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다이빙벨: 이 영화는 문화적 짱돌이다
인디스페이스 영화관이 거의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누구 하나 소리 내지 않고 봤다. 77분짜리 영화를 보며 그렇게 거대한 벽에 좌절하며, 그러면서도 가슴 아프게 본 영화가 얼마나 될까. 그 울분은 ‘위험할 때 정부가 달려와 구조해줄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극에 달했다. 세월호 구조현장에 ‘사람의 목숨을 살리려 하는 정부’는 없었고, ‘조직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해경과 해수부’만 있었던 것이다.
▲ [다이빙벨]은 77분의 고급화된 욕이자, 문화적 짱돌이다.
다이빙벨의 진실을 알고 싶으면, 『다이빙벨』을 보라
영화의 짜임새에 대해서는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엔 걱정이 되었다. 이 영화는 영화를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찍어놓은 영상들을 편집한 것이다. 그렇기에 흐름에 맞게 잘 편집하면 현장성을 제대로 살린 ‘고발 다큐멘터리’가 될 테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난잡한 ‘일상 기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후자의 영화일 경우, 아무리 영화가 ‘우리가 모르는 진실을 파헤친 진정성이 있는 영화’라고 얘기할지라도 사람들은 관람을 꺼릴 것이며, 그건 곧 ‘다이빙벨’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견만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이상호 감독은 이 영화로 문화적 짱돌을 던지며 진정성을 전했다.
이상호 감독(이하 이감독)도 이런 부담에 대해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이야기해줬다. “처음엔 영상들만 다 붙이면 영화가 되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작품을 만들고 난 후에 여러 감독들에게 보여주니, 지루하다며 웬만한 내용들은 다 삭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다이빙벨’이 처음에 투입거부 당하고 철수했을 때, 정부에서는 ‘짝퉁 다이빙벨’을 현장으로 가지고 오는 장면 같은 거요.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한다는 의견이 있었기에 그런 장면들을 빼버렸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몰입하며 볼 수 있는 영화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라며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며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줬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인지, 다행히도 영화의 흐름은 어색하지 않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집중하며 볼 수 있었으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이빙벨』은 억울함만을 토로하는 영화도 아니고, 진실만을 추구하는 딱딱한 영화도 아니며, ‘다이빙벨’로 사람 목숨을 구하고자 했던 바다 사나이의 희망을 다룬 영화라 할 수 있었다.
▲ 막상 현장에 온 다이빙벨은 보냈으면서도 다른 다이빙벨을 요청한 이유는 뭘까?
『다이빙벨』은 77분의 고급화된 욕
이 감독은 세월호 현장을 취재하며 24일 방송에서 처음으로 욕을 한다. 그 자린 해경청장과 해수부장관이 유가족과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에 이 감독이 진행을 하던 중 “오후 3시 30분 연합뉴스에 따르면, 제목이 이렇습니다. 연합뉴스의 기자 여기 계실 텐데, 넌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 개XX야! 연합뉴스 이 개XX야! 그게 기사야 이 XX야! 어디 있어 연합뉴스?”라고 욕을 한다. 현장에서 취재를 하며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보는 상황과 현실의 괴리가 느껴졌기 때문에 그와 같은 욕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에서는 욕을 하게 된 이유를 묻기보다, 기자의 자질을 물으며 논란이 일었고 이 감독의 아들도 문자를 통해 ‘욕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인다. 아들의 문자로 사과를 하긴 했지만, 이 감독은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욕을 한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년 동안 공중파의 기자로 사석에선 욕을 했지만, On Air일 땐 정자세로 돌아왔다. 하지만 팽목항에선 욕을 했다. 이유는 취재 중간에 몸이 아파서 서울에 올라오니 언론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600명 파견했다고 나왔지만 실제로 물에 몸을 담근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화가 나서 욕이 나왔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욕은 오히려 그 때의 심정을 담은 적확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나에게 『다이빙벨』은 정부를 향해 퍼붓는 ‘77분짜리 고급화된 욕’이다”라는 그의 말을 통해 『다이빙벨』이란 영화의 성격은 더욱 발랄해진다. 욕은 단순히 저질스러운 것을 넘어서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하니 말이다. 24일에 이 감독이 했던 욕을 통해서도 우리는 위로를 받았는데, ‘고급화된 욕’인 이 영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대리만족을 얻었다.
▲ 이상호 감독의 욕을 들으며 기분 나빠할 사람도 있겠지만, 현장의 유가족들은 호응해줬다.
문화적 짱돌인 『다이빙벨』
지금도 SNS를 찾아보면, “정말 『다이빙벨』이라는 영화를 띄우고 싶으면 유튜브에 올리면 된다. 그건 싫다는 건가”라는 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함께 그 문제를 공유하고 싶으면 돈을 받는 영화가 아닌, 유튜브를 통해 쉽게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 영화를 개봉하든 유튜브에 올리든 개인의 자유일 텐데 왜 문제 삼는 걸까?
이에 대해 이상호 감독은 “유튜브에 올리면 많은 사람이 볼 것 같아도 제대로 보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로 첫 포문을 열었다. 유튜브에서 조회가 높은 영상들은 가볍게 즐기며 볼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인터넷의 특성상 무거운 주제나 어려운 내용을 시간까지 투자하며 보진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대중 확산미디어’라고 이 감독은 정의한다. 영화제에 출품하는 것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되는 효과가 있으며, 자기 돈을 내고 보는 것이기에 제작한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모두 당당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유튜브에 올리지 않고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실제로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될 수 있도록 그 기간을 맞췄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해외영화제에도 출품하여 진실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영화상영이 결정되는 순간부터 정부에선 엄청난 핍박을 가했다. 그건 곧 영화의 힘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힘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이 감독은 “7개월 동안 유가족들이 76일을 청와대 앞에서 노숙을 하고, 십자가를 들고 2000리를 다녔어요. 그런데도 정작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법도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패배감이 너무 짙은데 저는 이게(이 영화가)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한테는 짱돌이 될 수 있고, 어떤 분한테는 믿을만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실의 힘을 공유했다면, 그 힘을 함께 보태주고 여기저기에 알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말이다.
▲ 부모들은 단원고-팽목항-대전까지, 학생들은 단원고-국회-청와대까지 걸었다.
짱돌 하나로 어떤 일을 이루어 내기는 힘들다.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 얘기엔 돌 하나로 거인 같던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야기도 있지만, 현실에서 짱돌 하나의 힘은 너무도 미비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각자의 짱돌을 던진다면 어떻게 될까? 완고한 벽일지라도 균열이 갈 것이며, 어느 순간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 감독의 바람처럼 이제 우리는 자신의 영역에서 『다이빙벨』이란 ‘문화적 짱돌’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며 완고한 벽을 향해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첫 단추가 ‘세월호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며, 『다이빙벨』을 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돌베개 출판사에서 왜 이 영화를 11월의 영화로 선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불편하지만 진실에 다가가도록 도와주며 문화적 짱돌을 함께 나누려는 출판사의 기백 넘치는 행동임을 느낄 수 있었다.
▲ 문화적 짱돌을 들고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대항하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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