간은 목공소 일을 쉴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라는 성경 구절을 좋아한다는 앤디.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늘,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오늘이 바로 생애 최고의 그날인 듯 살아간다. 노튼 소장도 이 구절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가 늘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주인이 돌아올 날에 대한 노예의 공포 때문이다. 앤디는 단지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해서 잠도 들지 못하고 간신히 깨어 있는 노예가 아니었다. 그는 주인이 돌아올 때를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하는, 이미 주인의 머리 위에서 주인의 행동 패턴을 읽어내는 자, 주인과 노예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자신의 진짜 삶이 모범이 될 수 없기에 성경의 권위를 참칭(僭稱)해야 존속되는 노튼의 권위. 앤디는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장이 없는 주 의회를 향해, 소장이 여섯 번 바뀌는 동안 단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은 쇼생크 도서관에 도서기금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한다. 몇 년 동안 일주일도 거르지 않고, 답장 한 번 오지 않는 곳에 편지를 보내는 앤디. 초인의 재능 중 가장 모방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반복에도 권태를 느낄 줄 모르는, 지칠 줄 모르는 놀이의 열정이다. 초인은 똑같은 주사위를 천만 번 던지더라도 매번 다른 표정으로, 매번 다른 마음가짐으로 게임에 임할 것이다.

 

똑같은 성경을 어떻게 다르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의 기로가 펼쳐진다. 노튼은 성경을 무기로 성경 뒤에 숨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데 집중하고, 앤디는 성경의 말씀과 함께 성경을 물질로 이용한다. 앤디에게 성경은 또 하나의 리타 헤이워드였고, 자신의 진짜 자아를 잠시(10여 년 동안!) 은폐하기 위한 영혼의 베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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