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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브리콜라주, 인류의 잃어버린 꿈의 조립법] - 12. 아바타와 주인의 권력관계가 전도되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브리콜라주, 인류의 잃어버린 꿈의 조립법] - 12. 아바타와 주인의 권력관계가 전도되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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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바타와 주인의 권력관계가 전도되다

 

 

네이티리: (어머니이지 부족의 샤먼인 모앗을 소개하며) 우리의 차히크야. 에이와의 뜻을 해석하시지.

모앗: (제이크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가득 찬 잔을 채울 순 없어.

제이크: 전 빈 잔이에요.

 

나는 어떤 주술사의 집을 함께 썼다. ‘바리(주술사)’는 하나의 특별한 범주에 속하는 인간으로 물리적 우주나 또는 사회적 세계의 어느 편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않는 존재였다. 그들은 이 두 가지 계급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하는 자라 하겠다. (……) ‘바리는 비사회적 존재이다. 그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영혼들과 개인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특권적인 존재이다. 예를 들면 그가 혼자서 사냥을 나가면 초자연적인 도움을 언제든지 얻을 수가 있었다. 또 그는 자기 뜻대로 동물로 변신할 수도 있고, 예언의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질병의 비밀도 알고 있었다.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 삼성출판사, 1997, 227.

 

 

제이크의 배신을 눈치 챈 쿼리치 대령은 아바타와 원래 인간 사이의 링크를 끊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비족 모두가 모인 부족회의에서 다급하게 부족의 위기를 알리고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속죄를 하느라 감정이 복받쳐 있던 제이크. 그는 아직 자신의 입장을 미처 설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네이티리를 비롯한 모든 나비족 사람들에게 원망과 분노만 산 채 링크가 끊겨버리고 만다. 아바타 조종사와의 링크가 끊어져버린 제이크는 마치 산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제이크가 인간들의 스파이라는 것을 알아챈 네이티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제이크를 버리고 떠나버린다.

 

 

 

 

제이크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그는 나비족에게도 인간사회에서도 철저한 배신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바타와 마음대로 링크할 수 없게 된 제이크는 그레이스 박사의 판도라 연구팀과 함께 배신자들로 낙인 찍혀 감금된 신세가 되어버린다. 과학을 통해 판도라에 다가간 그레이스, 나비족을 통해 배운 샤헤일루를 통해 판도라에 다가간 제이크. 그 두 사람의 종착역은 같았다. 그들은 아무리 아바타와의 기계적 링크를 제거해버려도 결코 나비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어져버린 자신들의 마음과 투명하게 마주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이제 나비족도 판도라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구원의 손길이 뻗쳐 온다. 공군 여전사 중 한 명인 매력적인 트루디가 멋진 변심을 한 것이다. 평화로운 판도라에 폭탄을 투하하며 바퀴벌레는 이렇게 죽이는 거야!”라고 소리 지르는 쿼리치, 나비족의 집단학살을 진심으로 즐기던 쿼리치 밑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난 이러려고 지원한 게 아냐!” 트루디는 배신자들에게 식사를 가져다주고 배신자에겐 스테이크도 아까워!”라고 뇌까리는 척하면서 함께 온 식사당번을 기절시킨 후 제이크와 그레이스 일행을 탈출시킨다. 낌새를 알아챈 쿼리치는 트루디가 조종하는 헬리콥터에 수없이 총탄을 퍼붓고 그 사이에 그레이스가 복부에 총탄을 맞고 만다.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제이크는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나비족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레이스는 자신은 과학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동화 같은 이야기란 나비족의 주술사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레이스는 위대한 과학자로서 판도라를 사랑하지만 나비족의 주술적 믿음에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레이스는 이제 목숨에 대한 미련조차 벗어버린 얼굴이다.

 

 

 

 

제이크의 아바타는 거대한 판도라의 숲 속 어딘가에 버려져 있고 그레이스의 아바타는 나비족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상태다. 제이크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진정 갖고 싶은 아바타의 육체를, 아니 나비족의 육체를 찾아 도움을 구해야만 한다. 그전에 우선 네이티리를 비롯한 나비족 모두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에서도 제이크는 믿는다. 그는 그레이스보다 훨씬 더 나비족-되기에 성공한 케이스다. 그는 나비족의 믿음을, 나비족의 주술사 모앗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아무런 거짓 없이 나비족의 삶에 링크되어 있음을 믿기 시작했다. 아바타와 주인의 권력관계가 완벽히 전도된 것이다.

 

 

인간이 살고, 일하고, 생각하고, 용기를 가지되, 자신이 이 세상에 항상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지구가 언젠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때에는 인간의 작업 중에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 우리는 실재의 깊은 본성은 재현의 모든 노력을 벗어나 있음을 깊이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제일 먼저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칸트입니다. (……) 과학적 지식은 우리 인간이 하찮은 존재임을 가르쳐줍니다.

인류가 사라지고,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우주의 운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겁니다. (……)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내 입장이 철저한 회의주의라고 간주하겠지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겉모습만 맴돌도록 운명 지어졌다 하더라도 어느 지점에 멈추어서 어디에 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현명함을 아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24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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