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선 태어나자마자 어쩔 수 없이 ‘소비주체’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어딜 가든 돈만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대우를 받으며, 돈을 지불함과 동시에 물건을 받는 ‘무시간 모델’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교육과 멀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태어난 사회가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 소비주체로 산다는 건, 언제든 교체가능한 대상으로 산다는 말이기도 하다.
교육은 소비주체를 노동주체로 만드는 것이다
교육은 이미 ‘소비주체’로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여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즉각적인 필요에 의해서만 공부를 하고(그렇지 않은 것엔 “저걸 왜 공부해야 해요?”라고 묻는다), 당장 이익이 될 사람만 사귀려는 아이들을 ‘노동주체’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막연한 일을 하며 시작하려하기보다 아이가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나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 우선은 교환 마인드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설거지를 직접 하도록 하기, 빨래를 널고 개키기, 학교 준비물을 손수 챙기기, 방 청소하기와 같은 아주 작은 일부터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만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 전체를 위해서 하는 일이기에 이런 일을 해나가는 과정 속에 뿌듯한 마음이 자리 잡고,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이렇게 끊임없이 티도 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럴 때 학교에서도 단순히 한 자라도 더 지식을 전해주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중장기적인 프로젝트를 맡고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고, 여행에 가서도 직접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일반학교에서 그런 일을 하기엔 많은 제약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교실 청소랄지, 여행 중에 설거지를 하는 정도는 상황에 따라 충분히 할 만하다. 그런 활동을 통해 아이는 점차 ‘노동주체’를 내면화하게 된다.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부모의 변화와 아이의 변화는 함께 간다
하지만 아이만 그런 일들을 한다고 해서 ‘노동주체’로 바뀌는 건 아니다. 거기엔 부모도 함께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는 일이 못마땅할지라도, 어설플지라도 그걸 참고 지켜볼 수 있어야 하며, 그것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부모 또한 ‘소비주체’에서 벗어 ‘노동주체’를 찾으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왜 그런지 아래 인용한 글을 읽어보자.
씨리얼과 우유로 해결하는 아침식사부터 바꾸자. 일찍 일어나서 가사노동을 한다는 것은 힘든 수고로움이다. 그것은 헌신일 수밖에 없다. 급식이 제도화된 것이 아니라면 도시락을 정성껏 싸주자. 인터넷을 뒤져서 멋진 도시락 레시피를 검색하고 요리사급 도시락에 도전하자. 급식을 한다면 간식을 수제로 준비해보자. 직장 생활로 바쁘겠지만 어금니 꽉 물고 부엌에서 일해보자. 보상을 전제로 하지 않는 노동이 있으며 그 혜택을 내가(청소년 자녀) 받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기술적인 방법이다. 자녀에 대한 서비스를 돈으로 해결하는 것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불편하지만 일부러 재래시장을 이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좀 먼 거리도 걷고, 전기와 연료도 줄이며 내복을 사용하고, 인스턴트 가공 식품 사먹지 말고, 장류와 김치 같은 발효식품 자주 먹고, 가능하면 슬로우 푸드를 직접 만들고, 이웃과 알고 지내고,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여럿이 어울리는 운동을 해보자. 아이가 등교할 때 침대가 아닌 현관에서 배웅해야한다.
-박준규, 2013년,「무엇이 자녀들의 학습하려는 욕구와 마음을 막고 방해하는가」
이 글의 논지는 분명하기에 한달음에 읽을 수 있다. 위에서 제시된 일 중에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이라 할 수도 없다. 어쩌다 한 번 하는 일이라면 그렇게까지 힘들 것까지야 없지만, 늘 해야 하는 거라면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교육하는 것은 결국 나의 습속習俗이 무언지를 깨닫고 거기서부터 하나하나 놓여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아이가 ‘소비주체’가 되었다면, 그렇게 되도록 이끈 것이 바로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지금까지 으레 당연시해온 습관들을 돌아보고 고치는 일이다. 예전에 기독교를 믿을 때에 친구는 “기독교 좀 그만 믿으면 안 돼?”라고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그때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했는데, 그건 기독교가 나를 지탱하는 지반이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독교를 거부한다는 건 삶의 지반이 붕괴된다는 걸 의미하고 내 자신이 와르르 무너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처럼 자신의 습속은 어찌 보면 너무도 익숙해져서 나와 혼연일체된 삶의 한 부분이기에, 돌아보기도 쉽지 않고, 고치기는 더더욱 힘들다. 그러니 크게 맘먹지 않으면 습속의 혁명은 이룰 수 없고, ‘소비주체’에서 벗어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니 아이들도 결코 ‘노동주체’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다른 사람을 교육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이야기는 ‘나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이야기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 누굴 교육하는 건 없다. 너와 나는 함께 나가기에 교학상장이다.
별이 되어 빛나는 널 기억해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한다고 맘이 무겁거나 힘들진 않았다. 내가 과거를 고집한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으며, 문제시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편하게 들으며 내 안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변화의 열망을 확인했고 ‘좀 더 삶을 누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그렇게 훌쩍 흘렀다. 좀 더 밀도 높은 이야기를 하고 싶기는 한데, 피곤이 밀려온다. 겨울모임엔 다음날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아있었지만, 이번 모임엔 대부분이 새벽 2시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쉬운 맘도 들지만, 어찌 되었든 시간을 쪼개서 얼굴이라도 보러 온 것이기에 고맙기도 하다. 이런 게 모두 ‘초심을 지키려는 애씀’이니 말이다.
▲ 가슴 아픈 기억들.
사람에게 집중하던 시선을 돌려 벽면 구석구석에 쓰여 있는 작품들을 둘러본다. 그중 별모양에 ‘별이 되어 빛나는 널 기억해’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줬고 국가란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보여줬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구조하는 척만 하는 국가기관의 한심한 작태에 엄청난 실망을 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다. ‘언제든 찾아오라’며 유족을 맞이하던 대통령이, 그들을 져버린 것은 약과였고 오히려 진실을 밝혀야 할 특조위를 해산까지 하며 “세월호 특조위 연장. 재정적, 사회적 부담 고려”라는 말로 대못을 박아버렸다. 그런 흐름에 편승한 세력들은 “인양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이유는 추가 희생자가 나타날 수 있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라거나, “지겹다. 이제 그만하자”라거나, “이번 세월호 사건을 맞이한 박근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안산과 서울을 연결하는 수도권 밴드에서 국가를 전복할 목적으로 획책할 ‘제2의 5.18반란’에 지금부터 빨리 손을 써야 하는 것.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봉기가 바로 북한의 코앞에서 벌어질 모양이다. 시체장사를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다”라는 망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 세월호 사건 이후 사람마다 똑같은 현실을 보고도 다양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거 더 마음 아프게 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며 전국민적인 추모의 대상이자, 사회를 되돌아볼 계기에서 공분의 대상이자, 사회이 불안을 증폭시키는 계기로 인식이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세월호 사건으로 바뀐 것은 하나도 없고 여전히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불안정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별이 되어 빛나는 널 끝까지 기억하는 일이고, 시간이 더딜지라도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 세월호의 잔상이 짙게 드려진 [터널]이란 영화. 영화의 결말처럼 세상도 바뀔 날이 오길 바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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