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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경주기행 - 1.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경주기행 - 1.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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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다

 

 

이번엔 경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러면 대뜸 경주로 굳이 여행을 간 이유라도 있나요?’라고 물을 것이다.

 

 

 

 

 

 

정처 없이 경주로 떠나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묻는 것만큼이나 이 질문도 쓸데없는 것이다. ‘경주로 왜 갔는지?’를 알기 위해선 왜 부산으로 가지 않았는지?’, ‘왜 공주로 가지 않았는지?’ 이런 계속 되는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유가 있었을까? 꼭 가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건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는 것. 단지 <공각기동대>식으로 말하면 고스트가 그렇게 속삭였다(ep 1)’는 게 될 것이고, <에반게리온>식으로 말하면 여자의 감(물론 난 남자니까 남자의 감이 될 거다^^)’이 될 게다. 뚜렷한 이유는 없고 내 맘이 이끄는 대로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 이런 걸 여행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있는 장소를 떠나 새로운 장소로 찾아가는 걸 여행이라고 한다면 여행했다고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러나 보통 여행이란 계획과 목표가 확실한 것이기에 그 기준에서 본다면 난 그저 싸돌아 댕기다 온 것이리라.

 

 

터미널에서 얼마 걷지 않아도 바로 유적지에 도착한다. 도보로 다니기에 최적의 여행지다.

 

 

 

가봤던 경주가 아닌, 가보고 싶었던 경주로

 

경주는 초등학생 때 몇 번 왔던 것 같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별 흥미도 없이 왔다가 간 것이다. 그러니 눈으로 보긴 보지만 저게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뭐 하러 이것을 보려고 여기까지 와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모든 게 귀찮게 느껴질 수밖에. 의미부여가 안 된 상태에서 하는 일은 정신낭비, 체력 낭비일 뿐이다.

바로 그걸 바꾸고 싶었다. 언젠가 한 번 와서 본 것으로 나 거기 가봤어.’라고 하기엔 쪽팔렸으니까. 가봤다고 하기엔 내 머릿속에 남은 경주의 풍경들은 초라했다. 아니 차라리 그런 기억들이 없음만도 못했던 것이다. 지금 간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되겠냐 만은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번엔 내가 가고 싶어서 간다는 거겠지. 그런 자발성에 마음이 활짝 열려 서라벌의 풍치를 온 몸으로 맛보고 오기를.

 

 

한때는 타의에 의해 왔던 곳이지만, 지금은 자의에 의해 왔다.   

 

 

 

길 가에 우뚝 솟은 고분들을 보며, 죽음 속의 삶을 생각하다

 

전주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경주 터미널에 내렸다. 빙빙 돌아오니 3시간 30분이 걸리더라. 내리자마자 길을 나섰다. 불어오는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깊이 들이 마셔보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며 몸의 긴장도 풀어지더라. 고풍이 스민 고장이기에 내 몸 속에 새겨진 옛 사람들의 흥취가 되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정말 말로는 미처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늘 꿈꾸던 의식의 자유, 마음의 자유를 실컷 경험해 볼 수 있었으니까.

조금 걸으니 고분군이 나오더라. 도시 한복판에 옛 무덤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높은 언덕 같은 무덤은 그 당시 지배층의 권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은 역사 유적이 되어 삶의 공간과 섞여 있다. 삶과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곳에는 공원 같이 꾸며져 있어 어르신들의 휴식처이며,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 있듯이 죽음 자체를 생과 별개로 사유하지 않는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살아 있다. 고로 난 죽어 있다. 고분군 안내판엔 불장난도 하지 말고 고분에 올라가지도 말라고 써져 있다. ~ 하지 말라고 하니깐 더 하고 싶은 거 있지^^ 불장난은 별취미가 없으니 그러려니 해도 꼭 저 고분을 오르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 내 안에 꿈틀꿈틀하는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 지금도 지금이지만 겨울에 눈 내리고 난 후에 비료 푸대로 눈썰매 타면 최고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긴 너무 급경사라 올라가기도 힘들겠지만.

 

 

삶과 죽음이 이렇게 한 공간에서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게 좋다. 

 

 

 

대릉원에서 보게 된 역사논쟁의 실마리

 

그 다음에 간 곳은 대릉원大陵苑(큰 능묘가 있는 동산)이다. 무덤으로 정원을 만들었다는 건데, 참 기발하다. 역시나 관광의 도시답게 관광객이 엄청 많더라. 들어가자마자 경악스런 비석을 보고야 말았다.

 

 

이곳은 국토통일의 기상이 넘치고 민족문화가 찬란하게 꽃핀 신라의 천년고도 서라벌의 옛터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신라의 통일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기리 보존하기 위하여 경주지구 개발의 대영단을 내리셨다.

(...중략...)

우리 민족문화의 전통을 발전 한국의 위대한 기상 속에 재현코져 하는 그 드높은 뜻을 여기 새겨서 기리 전하고져 한다. -문화공보부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영단을 내리셨다란다. 이곳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게 되면서 그 공을 박정희에게 모조리 돌리고 있는 글이었다. 그 글로 인해 기분이 다운되긴 했지만 우리 근대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표이기에 그곳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신라의 고분이 왕들의 위엄을 드러내는 공간이듯이, 왕의 위엄을 빌어 박대통령의 위엄이 드러나는 대릉원의 의미는 남달랐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과거사를 재정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있었다. 과거사에 현재의 관점을 투영하여 과거의 현재화를 진행하는 것이었으니까. 결국 역사란 이긴 자의 역사이듯이, 과거의 복원도 복원자의 현재였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대영단의 고심이 스민 대릉원을 힘차게 걸었다.

정말 잘 꾸며진 무덤 정원이더라. 한적하고 운치 있었다. 그곳에서 한나절 머물며 있고 싶은 생각도 들더라. 천마총은 무덤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지 보여줬다. 그 안에는 외부와 다르게 시원하더라.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관과 곽이 어떤 구조로 만들어졌고 거대한 봉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관을 나무로 만든 곽으로 한 번 씌우고 그 위에 돌로 전체면을 한 번 더 감싼다. 돌멩이들이 쌓인 두께가 엄청났는데 그걸 쌓느라 엄청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흙으로 그걸 감싸면 끝이다.

그곳에 있던 무덤들이 다 그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왕의 장례식은 왕가의 장례식으로만 끝나지 않고 경주에 살던 백성들까지 참여하는 경주의 행사였을 것이다. 그렇게 큰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는 갑남을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테니까. 지금 대통령이 돌아가시면 하는 국장은 그것에 비하면 약과겠지.

 

 

 고종의 장례식은 한양사람들에게 큰 행사였듯, 이런 거대 봉분을 만드는 것도 금성인들에겐 큰 행사였을 거다.

 

 

인용

목차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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