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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 10. 벽을 증오하다가, 벽에 길들여지다가, 마침내 벽에 의지하게 되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 10. 벽을 증오하다가, 벽에 길들여지다가, 마침내 벽에 의지하게 되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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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벽을 증오하다가, 벽에 길들여지다가, 마침내 벽에 의지하게 되다

 

 

형벌. 기이한 것이다. 우리의 형벌이라는 것은! 그것은 범죄자를 정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떠한 속죄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범죄 그 자체보다도 범죄자를 더럽힌다.

-니체, 박찬국 역, 아침놀, 책세상, 2004, 251.

 

 

감옥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어져 마치 감옥의 벽돌처럼 감옥의 일부가 된 사람들. 그 중에 브룩스가 있었다. 브룩스는 50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기에 감옥을 빼놓고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죄수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독서를 권하는 일은 브룩스를 감옥에 갇힌 죄수라기보다 더없이 충실한 사서처럼 보이게 한다. 브룩스의 표정은 언제나 편안하고 만족스러워서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어린 새 한 마리를 품안에 넣고 다니며 직접 키워 제이크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브룩스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은, 그가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어느 날 레드와 앤디는 브룩스가 헤이우드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 칼을 제대로 들고 있을 힘도 없어 보이는 브룩스는 정작 협박당하고 있는 헤이우드보다 더 두려운 표정으로 떨고 있다. “우리, 말로 하자고.” “할 말 없어. 목을 그어 버릴 거야.” “헤이우드가 뭘 잘못했어?” “그건 상관없어.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앤디는 침착하게 브룩스를 설득한다. “브룩스, 헤이우드를 해치지 않을 거죠? 그도 브룩스를 해치지 않을 거예요. 왜 친구를 죽이려는 거죠? 날 봐요. 브룩스, 그거 내려놔요. 목을 봐요. 피가 나잖아요.” 브룩스의 날 선 눈빛은 앤디의 애정 어린 몇 마디 문장으로 무너져버린다. “이 길밖에 없어. 난 여기 있고 싶어.” 브룩스는 눈물을 흘리며 칼을 떨어뜨리고 죄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면을 받아 감옥을 나가게 된 브룩스에게 잘 가라고 인사한 죄밖에 없다는 헤이우드는, 억울해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브룩스가 미쳤다고 투덜거린다.

 

 

 

 

도대체 얌전하기만 하던 브룩스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죄수들에게 레드는 이야기한다. “브룩스는 교도소에 길들어졌을 뿐이야.” “길들어져?” “감옥에 50년 동안 있어봐. 바깥세상을 전혀 몰라. 여기선 브룩스가 대장이야. 모르는 게 없지. 하지만 사회에선 아무 것도 아냐. 그저 쓸모없는 쓰레기지.” 죄수들은 갑자기 숙연해진다. 감옥의 철책을 바라보며 레드는 말한다. “이 담벼락이 참 웃기지. 처음엔 다들 증오해. 그러다가 차츰 길들어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길들어지는 거야. 그리고 어느 순간 의지하게 되지. 그게 바로 길들어지는 거야.” 형벌의 목적은 정말 인간을 교화하는 것일까. 니체는 형벌이 인간을 계몽할 수 있다는 환상을 믿지 않았다. 형벌은 인간은 단지 덜 위험하게 보이도록길들일 뿐이다. 형벌은 그가 저지른 죄보다 그를 더욱 망가뜨리는 폭력이다. 브룩스는 어느새 형벌의 한가운데서 삶의 희열을 맛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브룩스는 형벌에 완벽하게 길들어진 나머지 형벌이 곧 삶 자체라고 믿게 되었다. 형벌 없는 삶은 삶이 아닌 것이다.

 

 

 

 

감옥을 나가는 브룩스. 그러나 그의 표정은 50년 만에 자유를 찾은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 5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근속했던 회사에서 창졸간에 쫓겨나는 명예퇴직자의 허허로운 표정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져도 다시 시작할 만한 용기도 체력도 친구도 남아 있지 않다. 50년 만에 맞닥뜨린 세상은 너무 빠르고, 너무 매정하고, 너무 무섭다. 브룩스는 그의 유일한 친구들, 죄수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렸을 적엔 차가 드물었는데 이젠 지천에 깔렸다네.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어. 난 가석방자 임시 거처에 기거하고 있다네. 식료품점에서 포장하는 직업도 얻었지. 남들처럼 빨리 하려고 했지만 실수만 한다네. 지배인은 날 싫어해. 일을 마치면 공원에 가서 새에게 모이를 주지. 제이크가 나타나서 인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 벼랑으로 떨어지는 악몽도 꾼다네. 겁에 질려서 깨어나면 때때로 내가 어디 있나 싶어. 도둑질이라도 한다면 나를 쇼생크로 보내주지 않을까? 날 다시 보내주기만 한다면 지배인을 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늙었다네.” 감옥으로 날아온 마지막 편지는 브룩스의 유서였다. 브룩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자살이었지만 50년 동안의 복역 자체가 그를 느린 자살로 몰아간 것이 아닐까. 레드는 친형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자신의 손으로 묻어주지 못한 친구를 가슴에 묻으며, 앤디에게 말한다. “브룩스는 여기서 죽어야 했어.” 이제는 얼굴조차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동료 브룩스를, 레드는 그렇게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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