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장
| 爲學日益, 爲道日損. 위학일익, 위도일손. |
세상이 말하는 학을 하면 지식이 매일매일 불어난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도를 하면 지식이 매일매일 줄어든다. |
|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
줄고 또 줄어들어 무위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
| 無爲而無不爲. 무위이무불위. |
무위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면 되어지지 아니함이 없다. |
| 取天下常以無事. 취천하상이무사. |
천하를 취하고 싶으면 항상 일을 도모함이 없이 하라. |
|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
일이 꾸미는데 이르게 되면 천하를 취하기에는 부족하리로다. |
같은 주제가 다채롭게 변주되면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장은 도가의 학설내용을 요약적으로 전하는 말로서 가장 인용빈도가 높은 구절 중의 하나이다.
‘위학(爲學)’이 ‘위도(爲道)’와 대비되며 ‘익(益)’과 ‘손(損)’이 대비된다. 많은 사람이 위학을 유교적 배움이라 했고, 위도를 도가적 배움이라 했는데 그것은 적합지 않다. 이 장은 곽점죽간에도 들어있다(‘무불위無不爲’까지).
‘학(學)’은 그냥 ‘세속에서 말하는 배움’이고, 그것은 분별적 지식이며 출세의 기반이 되는 학문적 축적을 말한다. 그야말로 유식자가 되는 길이요, 그것은 날로날로 지식이 불어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도를 실천하는 사람의 삶은 뭔가 매일매일 사라지고 줄어들고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 다 사라져 텅 빈 데까지 이르는 것,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데까지 이르는 것, 사유가 단절되는 데까지 이르는 것, 그것을 ‘무위에 이른다[以至於無爲]’고 표현했다.
『노자』에게는 반주지주의적 동경이 있다. 요즈음 스님들도 그토록 어려운 가부좌수련을 통해 도달하려고 하는 것은 무념무상, 그야말로 사유가 사라진 상태, 분별적 상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대승불교의 수행론이 사실 인도의 것이라기보다는 노자사상의 영향으로 순화된 것이다. 요가의 수행과 선의 수행이 다른 것은 도가적 무위사상이 그 갈림길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그토록 많은 지식을 쌓았지만, 이 48장 덕분에 지식인의 오만에 빠지지 않는, 아니 지식의 가치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무위의 여유’를 획득할 수 있었다. 참으로 노자에게 인간적으로 감사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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