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기전과 전동성당
전주한옥마을은 몇 년 사이에 엄청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먹자골목이 대부분이어서 한옥마을을 다니다 보면 ‘기억나는 건 비싼 먹을거리와 구석구석 넘쳐나는 사람’만 기억에 남는 묘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 왔다면 당연히 경기전과 전동성당은 둘러봐야 한다. 그리고 우린 두 곳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 경기전과 전동성당이란 조합이 이색적이다.
동양의 역사와 서양의 역사가 한 곳에 있게 된 배경
경기전慶基殿은 조선이란 나라의 상징성을 지닌 건물이고 전동성당은 서양문물이 유입되었음을 나타내주는 상징성이 있는 건물이다. 그러니 당연히 두 건축물이 바로 옆에 있는 건 어색한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조선은 유교만을 숭상하는 나라로 불교 뿐 아니라 천주교에 대해서도 가혹한 탄압을 했다. 실제로 정조의 시대가 끝나자 정조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던 남인 세력은 ‘신유박해’라는 천주교 탄압을 당한다. 이 때문에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비운의 역사 덕(?)에 오백 권 이상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천주교 탄압은 전주라고 예외일 순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가혹했을 것이다. 지금의 전동성당 자리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곳이다. 서울의 절두산, 전주의 치명자산도 이런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미 절두切頭(머리를 자르다)라는 단어와 치명자致命者(목숨을 바친 사람)라는 단어엔 순교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런 단어가 산 이름이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힘이리라.
하지만 밟으면 밟을수록 뿌리내리는 잡초처럼 종교의 생명력도 탄압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단합되고 강해진다고 했던가. 그 때문에 1914년에 보드네 신부는 순교지였던 이곳에 전동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핍박의 상처가 상징성이 되어 천주교를 퍼뜨리는 구심점이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 경기전과 전동성당, 조선과 서양문물의 만남이다.
전동성당과 경기전의 특징
전동성당은 호남에서 최초의 세워진 근대식 건축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건축물 자체가 작고 아담하며 서양 건축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색적인 느낌 때문에 영화 촬영장소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단재 친구들도 전동성당의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해 몇 번이고 둘러봤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곳이다. 이씨 조선(이런 명칭을 좋아하진 않는다. 수많은 민초들의 모습은 묻히고 왕의 모습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전 자체가 이성계의 핏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에 쓴다.)의 상징성이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진을 보기 위해선 홍살문과 외삼문, 그리고 내삼문 총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할 것은 외삼문부터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 정전까지는 사람이 걸어갈 수 없는 ‘신도神道’가 있다는 것이다. 신도는 신들이 다니는 길로, 당연히 사람이 걸어 다녀서는 안 된다.
이성계의 어진을 보고 경기전 옆에 있는 사고로 갔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왕조실록』은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의 네 곳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란으로 전주사고를 제외한 세 곳의 사고에 있던 실록은 병화로 소실되고 말았다. 전주사고에 있던 유일본 실록이 살아남은 덕에, 현재까지 조선의 역사가 전해질 수 있었고 1997년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남아있는 전주사고의 모습은 복원된 모습에 불과하지만, 그런 역사적인 의미를 알고 본다면 특별하게 보일 것이다.
▲ 경기전과 전동성당을 함께 가며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
전동성당을 볼 때, 변하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느낀다. 빠르게 변해가고, 빠르게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있는 현시대에 경종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동성당은 나에게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현시대의 패러다임도 수많은 패러다임의 일부일 뿐이야. 그런 패러다임을 절대적인 진리인양 받아들이며 그렇게 살아갈 필요는 없어.’라고 이야기를 던져 주는 것만 같다.
언젠가 준규쌤이 “과학도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예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린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할 테지만, 과학도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이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도 각자의 개성만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건 곧 천동설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지동설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같은 세상에 살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주류적인 관점이 있고 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되짚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 중 하나는 “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야.”라는 말일 것이다. 그 사람의 그런 말이야말로 얼마나 자신을 기만하며 다른 사람을 농락하는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주류적 관점만이 진리인양 유포되는 획일화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주한옥마을을 돌아다니며 맛집만 찾아다니기보다 이런 건축물들이 나에게 던지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때 단순히 ‘사람만 많고 음식은 비싸기만 하던데’라는 감상에서 벗어나 여러 샘솟는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 경기전이 조선의 시작을 의미하는 곳이라면, 전동성당은 조선의 종말을 알려주는 곳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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