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주와 영화제, 그리고 여행
삶은 아이러니다. 막상 그곳에 살 땐, 그곳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떠나고 난 후에야 그곳의 가치를 알게 되고 그제야 부랴부랴 찾아가게 된다. 그건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막상 곁에 있을 땐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떠난 후엔 빈자리에 몸서리치며 맘 아파한다. 하지만 그 순간엔 이미 늦는다. 후회는 언제나 때늦은 깨달음일 수밖에 없다.
▲ 떠난 다음에야 전주를 다시 보게 됐고, 이렇게 여행처럼 다시 오게 됐다.
고향 전주로 여행을 떠나다
이처럼 전주에 살 땐 전주영화제에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건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제주도를 둘러보지 않는 것과 같다. 4월에 단재친구들과 제주도를 여행할 때, 성산리 일대에서 자전거 바퀴를 때우느라 민가에 신세를 져야 했다.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시며, 자신은 성산일출봉에 가본 적도 쇠소깍에 가본 적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였겠지만, 그것보다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처럼 나도 언제든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영화제에 별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막상 서울에 새둥지를 틀고 나서야 단재친구들과 함께 전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니 참, 삶이란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가서 보는 전주는 어떤 기분일지 기대하며 단재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 전주의 야경. 치명자산에 올라 찍은 사진이다. (사진출처- 학산)
영화는 책이다
영화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영화제를 다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배가 고프다고 밥을 먹는 것과는 다르다. 단순한 생리현상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영화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영화란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의 차이를 들며 반박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 안에 채워진 가치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런 정의가 이해될 것이다.
책엔 한 개인이 흡수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그건 그 시대가 디자인한 생각이건, 여러 책을 통해 영향 받은 생각이건 한 사람 안에서 버무려진 것들이 표현된 것이다. 그게 동적인 영상으로 표현되건, 정적인 글로 표현되건 표현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책을 본 사람은 그런 메시지를 읽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를 건져내야 하고, 보기 전과 본 후의 모습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영화프로젝트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단순히 영화를 보며 ‘신선놀음’을 하려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메시지를 통해 삶을 맛보고 나의 변화를 꿈꾸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쌓이고 쌓이면 결국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며 길을 열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정자가 말했다. “『논어』를 읽고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일도 없는 사람도 있고, 읽기를 마친 후에 어떤 사람은 그 중 한두 구절을 깨달아 기뻐하는 사람도 있으며, 읽기를 마친 후에 어떤 사람은 배우길 좋아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된 사람도 있고, 읽기를 마친 후에 곧바로 손이 절로 춤추고 발이 절로 리듬을 밟을 정도로 흥분했다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程子曰: “讀『論語』, 有讀了全然無事者; 有讀了後, 其中得一兩句喜者; 有讀了後, 知好之者; 有讀了後,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 -『論語』, 集註序說
송나라 철학자 정자는 『논어』라는 책을 보고 난 후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깊이가 다르다고 보았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은 이와 같은 게 아닐까.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 모습이 같거나 누구를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이 같다면, 그건 헛 시간을 보낸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굴 만나고 책을 보았으면, 그걸 통해서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변해야 한다. 당연히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제를 다녀온 우리는 과연 영화제에 참여하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한두 장면을 얻은 기쁨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을까, 삶이 활짝 열리는 흥분에 손이 춤추고 기뻐 발을 구르는 지도 모르는 희열을 느끼며 돌아왔을까?
▲ 전주국제영화제를 보러 다시 전주에 오게 되니 9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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