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
그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고 했을 때, 웬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돌아다니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먼지털이식 수사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은 그는 여느 때처럼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던졌다.
▲ 끊이지 않는 발걸음. 무엇을 위해 이들은 그의 죽음을 기리려 하는 걸까?
한 사람이 죽음을 대하는 갖가지 자세
그런 소식을 듣고 두려웠던 것은 거대 언론들의 횡포였다. ‘얼마나 구린 게 많았으면 자살까지 했을까(한 언론은 그의 죽음을 ‘서거’가 부당하다며, ‘사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라고 비아냥거릴 것만 같고 걔 중에 어떤 사람들은 ‘무책임하다’라거나 ‘잘 죽었다’라는 말로 온갖 비방을 퍼부을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후 상황은 확실히 달랐다. 조문 행렬이 그치지 않고 계속 되고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만하다.
서울시청 광장이 폐쇄되고 대한문 빈소가 겹겹이 차단당했지만 시민들의 열망을 누그러뜨릴 순 없었다. 빈소가 차려진 지 5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자발적인 시민들의 조문행렬(기다리는 데 3~4시간이 걸린단다)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민심이 폭발적일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비아냥이 확산되긴 커녕 온갖 비판을 받으며 묻혀 버리니 참으로 다행이다.
작년엔 쇠고기 파동이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면 올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하나의 기폭제가 된 듯하다. 이런 상황이기에 정부는 시위로까지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모든 대화 창구를 막아버렸다. 과연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답답함을 토로할 수 있는 장소를 막아버리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제 2의 '명박산성',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더니 그들의 치졸함에 쓴웃음만 난다.
헐뜯으려는 현 권력의 공격 실패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심으로 이제 더 이상 물고 늘어질 상대가 없어졌다. 현 정부는 정국 돌파용으로 참여정부 흠집 내기에 몰두했다. 깨끗한 정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여러 가지 단서를 찾아내 흠집이라도 낼 수 있다면 자신들은 면죄부라도 받게 된 양 떳떳해지기 때문이리라.
그런 생각들이 유아적인 발상(남을 헐뜯음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대중들에겐 잘 먹혔다. 그 ‘덕’에 국민들은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고 참여정부의 후안무치한 비리를 성토하기 바빴다. 결국 그가 계속 살아계셨다면 이 정부 내내 검·경에 물어뜯게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의 죽음은 ‘가야할 때가 언제인 줄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해당된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건 매우 위험한 결과론적인 접근에 불과할 테지만. 그로 인해 우린 그의 청렴결백하고 비권위주의적인 모습을 추억할 수 있다.
이렇게 그를 조문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우리 시대에 좋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남겼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인간다움이 남긴 인간다운 발걸음들. 바로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의 풍경이다.
▲ 그가 우리에게 남긴 정신을 받아서 이어가려 노력해야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정신을.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의 부단한 싸움
이러한 의미들이 북핵 실험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묻히고 있어 안타깝다. 보수신문에선 역시나 벌써부터 노무현 지우기에 나섰다. 그들 신문에 북한에 관한 기사만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서거 관련 소식은 짧게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알만 하다. 그는 보수신문과 싸워왔기에 그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건 그들에게 좋지 않다.
모든 과거는 새롭게 구성된다. 지금부턴 힘을 가진 자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우린 승자에 의해 꾸며진 역사에 기대지 말고 우리 안에 살아있고 진실에 가까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지워지고 왜곡된 역사를 상기하며, 부단히 살려내려 노력해야 한다.
▲ 신문은 하나의 권력이고 하나의 주관적인 시선이다. 그걸 믿으려 할 게 아니라, 판단하고 진실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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