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질의응답
내 안의 싫어하는 부분도 내 부분
Q
‘공생의 필살기’의 첫 번째가 ‘자기 자아를 디자인하라’라는 말인데 그 아파트엔 자기가 좋아하는 자아도 있고, 싫어하는 자아도 있는데 싫어하는 자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요?
A
‘청소도 안 하고 아파트를 더럽혀서, 나갔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 그걸 중재하는 사람은 ‘같이 산 것도 인연인데 같이 살아야죠’라고 얘길할 겁니다. 억압하거나 아예 쫓아내기보단 같이 사는 게 낫습니다. 왜냐 하면 ‘구두쇠적인 면이 싫어’, ‘폭력적인 면이 싫어’라고 하면서 그런 부분을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오히려 그런 면모들이 더욱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리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 영화 [아이덴티티]는 다양한 자아를 죽이고 전일한 주체가 된다는 게, 어떤 끔찍한 일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기와의 공생이 가장 중요하다
Q
‘함께 살아가기’의 여러 모양이 있다고 한다면,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가기,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자연환경과 함께 살아가기, 인문환경과 함께 살아가기’의 네 가지 정도를 들 수 있을 텐데요. 이 네 가지의 순서는 어떻게 되나요?
A
자기와의 공생이 당연히 먼저입니다. 자기와 공생할 수 없는 사람이 타인과 공생하려 할 때 남는 건 ‘참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느 일정 기간은 가능하나, 결코 오래 갈 수는 없습니다.
10살은 자아가 발달되며 감수성의 자라는 터닝포인트
Q
그렇다면 어릴 때 학교에 가는 것보다 좀 더 성장한 후에 가는 게 낫나요?
A
그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는 자아미분화 상태이기에 친구가 울 때 같이 울어 버립니다.
그런 아이들에게도 자아를 획득하기 위한 터닝 포인트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11살(한국 나이 12살) 때 아버지가 매일 소설을 읽으라고 권했는데, 그 때 『키다리 아저씨』, 『빨간 머리 앤』, 『소공녀』 등의 소녀 감성의 소설을 읽어봤지만 처음엔 재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권을 읽으며 소녀가 되어 세상을 경험하게 되니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들이 훨씬 풍부해졌습니다. 그런 것뿐만 아니라, 『영화』, 『만화』 등을 통해서도 자아를 풍부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저도 『겨울연가』를 재밌게 봤는데, 일본에선 엄마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좋았지만, 아빠들에겐 그렇게까지 인기가 없었습니다. 엄마들은 최지우에 공감하기에 배용준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이입하는 반면, 아빠들은 배용준이 되어 사랑을 애걸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지우에 이입하여 많이 울었습니다.
어릴 때 그런 식의 공감능력이 있지 않으면 커서는 생기기 어렵습니다. 단정지을 순 없지만, 10살 정도면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너를 만나러 가서 나를 만나는 이야기다. 우치다쌤처럼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성숙해진다.
남성적인 사회에서 여성성의 회복
Q
책의 스타일과 강연 스타일이 완전히 같습니다. 여성의 감수성에 대해 여러 얘길 많이 해주셨는데, 저희 반(초등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의 감수성을 이해하기가 무척이나 힘듭니다. 남자들의 감수성 중 좋은 부분은 어떤 게 있나요?
A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저는 남성이기에 ‘여성의 감수성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만을 고민했던 것입니다. 지금 사회란 게 남성의 감수성이 없으면 사회 활동 자체를 할 수 없지 않나요? 그건 곧 의식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남성의 감수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걸 말합니다. 그렇기에 남성의 감수성이 어떻게 내 몸에 침투해 들어오는지 자각해야 하며, 그걸 여성의 감수성과 함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의 내용엔 가사 일을 하는 게 많이 나오는데 그게 여성의 일에 대한 어떤 동경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성 작가들의 경우 스케일이 큰 얘기는 잘 합니다. 그 때 스케일이 크다는 건 다양한 인격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는 얘기입니다. 그에 반해 여성 작가의 책엔 수미일관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문제아는 평생 문제아로, 더러운 사람은 평생 더러운 사람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 [돼지책]의 마지막 장면, 준규쌤은 이 장면을 "차량의 심장부인 엔진룸을 수리한다는 것은 남편과 두 아들 돼지의 게으름을 고쳤다는 의미도 있고 넓게 보면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주의를 개조한다는 뜻도 있을 게다."라고 평가했다. 우치다쌤과 공명한다.
거시적인 문제는 교사 집단 속에서
Q
방법적인 해결책보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강연이었다. 남북분단, 자본주의로 인한 계층주의, 학교 내의 계층에 대한 공생 등 여러 문제가 있는데,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인의 관점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이 있는가?
A
교사들이 너무 성실합니다. 그래서 ‘나 혼자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위에 제시한 문제들 중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사들이 뭉쳐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인 거죠. 즉, 교사 집단 내에서 해결책을 모색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만날 수 있는 몇 명의 학생을 위한 교육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에, 나머지 일은 집단에서 해나가면 됩니다.
고베여학원에 근무할 때 졸업한지 한참이나 지난 분들 중에 재산을 학교에 재산을 기부하러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관리직이었기에 얼마가 기부되는지 잘 알 수 있었는데, 평생 모은 돈을 학교에 기부하시는 분이 매년 한 명씩은 있었습니다. 그 땐 단순히 ‘잘된 일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걸 올해 수입원에 넣어도 되나?’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70년 전에 받은 교육에 대해 은혜를 갚는다는 건데, 지금 이 학교엔 그 당시의 교수들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수의, 어떤 교육방침이 이 분들을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육활동이란 개인이 하는 게 아닌, 어떤 전체적인 흐름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집단이란 교육을 책임진 모든 사람들, 시간을 초월한 어떤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세포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그 세포들이 모여 집단지성을 이루는 것이죠. 이처럼 혼자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집단을 만들어 집단을 믿으며 함께 만들어 가면 됩니다.
▲ 우치다쌤은 교사 개인이 해야 하는 일과 함께 교사집단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음을 알려주셨다.
20%의 학생만 듣는 수업이 성공한 수업
저도 젊었을 땐 최선을 다해 수업을 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해도 듣는 아이들은 2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70%는 뭔 소리냐 하고 나머지 10%는 잤더라구요.
그 땐 ‘열심히 해서 듣는 아이들을 70%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 자체가 다른 교수들을 믿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더군요. 내 수업을 듣는 20%의 학생들, 다른 교수의 수업을 듣는 20%의 학생들, 그리고 또 다른 교수의 수업을 듣는 20%의 학생들을 모두 합하여 그 학교의 수업은 성공한 것입니다. 즉, 20%만 들어주는 학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주 강연을 스코어로 매기자면 ‘3할 5푼’의 높은 스코어를 기록했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사람은 ‘모든 아이들이 내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오만한 생각이기 때문인데,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칠 사람들에 대해 신뢰를 한다면 그렇게까지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부성 같은 경우 ‘이런 방식으로 수업하면 모든 아이들이 흥미진진하게 들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그건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옳은 교육방법이란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교육방법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게 많으면 많을수록 타율이 올라가겠죠. 그렇기에 개인의 수업에 대해 평가하는 건 매우 잘못된 제도입니다. 개인이 아닌 전체의 평가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교육 방법의 성과는 30~50년 뒤에 나오는데 어떻게 단순 평가가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니 너무 성실하지 마시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20%면 충분합니다.
▲ 이틀 간의 강연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떠나는 모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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