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결식과 노제 참여기
오늘은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6시 45분 차를 타기 위해 5시 반에 일어났다. 차가 많이 막힐 것만 같아서 15분 차를 탈까도 생각했었는데 몸이 너무 고될 거 같아서 그냥 이 차를 타기로 한 것이다.
내 예상과는 달리 버스는 밀리지 않았다. TV에선 계속해서 발인식 장면과 영구차 이동 장면을 중계하고 있었다. 그를 떠나보내기 싫은 사람들은 영구차가 봉하마을 입구를 지날 때 노란색 비행기를 접어서 영구차에 날리기도 하고 차를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그 장면들은 보면서 내 마음도 그네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왜 그가 재임 중일 땐 모두 그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했던 걸까? 물론 그의 정책 중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 긴 행렬, 그만큼 우리의 마음.
그가 공공의 적이 된 이유는 인간의 이중성 때문이다
만만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 정책보다 그의 직설적인 말투와 고졸출신이 자꾸 비판의 도마에 오르곤 했었다. 전여옥 의원은 그의 상고 나온 전력을 들며 차후엔 대학교육까지 마친 대통령이 나오길 바란다고 비꼬기도 했었다. 아래의 내용은 그 중 일부이다.
네 번째, 대학을 나온 사람을 뽑겠다. 아무리 한국의 대학교육이 형편없다고 해도 대학을 다닌 사람과 다니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한국 같은 高학력사회에서 高卒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사회의 지도층이라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학습 기회와 기간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력 인플레 사회인 한국에서 유독 정치인만이 「학력 디플레」 상태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처럼 세계적인 碩學은 아니더라도 많이 배운 사람이 정치에 충원될 때 정치판의 수준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월간조선』 3월호, 「대학 나온 사람 뽑겠다」 중
▲ 전여옥 의원의 말은 분명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실상 그건 모두가 인정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위의 글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권위주의와 학벌주의의 희생양이 되어왔으면서도 그걸 깨부수기는커녕 그걸 지탱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내 자식은 학벌주의의 혜택을 받게 하기 위해 ‘공부 잘하는 것’을 지고지순의 가치로 설파했으며, ‘밖에서 저렇게 쓰레기 줍는 사람이 되기 싫으면 죽도록 공부해’라며 직업의 귀천을 논했고, ‘역시 3류대학 출신이라 말도 천박하고 행동도 못 배운 티가 난다’는 말로 학력과 인격을 동일시했다.
이런 식의 인식을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며, 대다수가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그걸 문제 삼기보다 더 확대재생산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심리 상태에서 전여옥 의원의 말은 일면 불편한 말이지만, 잠정적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 도그마였던 셈이다.
이런 사회적인 흐름 속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깨고, 사회적 모순을 바로 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편들고 우호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오히려 ‘위험한 인물’ 내지 ‘뭣 모르는 풋내기’ 정도로 판단하며 비판하고 등을 돌려버렸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 생각해보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광경이다.
폴리스라인, 안전=통제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경복궁 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소울드레서 카페 회원들은 노란색 리본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들의 깨어있는 의식은 우리 미래가 밝다는 증거가 아닐지. 그 자리에서 안주하려 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모두에게 자신만의 가치가 있고 그걸 인정하며 서로 간에 돕고 살 수만 있다면 소득 몇 만불 시대라는 달콤한 수식어를 남발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사람 사는 사회’일 것이다.
경복궁 근처로 가니 거기엔 초대장 있는 분들만 출입이 가능하단다. 노제가 열릴 예정인 서울광장으로 가야 한다고 경찰은 끊임없이 안내 방송을 한다. 그래서 난 시청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경찰들은 시민들의 이동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폴리스 라인을 넘어갈 수 없도록 경찰벽이 가로 막혀 있다. 그것 보면서 동해에서 본 철조망이 생각났다.
▲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가는 길을 보기 위해 모였다.
들뢰즈라는 철학자는 도시를 ‘홈파인 공간’이라 정의했다. 도로에서만 차가 다녀야 하고 인도에서만 사람이 다녀야 한다. 그 중간이란 게 없다. 구획 지어진 틀에서만 움직이는 인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활동하는 인간 그건 기계와 다를 바 없는 거다.
그런데 오늘 이 곳에선 경찰벽이란 새로운 홈파인 공간이 등장했다. 이미 홈파인 공간 내의 더 억압적인 홈파인 공간이 설치된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행동은 극도로 제약 받았다. 이런 제약은 누구를 위한 제약일까?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고 할 테지만 그것보다 우연이나 돌발 상황을 철저히 통제하기 쉽도록 한 것일 뿐이다. 시청 쪽엔 영결식이 한 시간 정도 남았음에도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 폴리스라인은 안전을 위한 선이지만, 통제를 위한 선이기도 하다.
영결식 현장의 열기
5월의 햇살치고 너무나 뜨거웠지만, 더위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예전엔 이런 광경을 보면서 집단 히스테리에 가깝다고 생각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사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세뇌되어 자기의 친부모를 읽은 마냥 온 국민이 비탄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광경도 그 때의 광경 못잖다. 이들을 이곳으로 이끈 원동력은 무엇일까?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은 다음에야 이런 열화와 같이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 이건 집단 히스테리와는 다른 연민이고 그를 지켜주지 못한데 대한 죄의식이며 현정권에 대한 못마땅함이 뒤섞인 양상이다.
11시부터 영결식은 시작되었다. 현 정부 인사들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 심지어 이명박씨가 헌화를 하자 몸을 돌려 화면을 보지 않으려는 시민들도 있었다. 존경 받는 대통령과 무시당하는 대통령 사이의 극명한 온도차가 느껴지는 통쾌한 순간이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조사를 읽으실 땐 울컥 눈물이 났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가족에게 인사를 건넬 땐 서글픔이 밀려왔다. 왜 우린 인간답게 서로의 아픔을 토닥여 주며 살지 못했냐는 꾸짖음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 감정이 복받쳐 왔다. 누군들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이라면 안 그랬겠는가.
의지를 이어나가려는 사람들
서울 광장에서 열린 노제는 회한과 오열의 순간이었다. 노래를 부르던 가수들도 울었고 조시를 읽던 시인들도 울었고 그걸 듣는 우리들도 울었다. ‘사람 사는 세상’, 그 한마디가 이렇게 눈물을 자아낼 줄이야.
난 영구차를 직접 보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위치를 잘못 잡은 바람에 멀리서 바라보아야 했다. 그의 환히 웃던 모습이 내 눈에서 멀어지는 그 순간까지 눈을 떼지 못한 채 말이다.
이건 살아있는 역사다. 이 역사를 지우지 말고 우리가 느낀 이 서글픔과 가슴 아픔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을 때 지금과 같은 불운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그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어 실현될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라는 영화에서 의지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듯 우리 또한 그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이게 역사고 현실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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