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목대와 풍남문을 둘러보며 발전에 대해 생각하다
전주에는 누각들이 많다. 그냥 하릴 없이 있고 싶을 때 이런 곳에 가서 바람을 쐬어도 좋다.
▲ 전주의 누각인 한벽당과 전주천을 거닐며 운동 중인 사람들.
오목대: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오목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말 무신이며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를 알아야 한다.
조선이란 나라가 만들어지기 전인 고려말에 이성계는 남원 일대에서 왜구인 아지발도阿只拔道의 무리를 정벌하고 전주로 돌아와 바로 이곳, 오목대에서 잔치를 열며 대풍가大風歌를 불러 재꼈다고 한다. 대풍가는 시골출신인 유방劉邦이 명문가출신인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워 영포의 반란까지 진압한 후에 고향인 풍패(전주객사의 현판에 쓰여 있는 ‘풍패지관豊沛之館’이란 말도 ‘한나라 태조인 유방의 집’이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나라를 창업한 사람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쓰였음)에 들러 읊은 노래다. 그렇다면 이성계는 대풍가를 불러재낀 이때부터 조선이란 나라를 창업할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위화도 회군의 싹은 아마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大風起兮雲飛揚 |
큰 바람 일고 구름은 높게 날아가네. |
대풍기혜운비양 | |
威加海內兮歸故鄕 |
위풍을 해내에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네. |
위가해내혜귀고향 | |
安得猛士兮守四方 |
내 어찌 용맹한 인재를 얻어 사방을 지키지 않을쏘냐. |
안득맹사혜수사방 |
▲ 오목대에 걸려 있는 유방의 대풍가.
지금의 오목대는 전주한옥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소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대사습놀이가 열릴 때엔 판소리 공연장소로도 활용된다. 그때에 오목대에 오른다면 이성계가 대풍가를 부르며 느꼈을 법한 흥취와 가슴 벅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오목대에 올라 마치 유방처럼 신나게 놀았다.
풍남문: 오래된 미래를 지키려는 노력
전주읍성의 남쪽 문이다. 서울의 남문과 같은 의미다(2008년 화마에 휩쓸린 숭례문이 2013년 5월에 개방되었다). 당연하겠지만, 규모의 차이는 있다. 영조 때는 명견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지만, 불에 탄 누각을 영조 44년에 다시 지으며 지금의 이름인 ‘풍남문’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풍남문은 순종 때 도시계획에 따라 성벽과 성문이 많이 훼손된 것을 1978년에 보수하여 조금이라도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되찾은 것이라 한다.
개발논리에 의해 과거는 사라지고, 관광산업이나 전통을 지키자는 논리에 의해 과거가 복구되는 기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대강 공사도 새만금 공사, 청계천 복구도 바로 이런 논리에 의한 싸움의 한 단면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개발논리가 이겨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개발논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원형보존에 대한 절실함도 당연히 커진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일일 것이다.
과거를 거부하며 발전한 나라나 개인은 얼마 가지 않아 뼈저린 패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과거 또한 나의 살아 숨 쉰 흔적이기에, 나의 한계와 가능성 그 모든 게 응축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미래로 박차고 나갈 추진력이 생긴다. 그게 어찌 한 개인만의 이야기이겠는가. 그건 역사를 안고 있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 풍남문을 보고 있으니 개발 논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전주와 완주의 통합에 대한 견해: 見小利則大事不成
올 6월에 전주시민과 완주군민의 주민투표를 통해 전주-완주의 통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전주와 완주는 조선시대만 해도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는데,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이런 얘기만 듣고 보면, 전주와 완주를 통합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로 10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며 전주와 완주는 전혀 다른 발전 방향으로 나갔다. 전주는 산업, 상업의 도시 행정 중심으로, 완주는 농업의 농촌 행정 중심으로 나아간 것이다.
전주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광역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전북엔 광역시가 없다 보니 개발에서도 많이 소외됐고, 심지어 광주의 하위 도시로 전락했다는 원성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회에 완주를 통합하여 광역시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논리다. 일면 그럴 듯한 내용이다.
하지만 완주의 입장에서 보면 별로 좋을 게 없다. 완주군민을 위한 행정을 할 수 있는 군청 등이 사라지고 전주시의 하위 구區(지금 전주시는 두 개의 구가 있지만, 통합될 경우 네 개의 구를 신설할 걸 안행부에 4월 17일에 요청했음)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옥구군과 군산시가 통합될 때, 군산시는 옥구군 일대가 개발될 수 있다는 논리를 들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옥구군민이 누린 혜택이란 버스요금이 단일화 됐다는 것 외엔 없었다. 시가 된 탓에 세금은 올랐고 시내 중심지역의 개발 탓에 옥구군 일대는 개발에서 제외되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작고 볼품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큰 집에 들어가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큰 집 주인이 “자기 집처럼 편하게 사세요”라고 할지라도 찬밥 신세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광역시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은 좋지만, 그게 공동체의 해체를 낳고 지역 불균형을 가속화시키는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주-완주의 통합은 ‘완주군민을 위한 청사진이 수립되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 전주-완주 통합을 위한 투표를 한다고 했었는데 결국 부결됐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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