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바람
그런데 중상주의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보호관세가 제 구실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국내 산업이다. 수출할 물건이 없는데 수출에 집중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국내에 어느 정도의 산업 기반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에스파냐를 본받아 상업과 무역에만 관심을 가졌던 각국은 점차 산업과 공업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자 중세 말기부터 번영하기 시작한 자치도시들에 새삼 눈길이 갔다. 사실 중상주의는 13세기 자치도시의 상인들이 이미 실험했다가 역시 마찬가지 문제점을 느끼고 포기한 정책이었다(물론 그때는 국가라는 강력한 정치체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상업과 무역은 잘하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물자를 유통시키는 것일 뿐 생산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어디선가 이득을 보면 반드시 그만큼 어디선가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즉 부가 외부에서 추가로 유입되지 않는다면 총체적인 부의 증가는 없다. 그래서 13세기 이탈리아 자치도시의 상인들은 자체적으로 생산 시스템을 마련한 적이 있었다. 수공업자에게 미리 돈과 원료를 주고 물건을 제작하게 한 뒤 그것을 가지고 상업과 무역을 전개하는 방식인데, 이것을 선대제(putting-out system)라고 불렀다.
개별 상인이 개별 수공업자와 거래하는 이 옛 방식을 그대로 국가 체제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부의 생산을 국내적으로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발상은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중세의 그런 실험을 통해 ‘시장을 위한 생산’이라는 관념이 충분히 무르익었다. 그런 발상과 관념이 낳은 새로운 제도가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적(자본가적) 생산‘이라는 용어는 19세기 카를 마르크스(Karl Mars, 1818~83)가 처음 사용했고, 생산과 분배를 포괄하는 경제 제도라는 의미로서의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용어는 20세기에 들어서야 사용되지만, 자본주의의 발상과 관념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싹텄던 것이다.
중세 서유럽에 동방의 문물을 전함으로써 서유럽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이탈리아 상인들이었고, 대항해시대에 서유럽을 세계 최대의 경제 중심지로 만든 것은 에스파냐였다. 그러나 이들 지중해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뿌리를 키우는 역할에 그쳤을 뿐 그 꽃은 피우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전통적인 문명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이 강한 곳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어렵다. 변화의 바람은 중심이 아니라 변방으로부터 온다. 그럼 그 변방은 어딜까? 바로 중세적 전통이 가장 약한 곳이다.
전통적인 것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요소가 신분제다. 기도하는 사람(성직자), 지배하는 사람(영주), 싸우는 사람(기사), 일하는 사람(농노)이 명확히 나뉘어 있던 중세 사회의 전통에서는 모든 개개인이 신분에 의해 규정된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귀족은 상업에 종사하는 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아무리 이재 감각이 있는 영주라 해도 대상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애초부터 막혀 있었으며, 농노는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큰 재산을 모은다거나 농노 신분을 면할 길이 원래부터 봉쇄되어 있었다. 이런 신분제를 더욱 부추긴 게 종교의 굴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중세의 그리스도교(로마 가톨릭)는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했다. 현세는 좋은 내세(천국)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 혹은 시험장에 불과했다. 따라서 현세에는 오로지 신앙만이 중요할 뿐 세속적인 삶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대항해시대가 서유럽의 경제적 부를 가져다 준 것만으로는 중세의 틀을 완전히 깰 수 없었다. 중세를 부수는 또 하나의 망치, 종교개혁이 필요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또한 루터의 사상보다 칼뱅주의가 훨씬 중요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칼뱅주의는 현세의 세속적인 삶이 신앙과 무관한 게 아니라 오히려 좋은 내세를 보장받는 척도라고 가르쳤으니까(실제로 남프랑스에 자리 잡은 위그노는 상업에 많이 종사했는데, 이들이 없었다면 프랑스는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중상주의도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어디서부터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는 자명해진다. 자본주의의 발생에 필요한 적당한 부를 가지고 있고, 중세의 종교적 신분제적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곳, 바로 영국이 그곳이다. 영국은 에스파냐를 물리치고 최대의 해상무역 국가로 발돋움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이루기 위한 ‘재정적 자격’을 구비했고, 비록 가톨릭 냄새가 짙지만 일찍부터 영국 국교회로 종교 독립을 이룸으로써 ‘종교적 면허’도 땄다. 게다가 영국은 대륙의 봉건제가 그다지 강력하게 뿌리 내리지 못한 곳이었으므로 신분적 굴레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웠다【사실 에스파냐도 영국 못지않게 자본주의의 요건을 갖춘 곳이었다. 경제적 부라면 영국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었고, 봉건제의 발달은 영국보다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에스파냐에서 자본주의를 이루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장점이 곧 단점이 되어버린 탓이다. 오랜 이슬람 지배를 받았기에 봉건제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레콘키스타가 끝난 직후부터 에스파냐는 이교도에 대한 과도한 적대감으로 인해 곧장 골수 가톨릭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합스부르크 왕가 때문이다. 만약 합스부르크가 에스파냐를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에스파냐의 지배층은 그렇게까지 보수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 에스파냐 왕실이 통혼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에 접근한 이유는 다른 서유럽 왕실들에 비해 정통성이 취약하다는 약점 때문이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그 대상이 합스부르크라는 것은 에스파냐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서는 불행이었다】.
15세기 말부터 17세기 전반까지 영국 각지에서 일어난 인클로저 운동은 바로 그런 영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원래 이 운동은 공동체적 굴레에서 벗어난 농민들이 효율적인 농사를 위해 자기들끼리 자발적으로 토지를 교환하고 소유하는 평화로운 과정으로 시작했다(농민들은 새로 자기 소유가 된 토지에 울타리를 둘렀는데, 여기서 ‘인클로저’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농민들의 토지 구획에서 힌트를 얻은 봉건 영주들이 농민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내고 농민들의 울타리 대신 자신들의 울타리를 두르면서 인클로저 운동의 취지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기준으로 본다면 그것은 취지의 변질이라기보다 혁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주들의 의도는 바로 이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대신 양들을 길러 당시 첨단 산업이던 양모 가공업의 원료를 대기 위한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자본주의의 초기적 단계에 속한다【역사에서 올바른 가치 평가란 무엇일까? 토지를 잃은 영국 농민들은 유랑민이 되어 고통을 겪었고, 이것이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당시 진보적 지식인이던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개탄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나무랄 만한 영주들의 탐욕은 결국 영국 자본주의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영국은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통시대적으로 올바른 평가가 어렵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중국의 시황릉은 축조 당시 수십만 명의 피와 땀을 잡아먹었으나 후대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면서 농민들 중 일부 부유층은 자작동(yeoman)으로 성장했고, 이들 중 상층부가 또 평민 출신으로 가장 귀족 신분에 가까이 다가간 젠트리(entry)를 형성했다. 이 젠트리가 의회 시민원의 주력을 이루었고 청교도혁명의 주체 세력이 되었으니, 영국의 근대적 의회제도는 자본주의가 없으면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선후 관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거꾸로 영국이 중세적 전통이 약하고 의회적 전통이 강하지 않았더라면 자본주의의 발생도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유토피아를 꿈꾼 사상가 독일 화가 홀바인이 그린 토머스 모어의 초상이다. 모어는 주의가 싹트기도 전에 사회주의사상을 품은 진보적인 사상가였으며, 지주의 욕심 때문에 농민이 토지에서 쫓겨나 산업 노동자가 되는 현상을 개탄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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