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공생을 위한 학교의 역할
아무래도 지금껏 한국사회에서 살았고 이런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당연한 듯 여기며 살아왔던 터라, ‘중요한 일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더욱이 지금처럼 청년실업이 100만(실제론 더 높을 것이다)에 이르러 ‘청년은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에선 우치다쌤의 말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니 말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나 사회에 발 딛고 집단을 위해 일도 하고 무언가 자신의 가치도 활짝 펴면서 살고 싶지만, 사회에선 그러한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울분에만 빠져들어선 안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떤 사회냐에 따라 그 사회의 모습은 천차만별 달랐었고,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치다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생을 가르쳐야 할 학교가 공멸을 가르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학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치다쌤은 “어렸을 때 갖춰야 하는 것은 ‘가치관과 언어와 종교가 다른 개인과 만났을 때, 다른 집단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 정확히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나만 잘 살면 된다’, ‘군대도 가지 않은 여자들이 사회적인 이익을 독점하는 탓에 남자들만 손해를 보고 있다’, ‘외국노동자들이 사회를 혼란시키고 있다’며 끊임없이 세대간, 집단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엔 아예 제주 예먼 난민 사태까지 등장하며 이런 갈등은 더욱 표면화되었다.
학교의 한 학생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불만을 가득 품고 있기에, “그들이 뭘 했는데, 그렇게까지 싫어하니?”라고 물어봤었다. 그러자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그냥 싫어요”라는 한 마디 말만이 돌아왔다. 난 그 학생의 그 한 마디 말 자체가 우리 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서로 간에 반목하도록 부추기는 사회, 그래서 그 적개심을 통해 개인과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서 함께 뭉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가 바로 지금의 한국사회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적개심이나 노골적인 기피증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형성된다는 점을 결코 가벼이 보아선 안 된다. 학교는 보통 ‘집단생활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연대책임만 물을 뿐 공생을 얘기하거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알려주진 않는다. 오히려 성적이란 단일한 잣대로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놓아 불신을 조장하고 개인주의를 당연시하며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방조하기까지 한다.
▲ 단식 투쟁에 맞붙은 폭식투쟁. 어쩌다 우린 이렇게 서로 간에 반목과 질시를 하게 되었을까?
여러분들은 다양한 것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이에 대해 우치다쌤은 “자기만 돌아보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 것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이 크며 자존심이 세다는 점입니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하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회적으로는 그런 집착을 좋은 것인 양 높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집착하는 아이들은 소비활동에 푹 빠져, 무언가를 살 돈이 없을 경우 사채를 빌려서라도 물건을 사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요? 차ㆍ옷ㆍ집 등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자존심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에 집착하느라 정작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나?’를 고민할 시간을 없게 만듭니다.”라고 꼬집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본 사회에 대한 평가인데, 결코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만 들리지 않는다는 게 뼈저린 부분일 것이다.
이런 환경이기에 교육은 더욱 더 오염되어 가고 변질되어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의 교육이란 한 마디로 ‘지위 획득을 위한 되물림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우치다쌤도 학교 교육의 이런 한계를 제대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치다쌤은 오히려 “최초의 학교가 해왔던 기본적인 것들을 더욱 충실히 가르쳐야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제일 먼저 ‘여러분들은 다양한 것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비겁한 부분도, 용기 있는 부분도, 착한 부분도, 악한 부분도 함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성이란 수미일관적일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나는 이런 패션만 입어야 해’, ‘나는 이 가방만 맬 거야’라는 것을 개성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개성이 아니라 진정한 개성은 ‘나도 모르는 깊고 풍부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거라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다양한 감성을 느끼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낸 아이들이 공생 감각을 자연히 키웁니다.”라고 말하며 강연을 마쳤다.
▲ 때론 존재를 뒤흔드는 말도 있고 때론 존재를 전복시킬 만남도 있다. 그런 만남은 분명 맛남이다.
알 듯 모를 듯 매력적이었던 이야기, ‘공생의 필살기’
강의는 짧고 명료했지만, 후기는 길고도 희미했다. 아무래도 아직 우치다쌤의 말을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었기에 그걸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며 기술하려다보니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강연에선 ‘몸=자연물’, ‘자연물을 대할 때 지성이 발동한다’, ‘나=오래된 목조건물’, ‘공생 능력은 자연히 습득된다’, ‘학교는 다양한 감성을 느끼게 하고 다양한 사람과 만나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들을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고 지금의 개인적이고 서로를 반목하는 사회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아직 공부가 많이 부족하기에 놓친 부분들이 많지만, 이렇게 하나씩 절차탁마해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준규쌤이 우치다쌤에 대해 “우치다 선생님의 말씀이 뽕띠 철학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봅니다. 거기에 우치다 선생님이 유태인과 유대민족 전문가이신만큼 유대 철학자인 마틴부버와 레비나스가 녹아있는 거죠. 하지만 우치다 타츠루가 없다면 뽕띠 / 부버 / 레비나스 / 라캉 / 레비스트로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달됐을 리 없을 겁니다. 그건 우치다 선생님만의 공력이라고 봐요. 한국의 공부 많이 한 철학도들이 많지만 우치다 같은 이야기꾼은 없을 겁니다”라고 평가한 부분에 동의하기에 그걸 인용하며 길고 길었던 ‘공생의 필살기’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 제주바다와 우치다 타츠루와 박동섭, 이런 기념비적인 사진이 좋다. 알쏭달쏭 그게 우치다 강의의 매력.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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