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되어 빛나는 널 기억해’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작품을 보다가 눈을 돌리니 ‘春陽時雨(봄볕과 단비)’라는 초서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쇠귀’ 선생님께서 낙관을 써주셨단다. 쇠귀 선생님의 글은 유명하여 충분히 자랑할 만하기에 어화둥님은 ‘족보’로 남길 생각이라고 하신다(민들레 여름 모임은 15년 8월 21일~22일에 있었는데, 신영복쌤은 16년 1월 15일에 돌아가셨다).
▲ 모임할 땐 살아계셨지만,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지금은 계시지 않다.
봄볕 같은, 단비 같은 사람이 되길 꿈꾸다
‘춘양시우’라는 글을 봤을 때, ‘춘양’에선 『논어』의 구절 중 ‘늦은 봄을 만끽하는 유유자적함(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선진」25)’이 떠올랐고 ‘시우’에선 『맹자』의 구절 중 ‘가문 여름날의 단비(七八月之間旱, 則苗槁矣. 天油然作雲, 沛然下雨, 則苗浡然興之矣. -「梁惠王章句上」 6)’가 떠올랐다. 그땐 ‘춘양’과 ‘시우’의 출처가 각각 다른 줄만 알았던 것이다.
▲ 遊如의 초서에, 牛耳의 낙관.
그런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근사록近思錄』이 출처더라. 유학은 원래 전수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도통道通(불교를 전수되는 과정)’을 중시하게 되면서, 유학도 체계를 세우기 위해 불교식의 도통론을 차용하여 전수과정을 서술하기 시작했다(한유 「원도原道」와 주희의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 이 책은 유학의 흐름을 알려주기 위해 주렴계, 정호와 정이 형제, 장횡거의 글 중 중요한 내용만 발췌하여 만들었는데, 위의 글귀는 동생 정이程頤(1033~1107)가 형 정호程顥(1032~1085)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그(정호) 얼굴빛을 보면 사람과 관계 맺는 게 봄볕의 따사로움과 같았고, 그 말을 들어 보면 사람에게 파고드는 게 단비의 윤택함 같았다.
視其色, 其接物也, 如春陽之溫; 聽其言, 其入人也, 如時雨之潤. 『近思錄』 「觀聖賢篇」 17
사람이 봄볕 같고, 단비 같다는 말이 곧바로 다가오진 않는다. 하지만 봄볕이든 단비든 누구에게나 좋은 이미지이기에, 유추해보면 ‘타인을 편하게 하며 적절하게 관계를 맺을 줄 아는 경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왠지 이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고, 함께 얘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이렇게 이미지가 떠오르자 제비꽃님이 말한 『모모』라는 책의 모모가 떠올랐고 『굿 윌 헌팅』의 숀 교수가 떠올랐다. 모모는 특별한 행동을 하진 않고 그냥 들어주기만 하는데도 무시로 사람들이 찾아와 많은 얘기를 털어놓고 간다고 한다. 그처럼 윌에게 있어서 숀도 포근히 안아주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으로 소울메이트라 할 만 했다. 이들은 잘 들어주는 사람이기에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맘껏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던 이들이었다. 아마도 봄볕 같기에 사람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고, 단비 같기에 사람들의 갈급함을 채워준 것이다.
저 글귀를 쓰고 걸어뒀다는 것만으로도 어화둥님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 수가 있다. 그건 냉철한 사람이 아닌, 포근하게 안아주는 너른 마음의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 단재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초임시절엔 꽤나 날카롭고 비판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집불통이어서 아이들에게 뜻하지 않게 많은 상처를 줬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고 받아줬기에, 여태껏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시간들을 함께 지나다 보니, 이젠 아이들과도 한결 편해져서 작년엔 자취방에서 한 명의 학생과 1주일 동안 살기도 했고, 이사할 때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그처럼 조금씩 봄볕 같기를, 단비 같기를 바라며 나아가야겠다.
▲ 윌에게 숀은 소울메이트였다.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맹목적인 질주를 하다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었고 쉼 없이 계속되던 이야기도 끝이 났다. 겨울엔 어화둥님의 작업실에서 잤는데, 이번엔 거실에서 자야 한다. 잠을 자려 누우니 오늘 나눴던 많은 말들이 생각난다. 그중에서 단연 제비꽃님이 인용한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김종철)’라는 말이 맴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장주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70, 80년대 과도한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기에, 누구 할 것 없이 ‘성장만이 살 길’이라 외치며 맹렬히 전진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부작용들이 속출하여 인권은 유린되고, 돈만 배를 불렸다.
▲ 녹색평론을 내며 이 시대의 바른 소리를 담아 내고 있는 선생님이다.
하지만 그 후로 시간이 흐르며 IMF를 맞음으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취업난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또다시 ‘닥치고 성장’을 외치는 시기가 도래하고 만 것이다(인성은 따지지도 않고 CEO출신의 대통령을 무작정 뽑은 게 하나의 예다). 그래서 지금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사는 걱정에 한숨을 쉬고, 불안한 미래에 벌벌 떨며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자칫 잘못하면 극빈층으로 떨어지고, 무직자로 평생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맹목적으로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외쳐야 맞지만, 나 또한 계속 성장하고자하는 욕망이 있기에 그러기도 쉽지 않다.
▲ 모두 스펙에 목을 매고 있다. 미래가 암담하고 현실이 불안하니, 여전히 달리고 또 달린다.
이제는 우리가 춤을 춰야 할 시간, 다함께 춤을 춰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조급해질수록 생각은 비좁아지고 시야는 협소해지며, 무언가에 쫓기다보니 삶을 되돌아볼 시간조차 없어졌다. 무에 얼마나 클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끝도 없는 레이스를 달리고 또 달리고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해 김종철 선생님은 그런 삶의 태도가 아예 기본부터 잘못되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끊임없는 성장에 대한 욕구는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이기에, 성장이 멈췄다고 우울해 하지 말고 오히려 축복이라 생각해 춤을 추자는 것이다. 즉 성장이 멈췄다는 사실, 발전이 끝났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닌 희극이니, 맘껏 그 상황을 즐기는 것만이 ‘성장 패러다임’에 갇히지 않는 길이라는 얘기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이 말한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If I can't dance it's not my revolution)”라는 말이 생각났다. 두 분의 지향점이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자신의 스텝으로 춤을 추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일 뿐이다.
삶이 고통스럽다면, 생각이 비관적이라면, 이론이 삶을 짓누른다면, 이성이 감성을 압도한다면, 그러한 삶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삶은 마지못해 사는 삶,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통에 짓이겨지지 않도록, 비극에 침잠되지 않도록, 이성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춤을 춰야 한다. 춤은 생을 좀먹는 생각의 한계에서 벗어나 어렸을 때, 세상을 향해 맘껏 깔깔깔 웃으며 유머를 잃지 않던 나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민들레』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는 따스함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꺼져버린 내 마음에 불을 지펴 멈춰버린 스텝을 밟기 위해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날 사람들에게서 따뜻함을 전해 받았느냐고? 그에 대한 대답은 9편의 글에 충분히 담겨 있으니, 더 이상 노코멘트~
▲ 성장이 멈췄다. 다함께 즐겁게 춤을 추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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