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채의 도시, 전주
전주가 비빔밥으로 유명한 것이야 지나가는 개도 알 테지만, 부채로 유명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전주에서 30년을 살아온 나로서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 이번 기회를 통해 전주가 부채의 도시였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단오와 부채의 관계
전주에서 부채가 유명해진 이유는 대나무가 많이 나며, 질 좋은 한지가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전라감영(전라도와 제주의 행정을 총괄하던 관청)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부채를 만들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부채들은 단오날에 임금에게 진상되었다고 한다.
▲ 전라감영 안에 있는 선자청이란 곳이 보인다.
그런데 ‘단오날에 하필 부채를 진상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당연히 뒤따른다. 여기엔 조상들의 생활상이 숨어있다. 옛 문헌인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등을 살펴보면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여 ‘단오에는 부채를 주고, 동지에는 책력(달력)을 준다’라고 되어 있다. 단오는 음력 3월 3일, 5월 5일, 6월 6일과 같이 일과 월이 겹치는 날로 길일吉日임과 동시에 양기가 가장 충만하여 최고의 날로 쳐왔다고 한다. 그래서 부채를 왕에게 진상하면 왕은 그 부채를 대신들에게 하사하는데, 하사한 부채에는 금강산의 1만 2천봉이 그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공조와 호남, 영남의 두 감영 및 통제영에서는 단오가 되면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였다. 조정의 시종관 이상과 삼영(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및 삼군문을 말함)에까지 모두 예에 따라 차등 있게 받는다. 그러면 부채를 얻은 사람은 다시 그것을 자기의 친척, 친구, 묘지기, 전객(소작인)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므로 ‘시골에서 생색내는 것은 여름에는 부채요, 겨울에는 달력이다’라는 속담이 생겼다. -『열양세시기』 「단오」
工曹及湖南ㆍ嶺南二監營及統制營, 趂端午, 造扇進御. 朝廷侍從以上三營, 皆例餉有差. 得扇者又以分之親戚知舊塚人佃客. 故諺曰: “鄕中生色夏扇冬曆.” -『洌陽歲時記』 「端午」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 부채를 전라감영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하니, ‘전주=부채의 도시’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 부채문화관을 둘러보니 여러 다양한 부채들이 있다.
부채에 자신을 남기다
부채만들기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이 있지만, 전주시청의 도움으로 무료로 할 수 있었다. 체험은 이미 만들어진 부채의 표면에 그림이나 글귀를 남기는 정도였다.
선조들에게 있어서 부채는 단순히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만은 아니었다. 지금의 명품 핸드백에 버금갈 정도로 신분을 드러내는 ‘문화적 도구’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채의 표면에 어떤 글귀를 쓰고,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자신의 신분이나 사상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증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부채의 의미 때문에 영화팀이 경험한 것은 단순히 부채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만은 아니었다. 그건 나를 드러낼 ‘상징’을 만드는 간접체험이었던 것이다. 영화팀 개개인이 만든 작품엔, 바로 그 사람이 들어있었다.
▲ 부채에 자신을 맘껏 담은 아이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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