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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와 독립영화의 만남 - 10. 탐욕의 제국: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는 삼성의 민낯 본문

연재/시네필

돌베개와 독립영화의 만남 - 10. 탐욕의 제국: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는 삼성의 민낯

건방진방랑자 2019. 4. 1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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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탐욕의 제국: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는 삼성의 민낯

 

 

책씨란 기획으로 홍리경 감독의 탐욕의 제국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탐욕의 제국은 삼성 반도체에서 근무했던 근로자들이 백혈병에 걸렸지만 삼성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오히려 근로자들에게 잘못을 덮어씌웠다. 이에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요구하며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기업에 바치는 영화다.

 

 

 

핵가족화를 부추기는 기업, 하지만 또 하나의 가족이길 바라는 삼성

 

삼성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며 일면식도 없는 고객들을 가족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치다 타츠루內田 樹(1950~ )기업은 이윤달성을 위해 대가족을 핵가족으로 쪼개고, 그것도 모자라 핵가족을 일인가족으로 만들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대가족일 땐 가족 내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반적으론 아버지임)의 의사결정에 따라 소비활동이 이루어지지만, 핵가족일 땐 각자의 욕망에 따라 각자의 소비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가족단위로 이루어지던 소비활동이 지금은 개인단위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소비가 촉진된 것이다. 이를 통해 90년대부터 불었던 ‘My Car’ 붐이나 2000년 이후의 ‘My Phone’ 시대가 어떠한 기업마케팅에 의해 출연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기업이 사회구조를 서서히 바꾸어 핵가족화를 부추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삼성은 핵가족화로 인한 소외감과 고립감을 기업 이미지를 재고할 수 있는 기회로 역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또 하나의 가족이다. 이는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던 사람들을 기업 중심으로 묶어 친근감과 위안을 주고자 했던 이미지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6월 25일에 했던 강연에서 핵가족화의 속내를 말하고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일 수 없는 사람들

 

하지만 그렇게 가족이라며 사람들의 소외감을 이용한 마케팅을 하던 삼성이 막상 자기 직원들이 유해 사업장에서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데도 산재처리 하지 않도록 적당히 회유하고 보상금으로 입막음하려 했다. ‘또 하나의 가족은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들만을 칭하는 말이었음이 이런 삼성의 대응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삼성의 이미지에 해만 끼치는 직원들은 또 하나의 웬수여서 개그콘서트의 한 프로인 억수르에서 첫째 딸이 아빠에게 다가가려 하면 신경질적인 어투로 남이다~ 남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의 이미지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삼성은 위의 표정처럼 "남이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이런 부조리한 삼성의 태도에 황유미씨의 아버지인 황상기씨는 분노하며 맞서게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하지만 완고한 자본의 벽 앞에서 그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기업-고용노동부-근로복지공단이 하나가 되어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음에도 황상기씨는 주저앉지 않았다. 유미와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란 모임을 만들어 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삼성의 진심어린 사과와 대책마련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그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회사 내로 시위대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경비만을 강화했을 뿐이다. ‘또 하나의 가족일 수 없다고 판단되자, 제풀에 지쳐 쓰러지길 바라며 치졸하게 대응한 것이다.

 

 

그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밖에 안 되지만, 그럼에도 목소리를 높인다.

 

 

 

또 하나의 가족일 수 없는 사람의 울부짖음

 

다큐멘터리 초반에 이윤정씨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백혈병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어디가 아픈지 모를 정도로 팔팔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에겐 1년이란 시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병색이 완연해지면서 걷지 못하고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 때 화면엔 이윤정씨가 삼성 반도체에 다니며 남편을 만나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과 아이를 낳아 아이를 안고 찍은 평범한 사진이 차례차례 나왔다. 그녀가 바랐던 삶이란 그와 같은 평범한 삶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혈병이라 진단을 받자 모든 바람은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백혈병을 진단 받기 전과 후의 모습. 불과 1년이란 시간이 이토록 사람을 바꿔놓았다.

 

 

다큐멘터리가 거의 끝부분에 이르러서야 이윤정씨는 통통 부은 얼굴(이미 예전의 앳된 모습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음)로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는 말할 힘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쉬다가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1년 사이에 어떻게 죽어 가는지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으로 보여주려는 듯, 무심히 그리고 있다.

그녀의 시신을 실은 장례차와 반올림 회원들이 탄 버스가 강남에 있는 삼성 본사 앞 도로로 진입하려고 한다. 이유는 그곳에서 죽은 이의 억울함을 알리려 노제를 지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삼성은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철통 방어를 하며 본사 도로 근처에 접근조차 못하도록 막아섰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본사 도로에 들어가기 위해 몸으로 부딪혔지만 소용이 없었다.

삼성 본사 옆 건물에서 카메라는 이 광경을 조감샷으로 잡고 있으며 그 장면들은 모두 음소거mute가 된 상태로 나오고 있다. 죽은 이는 말이 없지만, 산 이들은 말도 안 되는 현실 속에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감독은 아예 소리를 빼버린 것이리라. ‘또 하나의 가족일 수조차 없는 사람들의 작은 바람 하나도 들어줄 수 없는 삼성의 비정한 모습 앞에서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과연 인간을 존중하는 기업은 가능한가? 윤리적인 기업은 가능한가?’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노제를 지내려 했지만 막는 바람에 좀 떨어진 곳에서 노제를 지내야 했다.

 

 

 

윤리적인 기업은 가능한가?

 

2012년 대선을 전후하여 최대 이슈는 누가 뭐라 해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것이었다. 그 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어느 당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내놓으며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제재를 가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 2년이 지난 지금 누구 하나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얘기하지 않게 되었다. ‘경제민주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예 이루어질 수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와중에 기업은 골목상권까지 집어삼키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의료민영화와 같은 새로운 수익처를 만들려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예전엔 낙수효과운운하며 대기업이 성장해야만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이 누린다는 얘기를 하곤 했었지만, 이명박 정부 5년을 통해 대기업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콩고물이 떨어지기보다 중소기업의 기술을 가로채거나 자국민에게 비싸게 가전제품을 팔거나 물량밀어내기와 같은 불공정 거래 행위로 인해 중소상인들은 오히려 피해를 보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업은 결코 윤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게 모든 사람에게 손해가 된다할지라도 하고 만다.

 

 

 

경제민주화는 쏙 들어가버렸고 더 악랄한 낙수효과라는 무서운 상상만 현실이 됐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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