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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 손자병법, 제2편 작전(作戰) 본문

고전/손자병법

임용한 - 손자병법, 제2편 작전(作戰)

건방진방랑자 2025. 1. 1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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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作戰)

 

 

작전은 전쟁을 실행한다는 뜻이다. 1의 계획 단계에서 이제 실행 단계로 접어든다. 실행 단계에서도 먼저 전반적인 밑그림이 필요하다. 이것이 작전이다. 아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의미하는 현대 군사학의 작전과는 의미가 다르다. 계획 단계가 끝나면 이제 당장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으로 넘어가면 좋겠는데, 손자는 또 다시 기초 단계부터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성급한 사람은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 장을 읽고 나서 이 작전편을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한 지휘들이 걸었던 파멸의 길을 가야 한다.

 

 

 

 

1. 대체로 전쟁을 하려면

 

대체로 전쟁을 하려면 그 규모는 전차 1,000대와 전차를 끌말 4,000, 수송용 전차 1,000, 갑옷 입은 병사가 10만 명은 되어야 한다. 1,000(4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에 군량을 공급해야 하며, 안팎으로 드는 비용, 접대비, 기계 수리용 자재 군 장비의 조달 등 날마다 천금의 거액을 소비해야 한다.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만 10만 군대를 일으킬 수 있다.

孫子曰: 凡用兵之法, 馳車千駟, 革車千乘, 帶甲十萬, 千里饋糧, 則內外之費, 賓客之用, 膠漆之材, 車甲之奉, 日費千金, 然後十萬之師擧矣.

 

 

19824월에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포클랜드 전쟁은 약 두 달 만에 끝났다. 영국은 452명이 전사하고, 전투기 25, 함정 13척을 잃었다. 1, 2차 세계대전의 규모와 비교하면 1회 전투 수준의 전쟁이었지만, 여기에 든 비용이 무려 15억 달러였다. 2020년대 가치로 환산하면 45억 달러 이상이다.

 

현대전은 고가의 장비를 운용하는 탓에 전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든다. 과거에는 돈이 이 정도로 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옛날에는 옛날대로 현대와 달리 많은 비용이 드는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트럭 한 대로 수송할 물자를 과거에는 수십 명의 사람과 말, 수레를 이용해야 했다. 트럭이 반나절에 갈 길을 한 달을 소비할 수도 있다. 도로를 닦을 때도 불도저와 포클레인 한 대가 할 일을 수백, 수천 명을 동원해야 한다. 범선과 유조선의 차이는 또 어떤가?

 

9세기경 프랑크족 기사 한 명이 완전 무장을 갖추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투구: 암소 6마리

쇠미늘 갑옷: 암소 12마리

칼과 칼집: 암소 7마리

다리 보호대: 암소 6마리

창과 방패: 암소 2마리

군마: 암소 12마리

총계: 암소 45마리한스 델브뤼크 지음 민경길 옮김, 병법사3한국학술정보, 2009, 3쪽 저자는 게르만 법령 중 하나인 리부리아 법(Lex Ribuaria)에서 인용한 것이다.

 

9세기의 암소 가격을 현재 시세로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45마리의 암소라면 웬만한 마을에 있는 암소 전체에 해당했다. 전쟁에는 전투용, 수송용으로 많은 말과 소가 필요한데, 전쟁에 동원한 말과 소는 1년이면 거의 죽는다. 조선이 3만 명의 군대를 동원해 두 달 정도 기한으로 요동을 공격하려고 비용을 모으는데 3년이 걸렸다. 말과 장비, 군량 중 최소한 절반은 사병 개인에게 부담시켰는데도 이 정도였다.

 

이런 끔찍한 비용 때문에 회계 담당과 보급 담당 장교들은 종종 지휘관들에게 비관적인 대답을 하거나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신속한 기동과 돌파를 강조하는 로멜과 패튼은 특히 회계, 보급담당장교들의 비관적인 답변을 못마땅해했다. 이들의 품성을 적극적인 성품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재무 담당자들의 애꿎은 희생도 무색하게 전쟁 계획은 종종 낙관적으로 짜인다. 비관적인 자세로 시작했다가도 사용할 수 있는 금액과 목표 달성 비용이 맞지 않으면 돌발 상황 비용을 배제해 버린다.

 

아군 부대의 이동은 정확하고, 집결지에는 정시에 도착한다. 적의 방해 공작과 기후는 우리가 예상한 수준으로 작동한다. 적의 포격은 아군이 소지한 장비와 부품으로 수리 가능한 수준의 피해만 입힌다. 이동선 상에 있는 모든 도로와 다리는 수백 대의 탱크와 적재용량을 무시한 채 과적한 트럭을 버텨낼 것이다. 또 무전병은 모든 암호를 정확하게 판독하며, 연락병의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타이어는 펑크가 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런 엉터리 시나리오를 만든다.

 

이런 계획은 성공할 리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무모한 계획이 돌발 상황을 최소화하는 계획이다. 어떤 군사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전쟁과 작전은 악보를 들고 시작하지만, 첫 번째 총성이 울리는 순간부터 즉흥곡이다.” 낙관적으로 짜인 수많은 전쟁과 작전이 돌발 상황과 부대비용의 덫에 걸려 파산했다.

 

이 단락의 보편적인 교훈은 전쟁이든 경영이든 부대비용과 운전자금, 돌발 상황에 대한 부수비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 많은 경영자에겐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초보 사업자들은 너무나 자주 이 수렁에 빠진다.

 

그렇다고 초보자만 당하는 것도 아니다. 신사업이나 투자를 유도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 부분을 최소화한다. 경영 사례들을 보면 자신들도 잘 모르고 도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많은 조직, 특히 초보자들을 좌절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감당할 수 없는 돌발 상황과 부대비용이다. 아무리 철저한 계획을 세워도 부대비용은 사전 조사만으로는 산정이 어렵다. 돌발 상황과 부대비용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처법은 일어날 사건을 하나하나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대응 가능한 범주를 최대한 근사치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 능력을 높이는 방법은 경험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초보자일수록, 또는 처음 진입하는 영역일수록 자신의 능력에 관해 겸손하게 접근하고 재정 계획과 자금 운영 계획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세우면서 배운다는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꺼이 배움의 대가를 지불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과도한 학습 비용만으로도 조직은 충분히 파국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에 관해서 리더도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다. 거리와 비용에 따른 물량계산은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과 비상적인 물자 확보 능력은 수치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비가시적인 요소를 결정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페이퍼에 적힌 문자와 숫자를 갑주로 삼는 사람, 그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은 절대로 승리하는 리더가 될 수 없다.

 

 

 

 

2. 승리하더라도 전쟁을 오래 끌면

 

전쟁할 때 승리하더라도 전쟁을 오래 끌면 병기는 소모되고 군대의 사기는 저하된다. 공성을 하면 전력이 약화된다. 군대가 오랫동안 외국에 주둔하면 국가 재정이 부족해진다. 무기가 소모되고, 사기가 피폐하고, 전력이 약화되고. 재정이 고갈되면 이웃 나라 제후가 이 틈을 타서 침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록 지모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뒷감당을 할 수 없다.

其用戰也, 勝久則鈍兵·挫銳, 攻城則力屈, 久暴師則國用不足. 夫鈍兵挫銳, 屈力殫貨, 則諸侯乘其弊而起. 雖有智者, 不能善其後矣.

 

그러므로 전쟁은 불비한 점이 있더라도 빨리 결말지어야 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교묘한 술책으로 오래 끌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전쟁을 장기간 끌어서 국가에 이로울 것은 없다. 그러므로 용병의 해()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자는 용병의 이()를 깊이 알지 못한다.

故兵聞拙速, 未睹巧之久也. 夫兵久而國利者, 未之有也. 故不盡知用兵之害者, 則不能盡知用兵之利也.

 

이 구절은 손자병법을 해석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정말 고통스럽게 했다. 전쟁비용 때문에 속공이 지구전보다 낫다는 말은 지나친 일반화 아닌가? 속공이 최고라면 난공불락의 요새 앞이라도 병사들을 돌격시켜야 하는가? 요새는 지구전으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 속공이 좋다고 서두르다가 패한 전투는 또 얼마나 많은가? 손자도 전쟁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끔찍한 전쟁비용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최악의 비용을 초래하는 건 전사자의 수와 패전이다. 승전해도 죽은 자는 있기 마련이고, 이들의 유가족에게 보상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패전하면 승자의 보상 비용까지 갈취당한다.

 

그러면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편적인 타협안은 이렇다.

 

손자가 설마 지구전의 필요를 몰랐겠는가? 리더는 전쟁비용의 무서움, 전쟁으로 인한 백성의 고통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손자병법을 현학적인 철학서로 바꾸어 버린다. 손자는 책상 앞의 선비처럼 전쟁에 접근하지 않았다.

 

사마천(司馬遷, BC145?~BC86?)사기(史記)에 의하면 손자는 오나라 왕 합려(闔閭, ?~BC496)게 등용되어 기원전 506년 초나라의 수도 영()을 함락하는 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다음 해에 오나라군 주력이 초나라에 주둔한 틈을 타서 월나라가 침공해 들어왔다. 손자가 평소에 걱정하고 경고한 대로 전쟁이 1년을 끌자 강대국이 쳐들어온 것이다. 급거 귀국한 오나라 군대는 월나라의 침공군을 격퇴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수도를 함락시키고도 초나라 정복에는 실패하고 만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0년 뒤 합려는 월나라를 공격하다 부상을 입어 전사한다. 그는 아들 부차(夫差, ?~BC473)에게 복수를 부탁했다. 부차는 장작 위에서 자며 월나라 왕 구천(句踐, ?~BC465)에 대한 복수를 꿈꾸었다고 해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가 생겨났다. 다만 손자가 이때까지 생존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아래 구절은 손자가 경험으로 체득한 진리였다.

 

군대가 오랫동안 외국에 주둔하면 국가 재정이 부족해진다. 무기가 소모되고, 사기가 피폐하고, 전력이 악화되고, 재정이 고갈되면 이웃 나라 제후가 이름을 타서 침공할 것이다[其用戰也, 勝久則鈍兵·挫銳, 攻城則力屈, 久暴師則國用不足. 夫鈍兵挫銳, 屈力殫貨, 則諸侯乘其弊而起.].’

 

손자가 이 구절을 초나라 정복 전쟁 전에 썼을 수도 있다. -초 전쟁이 아니라도 춘추시대에는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처럼 늘 양면전쟁, 3자 개입의 가능성이 있는 정글 같은 상황에서 전쟁은 비용과 시간의 싸움이다. 항상 비용과 시간, 최대 효율을 염두에 두고 전략과 전술을 구상하라. 용병에서 속임수(최대 효율)를 아끼지 말라고 한 말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손자가 말한 속공의 목적이자 용도다.

 

그러면 지구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략·전술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지구전이 가장 효율적이고 시간이 절약되며, 상대국의 간섭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면 지구전이 최고의 속공이다. 궤변처럼 들리지만, 손자가 경고하는 지구전은 지구전을 모두 망라하는 게 아니라 교묘한 지구전만을 가리킨다.

 

교묘한 지구전이란 당장의 편안함, 모형과 용기의 부재로 선택하는 지구전을 말한다. 불비한 속공을 감행하려면 탁월한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족한 리더들이 늘 준비 부족을 핑계로 전투를 미루고, 온갖 위험을 다 상정한 다음 만전의 대책을 세운다고 힘과 시간을 낭비한다. 손자가 말한 교묘한 지구전은 이런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시간은 항상 내 편이 아니다

 

기원전 421년 아테네는 시칠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대함대를 결성하고 2만 명에 가까운 병력을 파견했다. 시민들은 원정 사령관으로 알키비아데스(Alkibiades, BC450?~404)니키아스(Nicias, BC470~BC413), 라마코스(Lamachus, ?~?)를 선출했다. 알키비아데스는 그리스 최고의 전략가, 니키아스는 보급과 군수를 책임질 수 있는 최고의 정치가이자 경영자, 라마코스는 장비나 조자룡(趙子龍, ?~229) 스타일의 맹장이었다.

 

이 인선은 대단히 훌륭해 보였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가 정치적 음모에 말려 스파르타로 망명했다. 라마코스는 너무 용맹하게 앞장서다가 어이없게 전사했다. 사령관은 경영, 정치, 외교 전문가인 니키아스만 남았다. 당시 아테네군은 시라쿠사를 공략하는 중이었다. 알키비아데스와 라마코스가 빠졌어도 과감하게 움직였으면 도시를 함락시킬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소심했던 니키아스는 공세를 중단하고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방벽을 쌓아 도시를 고립시켜 항복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시라쿠사는 항복하는 대신 안쪽으로 아테네군 방벽에 대항하는 방벽을 쌓아 저항했다. 성 쌓기 경쟁은 간발의 차이로 시라쿠사가 승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노동력은 시라쿠사가 풍부했고, 시라쿠사 주민은 거주지에, 그리스군은 야영 텐트에 거주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산비탈에 이중성벽이 세워졌다. 물리적 공격은 더 어려워졌고, 아테네군은 도시를 공략할 기회를 완전히 놓친다.

 

어이없는 지구전에 아테네 병사들은 지쳐갔고, 바다 건너 장기 주둔으로 군수비용은 급증했다. 아테네군이 지지부진한 사이에 시칠리아 도시들이 결집했다. 마지막으로 손자가 지적한 최악의 상황, 이웃 나라가 아테네가 지친 틈을 노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이웃 나라는 숙명의 라이벌인 스파르타와 코린토스였다.

 

스파르타와 코린토스는 연합 함대를 결성해 시라쿠사로 파견했다. 무적을 자랑하는 아테네 해군이었지만, 지친 군대는 스파르타와 코린토스 함대에 패했다. 고립된 아테네 육군은 전멸하고 니키아스는 살해되었다. 아테네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고, 이길 수 있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하고 말았다.

 

이것이 손자가 지적하는 교묘한 지구전이다. 위험 회피, 현실 도피의 속성이 전쟁의 속성을 망각시킨다. 명확해야 하고, 편하고 쉬운 것을 추구하며, 불확실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을 배제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성이 교묘한 지구전을 선택하게 한다.

 

, 강한 군대가 쉽고 편안한 승부라는 교묘한 유혹에 빠져 채택하는 전술이 지구전이다. ‘우리는 강하다’ ‘우리가 유리하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위에서 아래까지 조직 전체가 안주하게 된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속도는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 같지만 타락시키는 속도는 내리막길을 구르는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나태한 소모전은 승리를 보장하지도 않으며, 전쟁비용과 자원 낭비 이상의 심각한 피해를 양산한다.

 

사람들은 유형의 손실에만 주의를 기울이는데, 진짜 위험은 무형의 영역에서 나타난다. 물량 작전으로 이기면 이길수록 조직은 경직되고, 모험을 회피하고, 편한 승부에 안주하면서 전략적 능력이 괴사되어 간다. 이런 식으로 한두 번 승리하면 이제는 전염병처럼 기질 속까지 파고들어서 명의가 와도 고칠 수 없는 병이 된다. 이런 군대나 기업은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상대를 만나면 허무하게 무너진다.

 

군이든 기업이든 조직을 운영하고, 승부해야 하는 집단이라면 시간은 어떤 경우에도 내 편이 아니다라는 말을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 시간은 어떤 일도,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저절로 해결해주지 않는다.

 

인간은 무언가가 부족하거나 약간 위험하다고 느낄 때 자신을 채찍질하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한다. 불확실성 속에 뛰어드는 용기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손자가 말한 불비한 속공이다. 그럴 때마다 주저앉는 사람도 있지만, 그 덕분에 조직에 필요한 인재, 우수한 인력과 그렇지 못한 인력도 구분할 수 있다. 조직이 승리하고 성장하는 비결은 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긴장감과 능력은 실전을 경험할 때마다 성장한다. 지구전은 비용은 막대하게 소비하면서 이 소중한 학습 기회, 자기계발의 시간을 박탈하고, 조직을 나태로 밀어 넣는다.

 

마지막에 손자가 한 말, ‘이런 상황이 되면 아무리 지모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뒷감당을 할 수 없다[雖有智者, 不能善其後矣]’를 기억하자. 지구전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재력과 자산을 갖춘 조직이라면 뛰어난 인재는 어디서든 구해올 수 있다. 하지만 제 가량이 아무리 뛰어난 전술을 가르쳐주었다고 해도 구성원이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안 된다면 무용지물이다.

 

 

모든 속공은 졸공이다

 

손자병법()’ 편만을 읽으면 손자는 완벽한 계획을 짜고, 완벽하게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제갈량식 전쟁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런 오해를 예견하고 작전편에 속공론을 배치한 것 같다. 전쟁은 승부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위험을 감내할 줄 아는 사람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

 

전술이나 작전에 최단 시간이라는 요소를 대입하면 불확실성이 늘어나고, 예상치 못한 위험과 대응능력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계수화되지 않기에 현장에서의 대응 능력과 운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모든 속공은 졸공이고 엉성한 공격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불확실한 상황, 전장의 안개를 두려워한다. 전투에서 이겨도 중간에 사고가 있고 전투 과정이 투박하면 행정관리와 아마추어 평론가들이 책임 추궁을 해댄다. 이런저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모든 변수에 대비하는 정교한 책략이 줄줄이 달라붙으면서 속공이 지구전으로 늘어진다.

 

그렇다고 위험 분석 없이 눈을 감고 무모하게 달려들라는 말은 아니다. ‘편의 충고처럼 사전에는 충분한 검토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달리기 시작할 때는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달려야 한다.

 

손자가 말한 졸속은 진짜로 졸렬한 속공이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적인 속공이다. 알고 보면 이것이 모든 전술의 본질이자 숙명이다. 전쟁사의 위대한 승부사들은 전술의 본질이 엉성한 속공임을 알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로부터 시작해서 칭기즈칸(chingiz Khan, 1167?~1227), 현대의 전격전(blitzkrieg)까지 위대한 명장들은 완벽한 지구전에 의지하는 대신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병사들의 용기와 임기응변 능력을 배양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전격전이라는 명칭은 언론의 작품이다. 전격전의 창시자들은 특별한 명칭을 고안하지 않았다. 독일군 장교들이 배낭에 넣고 다녔다는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전쟁론만큼 손자병법도 애독했거나 약간의 유머가 있었더라면 자신들끼리 전차를 이용한 졸렬한 속공 전술이라고 불렀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포와 총이 등장하면서 기병은 전장의 주도권을 잃었다. 보병들의 승부가 된 17세기 이후의 전투는 지루하고 파멸적인 형태로 변했다. 양측이 길게 늘어서서 한쪽이 궤멸할 때까지 소모전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도 양측이 벌판에서 싸울 때까지는 괜찮았다.

 

19세기가 되자 수비 측이 강력한 요새와 방어선을 구축하고, 대포와 기관총으로 방어선 전면을 엄호하기 시작했다. 강철과 콘크리트를 향해 진격하는 전선형 공격은 재앙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은 한 나라의 군대와 남자, 모든 것이 동날 때까지 싸우는 파멸적인 소모전이었다.

 

1차 세계대전 말기에 탱크가 등장하자 아주 소수의 장교들이 칭기즈칸의 몽골 기병 이후로 자취를 감춘 돌파 전술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구상은 강력한 반대와 조롱을 받았다.

 

독일군 장교 구데리안(Heinz Guderian, 1888~1954)은 이런 소모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그는 엔진과 바퀴를 이용한 새로운 기동 전술을 구상한다. 전격전은 선이 아닌 점을 타격하는 것이다. 한 점에 화력을 집중해 돌파한다. 아군의 기갑부대가 측면 방어를 무시한 채 중심으로 적진 깊숙이 들어가 적을 혼란에 빠트리고 사령부를 습격하며 보급로를 차단한다. 적의 전선은 공황상태에 빠져 붕괴한다.

 

사령부의 테이블 위에서 이 계획을 펼쳐 보이면 이 개념이 얼마나 엉성한지 당장 드러난다. 프레젠테이션을 본 장군들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리거나 황당해서 얼굴이 벌게진다. 한 장군이 참지 못해 소리친다. “이거야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탁상공론이 아닌가? 우리가 화살처럼 고속전진해서 적의 보급로를 끊는다고? 그동안 적은 보고만 있겠나? 측면을 무시하고 종대로 전진하는 우리 기동부대의 후방을 적도 간단히 끊어 놓을 수 있다. 전격전은 무모한 치킨게임에 불과하다.”

 

이론적으로 보면 전격전은 확실히 치킨게임이다. 구데리안은 이런 비판에 굴하지 않고 대위시절부터 전격전을 구상하며 병사들을 훈련시켰다.그러나 그도 속으로는 치킨게임론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적이 프랑스와 같이 전통 있는 강국이라면 전격전의 약점을 알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프랑스의 기갑부대 장교 중에도 기동을 중시하고, 전격전과 같은 전술을 구상하는 장교들이 있었다. 그러나 구데리안의 표현을 빌리면, 다행스럽게도 프랑스는 기동부대의 현대화 및 강화를 주장한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이나 달라디에(Édouard Daladier, 1884~1970) 같은 선각자들의 제안을 무시해버렸다구데리안 지음, 김정오 옮김, 기계화부대장도서출판 글밭, 1994, 165.

 

그러던 어느 날 구데리안은 프랑스군의 전시대응체제에 관한 첩보를 입수했다. 그것을 읽은 구데리안은 전차를 이용한 졸렬한 속공의 승리를 확신했다.

 

구데리안이 본 프랑스군의 대응체 제는 현장 보고 검증 회의 전략 수립 점검과 확인 전달 실행 현장 보고라는 무한 반박 루프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일군의 출현을 전선의 초병이 보고하면 사령부에서 정보를 수합해서 회의하고 적절한 대응책, 타격지점, 반격지점을 예하 부대로 하달한다. 그러고는 다시 실행 결과를 사령부에 보고하는 이 궤적을 반복하는 것이다.

 

구데리안은 자신이 받은 비난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이것이야말로 훈련할 때나 가능한 탁상 전술이다.”

 

프랑스군의 대응 방식은 행정적 사고, 탁상위의 전술로 보면 완벽하다. 상황 파악, 통제, 적절한 대책과 실행이라는 합리적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절차가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야?”라고 말할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올바른 지적이다. 다만 프랑스군의 이 계획에는 독일군의 속도가 빠져 있었다. 현장과 사령부에서 보고가 오가고 타격지점을 지시하는 사이에 독일군은 타격지점을 지나쳤다. 다시 보고와 회의가 반복되었고, 최후의 대 전략을 실행하려고 할 때쯤이면, 독일군 탱크가 사령부 앞마당까지 도달했다.

 

독일군의 공격에 수많은 약점이있고 프랑스군에게 기회가 무수히 있었지만, 프랑스군은 혼란과 충격 속에 무너졌다. 프랑스 장병들의 용기와투지가 부족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프랑스군은 놀랄 만한 전투력과 투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프랑스군 완벽한 계획이 패전의 원흉이었다. 지구전으로 일관했던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4년간 참호전을 펼쳤고, 각각 800만명에 가까운 희생을 치렀다. 1940년 구데리안의 기갑부대는 단 보름 만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을 섬멸하고 승부를 결정지었다. 프랑스가 정식으로 항복하기까지는 6주가 걸렸지만, 6주도 너무나 짧은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당시 영국의 국방장관이었던 처칠(wiston Churchill, 1874~1965)은 야밤에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가 항복한다는 전갈을 받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큰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무너질 수가 있는가?”

 

졸렬한 속공이 만전의 방어계획을 완벽하게 뚫었다.

 

패튼의 말처럼 죽을 힘을 다해 전진하고 최상의 속력과 전투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격전의 창시자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 현대전에서 탱크가 등장한 뒤 몽골기병의 돌파 전술도 되살아났다.

 

 

 

 

3. 용병을 잘하는 자는

 

용병을 잘 하는 자는 두 번 징병하지 않고 군량은 세 번 거듭 싣지 않는다. 무기 등의 군용품은 나라에서 가져가고 군량은 적의 것을 빼앗아 쓴다. 그래야 군량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善用兵者, 役不再籍, 糧不三載; 取用於國, 因糧於敵, 故軍食可足也.

 

전쟁으로 나라가 가난해지는 이유는 군량과 군수를 멀리 수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 거리로 수송하면 비용이 과도하게 들어서 백성들이 빈곤해진다. 군대가 주둔한 인근에는 물가가 치솟는다. 물가가 오르면 백성들의 재산이 고갈된다. 재산이 고갈되면 부역도 곤란해진다. 국력이 약화하고 재물이 고갈되면 나라의 들판에 빈집이 늘어난다. 국민의 재산은 열에 일곱은 없어지고, 국가의 재정도 파괴된 수레, 못쓰게 된 말, 갑옷과 투구, 활과 살, 창과 방패, 소가 끄는 큰 보급용 수레 등 수리하는데 열에 여섯이 들어간다.

國之貧於師者遠輸, 遠輸則百姓貧. 近於師者貴賣, 貴賣則百姓財竭, 財竭則急於丘役. 力屈·財殫, 中原內虛於家. 百姓之費, 十去其七; 公家之費: 破軍罷馬, 甲冑矢弩, 戟楯蔽櫓, 丘牛大車, 十去其六.

 

오늘날의 경영 환경에서 가장 큰 고민이 돌발 상황일 것이다. 세계화 시대, 글로벌 경제와 자금, 인력의 이동이 유례없이 연결되고 변화무쌍한 시대가 되면서 수많은 돌발변수가 전세계에서 명멸하고 있다. 어느덧 돌발 상황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세상이다.

 

전쟁사로 보면 돌발 상황은 2,500년 전에도 고민거리였다. 수많은 장군들이 작전 계획대로 되는 전쟁은 없다고 말한다. 사전에 계획을 아무리 잘 세워도 예상치 못한 전개로 전쟁비용도 예상을 초과하게 된다. 돌발 변수에 대해서도 손자는 엄격하다. 군량을 두 번 더 추가로 징발하는 것까지는 용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징병은 두 번 해서는 안 되고, 군량은 세 번 징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 편에서 싸우기 전에 이미 승부가 결정되어 있을 정도로 전쟁의 준비 계획이 철저해야 한다고 말했던 손자로서는 당연한 결론일 수도 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징병 1, 군량 징발 2회라는 가용횟수 안에서 대처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손자 시대의 기준을 우리 세기에 적용해도 될까? 현대 세계가 풍랑이 이는 바다라면 2,500년 전은 고요한 호수였다. 오늘날의 하루는 손자 시대의 100년보다도 더 변화무쌍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징병제도나 군수품 조달 시스템이 손자의 시대와는 전혀 달라져서 이 숫자를 적용할 분야도 마땅치 않다. 손자병법이 도그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숫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변함이 없다. 손자가 지적한 숫자는 인간의 이해와 관용의 한계다.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원칙과 약속을 어디까지 준수해야 할까

 

계획대로 진행될 수가 없는 전쟁에서 원칙과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승리를 거두어도 존경을 얻지 못한다. 원칙에 매이면 승리를 얻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리더의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징발에 대한 경각심이 약화되기 쉽다. 전쟁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모두 달린 투기다. 이 비장한 정의 덕분에 리더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부당한 요구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추가적인 요구를 해도 국민이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에 리더와 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고 해도, 그것이 전쟁 아닌가? 결과만 좋다면 리더는 신뢰와 존경을 얻을 것이다. 손자는 이런 해이함을 경고한다. 임기응변을 핑계로 원칙과 약속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중세, 고통 분담 같은 국가의 요구에 국민이 저항하지 않는다고 해도 체념이 늘어나는 것이지, 관용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폭발 한도에 가까워지는 것이지, 풍선의 내구성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풍선의 팽창 한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인간의 심리와 이기주의는 풍선보다도 더 위험하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인내와 고통 분담을 강요하지만, 그 고통 덕분에 인간의 심성을 더 냉정하고 이해에 더 예민하게 만든다. 전쟁이 끝나면 체념의 시기도 끝나고, 대중은 더 예리해지고 냉철해진 심장으로 보상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 수행 중에 리더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구성원들은 리더의 판단력과 능력에 불안감을 느낀다. 승리해도 만족은 줄어들고, 비판이 거세진다. 무엇보다도 리더의 결정이 바뀔 수 있다고 예상하면 다음 전쟁, 다음 전투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고 엉거주춤하게 된다. 다음 구지(九地)’ 편에서 보겠지만, 적을 이기려면 당면한 순간에 리더와 병사들이 전술의 목적과 방법에 전적으로 몰입해서 최대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우왕좌왕하는 리더는 신뢰를 잃고, 신뢰를 잃은 리더는 결정적인 순간에 조직의 최대 역량을 뽑아낼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옳은 말, 정당한 원칙이라고 해도 현실성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전쟁에서 초심과 계획을 준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융통성이 없으면 파멸한다. 그러니 손자의 말처럼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여기에 손자의 묘수가 있다. 손자는 원칙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단락의 본의는 징병과 군량 징발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적의 군량과 물자를 탈취해서 사용하는 임기응변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자 탈취는 잔인한 임기응변이고 후유증도 크지만, 전쟁 자체가 잔혹한 것이다.

 

돌발 상황은 예측할 수 없고 처음의 계획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지만 절대 파기해서는 안 되는 계획도 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임기응변의 능력이다. 원칙을 최대한 지키며 승리를 거두는 리더로 존경받고 싶다면 임기응변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 능력이 조직 전체로 확산된다면 상승의 군대가 될 것이다.

 

 

 

 

4. 지략이 뛰어난 장수는

 

그러므로 지략이 뛰어난 장수는 적의 것을 빼앗아 먹기에 힘쓰는 것이다. 적의 식량 한 종()은 아군의 20종과 맞먹고, 적의 말먹이 한 석은 아군의 20석과 맞먹는다.

故智將務食於敵. 食敵一鍾, 當吾二十鍾; (芑心)秆一石, 當吾二十石.

 

부산에서 서울이 1000(400킬로미터) 길이다. 임진왜란때 부산에서 서울까지 육로로 군량을 수송하면 서울까지 도착하는 군량은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중도에 수송부대의 식량으로 소모되기 때문이다. 운임을 지불하면 비용이 더 들었다. 나선 정벌에 참전했던 조선군은 8~9일 일정으로 300석의 량 운운하는데, 운반비용으로 5,000석이 들었다.

 

1000리 원정을 떠났다고 할 때, 현지의 식량 한 석은 본국의 식량 10석에 맞먹는다. 그래서 손자는 군용품은 자신의 것을 쓰고 군량은 적의 것을 빼앗아 사용하라고 말한다. 군용품은 자기 것을 쓰라는 말도 인도주의적 배려가 아니다. 규격과 품질이 맞지 않는 장비는 전투력을 떨어트린다.

 

적의 군량을 빼앗는다고 하면 으레 약탈을 연상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적군이 확보한 군량을 탈취하고 백성의 곳간은 건드리지 않는 방법이 있다. 다음 방법으로는 도망친 적국의 관리를 대신해 조세를 걷는다. 당연히 세율이 높고 원성이 올라가지만, 군대와 저항 세력을 조직하는 적의 능력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있다.

 

옛날 사람이라고 현대인보다 무자비하지도 않았고, 생명을 파리 목숨 취급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주민은 죽이는 것보다 노예로 파는 것이 이익이었다. 정복 전쟁에서 한도 끝도 없는 약탈은 통치와 정복을 불가능하게 한다. 항우(項羽, BC232~BC202)유방(劉邦, BC247~BC195)을 몰아내고 관중 지방을 장악했음에도 최종 승자가 되지 못한 이유가 생포한 관중의 청년 40만 명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관중에 들어서서는 무자비하게 약탈해서 민심을 이중으로 잃었다. 학살당한 40만 명 중 20만 명이 다시 적군이 되어 공격해 온다고 하더라도, 천하를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약탈의 경제학

 

정복 전쟁과 상하 단합을 요구하는 손자의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손자가 약탈의 경제학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무제한적 약탈을 용인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무리 손자라고 해도 이런 합리적인(?) 약탈만을 주장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양심적이고 군율을 엄하게 운용하는 리더라고 하더라도 전쟁에서 약탈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아무런 보수 없이 병사들에게 수천 리의 행군과 목숨을 건 전투를 강요할 수 없었다. 특히 요새화된 부유한 도시를 공격할 때, 사령관들은 곧잘 약탈을 허용했다. 허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병사들의 광기를 제대로 통제하기란 불가능했다.

 

황금궁전과 보석으로 치장한 성전이 있는 도시, 화려한 조각과 동상, 상인과 부호로 가득한 도시일수록 제대로 보존되기 힘들었다. 로마는 여러 번 약탈당했는데, 그중에서도 1527년 신성 로마 제국군의 입성은 재앙적 파괴를 남겼다. 1258년 바그다드에 진입한 몽골군 또한 도시의 화려함에 입이 떡 벌어졌고, 이것은 그들의 약탈 본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12034차 십자군과 1453년 오스만튀르크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술탄 메메트 2(Mehmet, 1432~1481)는 관례에 따라 사흘간의 약탈을 허용했다. 난공불락의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돌파하느라 너무나 힘든 전투를 치렀기에 병사들에게 약탈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메메트는 단 하루 만에 남은 이틀간의 약탈 명령을 철회했다. 인도주의가 동한 것은 아니었다. 약탈할 물건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시 주민 전부가 죽거나 겁탈당하고 노예로 팔려 갔다. 그나마 궁전과 성 소피아 사원이 보존된 건, 그곳은 술탄의 것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엄명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 성벽, 해자, 흉벽, 높이 5미터 성벽, 12미터 성벽의 3중 벽을 갖추어 난공불락의 대명사가 되었다.

 

 

단순히 군량 조달이라는 건전한(?) 목표만 있다고 해서 약탈의 위험이 해소되지 않는다. 기원전 52카이사르는 군량 조달을 담당했던 하이두이족의 배신과 베르킨게토릭스(vercingetorix, BC82~BC46)의 청야 전술초토화라는 뜻으로, 주변에 적이 사용할 민한 모든 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는 전술로 군량이 떨어져 전멸 위기에 몰렸다. 로마군은 극적으로 아바리쿰이란 부유한 도시를 점령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때 아바리쿰에 입성한 로마군은 노예 수입을 포기하고 주민을 학살했다. 군량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입이라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약탈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거대한 딜레마이기도 했다. 약탈을 엄격하게 금지하면 군사들의 사기가 오르지 않아 전쟁을 치르기 힘들어진다. 약탈을 허용하면 적의 결사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피정복민을 자신의 병사와 백성으로 만들기 어려워 정복한 땅의 통치가 힘들어진다.

 

약탈이 자기 군대의 효율을 반드시 울려주지도 않는다는 점도 심각한 딜레마였다. 약탈은 군인정신과 군기를 잠식한다. 어제까지 건전했던 군대를 도둑 떼로 바꾸어버린다. 약탈이 감행되면 양심적인 병사들은 회의를 느끼고, 포로들은 복종을 거부할 것이다. 전투 중에 약탈품에 눈독을 들이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전투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타락한 병사들은 전투의 승리보다 잿밥에 맛을 들이게 된다. 약탈을 바라는 범죄자와 무뢰배들이 군대로 들어온다. 이들은 전투에서도 자기희생과 헌신을 꺼리고, 선량한 병사를 희생시키려고 한다. 팀워크는 망가지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분위기가 10~30퍼센트만 되어도 군대는 승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 곤란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통제뿐이었다. 아시리아는 고대사에서 악명 높은 군대다. 고대 아시리아의 전쟁화에는 학살과 약탈의 장면이 빠짐없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아시리아의 약탈은 교묘하게 통제되었다. 무시무시한 소문은 본보기로 시행한 것이거나 과장한 것이었다.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는 아시리아의 전쟁화 부조에는 병사들이 - 적의 머리를 포함해서 - 모든 전리품을 관리 앞에 바치고, 관리는 이를 기록하는 장면이 있다. 관리 뒤에는 완전무장한 군대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병사들은 전리품을 신고하고 합당한 보상을 받았다. 칭기즈칸도 몽골의 약탈꾼 부족을 군대로 바꾸기 위해 약탈 금지를 시행했다. 전투 중에 말에서 뛰어내려 전리품을 챙기는 병사는 처벌받았다. 전투에 집중하고 전리품은 전투 후에 공적에 따라 포상했다.

 

모든 성과 도시를 무조건 약탈하지도 않았다. 저항하는 도시는 약탈하고 대단히 가시적인 잔혹 행위를 했다. 그리고 이를 널리 선전했다. 덕분에 엄청난 악명을 얻기는 했지만, 그들 나름으로는 저항과 파괴를 줄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런 공포 전술은 몽골군을 포함해 정복 전쟁에 나서는 세상의 모든 군대가 써먹었다.

 

교통수단, 기술, 민주주의의 발달로 현대 전쟁에서 약탈과 범죄는 이전보다는 자제되고 있다. 하지만 더 정의롭고 덜 파괴적으로 변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아마 앞으로도 전쟁이 도덕과 공존하기는 영원히 어려울 것이다.

 

약탈한 전리품을 쌓아놓는 아시리아군. 니네베 출토. 대영박물관.

 

 

군수와 보급의 중요성-기술과 임기응변

 

손자의 현지 조달론은 현지 조달의 불가피성과 현지 조달을 하기 위해서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함을 말한 것이지, 현지조달에 철저하게 의존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현지 조달에만 의존하는 군대는 적에게 자신의 치명적 약점을 노출하게 된다.

 

군대가 현지에서 군량을 찾으러 돌아다니면 병력이 분산되고 시간이 소모되며, 전술목표가 뒤흔들린다. 식량이 있는 도시를 제일의 목표로 정하게 되면 적에게 아군의 전술 행동을 예고하는 셈이 된다. 적은 청야 전술로 아군을 괴롭히고 군량창고로 아군을 유인할 수 있다.

 

작전편의 교훈은 기업 경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경영 현장은 늘 정글이나 전쟁에 비유되곤 한다. 기업의 목적은 최대수익을 올리는 것이고, 수익을 올리려면 일차적으로 경쟁사와 하청 기업의 수익을 최대한 낮추거나 흡수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논의가 되고 있는 갑질, 횡포가 여기서 발생한다.

 

이런 주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정당한 경쟁, 이익 환원, 약자에 대한 배려 등 도덕적 논제가 이슈를 장악한다. 반면에 기업적, 경제적 관점에서의 지적은 드문 것 같다. 약탈이 불가피하듯이 약탈적인 수익도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약탈적 수익구조는 결과적으로 군대의 질을 떨어트리고, 적국의 저항 의지를 드높여, 국에는 패배를 불러온다. 약탈적 수익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편안하고 즐거운 수익, 타인과 약자의 이윤을 낮추는 방식으로 이익을 얻는데 안주하기 시작하면 직원들은 생산성과 발전적 개선을 방치하고 손쉽고 확실한 성과만 추구하게 될 것이다.

 

 

 

 

5. 병사가 적병을 죽이도록 만드는 것은 분노다

 

병사가 적병을 죽이도록 만드는 것은 분노다. 적의 이기를 탈취하는 것은 적의 물자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차전에서 적의 전차 10승 이상을 노획했으면 가장 먼저 그것을 노획한 자에게 상을 준다. 그리고 그 차량에 달렸던 적의 깃발을 아군의 기로 바꿔 달고 아군의 전차로 사용한다. 포로는 우대해 아군으로 양성한다. 이것이 적에게 승전하면 아군은 더욱 강성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故殺敵者, 怒也; 取敵之利者, 貨也. 故車戰, 得車十乘已上, 賞其先得者, 而更其旌旗, 車雜而乘之, 卒善而養之, 是謂勝敵而益强.

 

그러므로 전쟁에는 승리가 소중하지, 지구전이 소중한 것은 아니다. 고로 군을 맡은 사령관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자이며 국가 안위의 주재자인 것이다.

故兵貴勝, 不貴久. 故知兵之將, 民之司命, 國家安危之主也.

 

분노, 즉 적개심은 병사들의 전의를 불태우는 도구였다. 포로를 학살한다거나 민간인에게 저지르는 만행은 상대편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전장에서 살포되는 팸플릿에는 적군을 살인마, 범죄자로 묘사하고, 잔혹 행위를 과장해서 선전함으로써 자국 병사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전쟁의 냉혹함, 악마적 본성을 잘못 받아들이면 전쟁에서 승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본성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논리로 받아들이기 쉽다. 실제로 전쟁터에서는 이런 사고가 지휘관부터 말단 병사까지 지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전쟁이 아무리 냉혹하다고 해도 훌륭한 지휘관은 전쟁에 감상적으로 접근해도, 너무 건조하거나 속물적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손자의 본의는 인간 행동의 동기와 감정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너무 고상하게 포장해도 안 되지만, 가지고 놀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젠 전쟁터에서의 성공 사례와 오용 사례를 살펴보겠다.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파악한다

 

인간경영이라는 관점에서 손자의 장점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에 만연한 성선설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가(法家)와 병학가들의 인간관은 성악설이다. 성악설은 감정적인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거부감을 유발한다.

 

손자는 성선, 성악이란 주제를 철학적으로 논한 적이 없다. 그는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다. 굳이 따지면 성악설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철학적 정체성은 무시해도 상관없다. 그가 관심을 두는 인간은 전쟁터의 병사들이다. 전쟁터에서 인간은 악마같이 사악한 존재도 되고, 천사같이 순진한 존재도 된다. 정의와 명분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하지만, 이익을 위해 정의와 은혜뿐 아니라 혈연까지 배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는 이런 극단적 차이가 한 인간에게도 공존한다는 것이다.

 

손자는 인간의 이런 양면성에도 쉽게 접근한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행동 원리를 보는 것이다. 군대는 집단이고, 전투는 집단행동이다. 인간은 집단이 되면 단순해지고 반응이 선명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예외 사례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집단으로 보면 이기심과 욕망의 논리를 이겨내는 경우가 없다.

 

초나라의 항우(項羽, BC232~BC202)가 진나라를 향해 진군할 때의 일이다. 양쯔강을 건넌 그는 타고 온 배와 함께 솥을 부순 다음, 달랑 사흘 치 군량만 나눠주었다. 초나라 병사들은 결사적으로 싸워 속전속결로 승부를 낼 수밖에 없었다. 맹렬하게 진격한 그들은 아홉 번 싸워아홉 번 승리하며 진나라 군대를 궤멸시켰다.

 

여기서 나온 고사가 파부침주(破釜沈舟)’. 그런데 파부침주만 하면 병사들이 이렇게 싸워줄까? 당시 초나라 군대는 사기도 높고, 항우에 대한 신뢰도 높았다. 이런 바탕에서 파부침주가 성공한다.

 

항우가 연패하고 절망적 상황에 놓였을 때, 초군을 포위한 한나라 진영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율렸다. 포위 상황은 곧 파부침주의 상황, 결사항전 외에는 살아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항우를 포함해 초나라 병사들은 이미 많은 병사들이 한나라 진영으로 탈주해서 항복했다고 생각하고 사기가 꺾였다. 이것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고사다.

 

파부침주와 사면초가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인간의 성공 욕구와 생존 욕구다. 똑같은 욕구가 상황에 따라 병사를 더 용맹하게도 만들고, 비접하게도 만든다. 장수라면 파부침주, 배수진(背水陣), 사면초가와 같은 방법에 경도되지 말고, 그 배경에 있는 상황, 그 상황에 반응하는 병사의 심리와 본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군은 시칠리아 원정을 떠났다가 시라쿠사 공략에 끝내 실패했다. 원정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회군하려고 할 때, 스파르타와 코린토스 연합 함대가 나타나 바다를 봉쇄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이때까지 아테네 해군은 무적이었다. 더욱이 이 봉쇄를 뚫어야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결사적인 의지도 강력했다. 출전의 순간, 사령관 니키아스(Nicias, BC470~BC413)는 이 결사적인 의지가 유일한 생존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자신이 할 일은 병사들의 결사 의지를 최대한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 니키아스는 부두에 도열한 병사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붙잡고 격려의 말을 했다. 작은 도시 국가인 아테네다. 니키아스가 아는 병사들이 많았다. 니키아스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과거에 무용을 날린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가문과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싸우라는 식의 격려의 말을 했다. 이 비장한 한마디 한마디로 너무 시간을 끄는 통에 아테네군은 정오가 다 되어서야 출전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쳐버렸고, 전함들은 적절한 공격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 결과 무적의 아테네 해군이 무참하게 패배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니키아스의 격려는 정말 불필요한 것이었다. 모든 병사가 이미 충분히 비장했다. 절망하고 공포에 굴복한 병사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상황에서 짧고 간결하게 사기를 고양할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 시간에 현실적인 작전이나 해전에 유리한 위치 선점을 시도했어야 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해 오판하거나 낭만과 환상에 빠지면 전략과 전술이 방황하고, 인력을 낭비하게 된다. 인간을 바로 이해하고, 인간 본성을 선용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의지할 수 있는 명분과 이념을 제공하라

 

인간의 욕망 중에는 고상한 욕망도 있다. 아니, 자신의 욕망을 고상하게 포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는 대의명분이 필요하고, 조직에는 공익적 목표와 양심이 필요하다.

 

1차 세계대전 동안 황량한 아라비아 사막에서 아랍 혁명군과 고초를 나누었던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Thomas Edward Lawrence, 1888~1935)는 전쟁이 주는 고통과 그에 얽힌 자신과 동료들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숭고한 이상을 위해 싸우겠다는 우리의 욕망은 점차 맹목적인 집착으로 변질되었다. 우리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의혹을 억누르면서 무조건 박차를 가해 앞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이제는 싫든 좋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유일한 신념이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노예로 팔았고, 끊을 수 없는 쇠사슬로 서로에게 족쇄를 채웠다. 그리고 우리가 지니고 있던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다 바쳐서 성스러운 대의에 헌신했다. 우리는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승리라고 하는 광적인 욕망에 내어주고 말았다.

-T. E. 로런스 지음, 최인자 옮김, 지혜의 일곱 기둥, 2006, 28.

 

그래서 인류 최초의 전쟁부터 모든 전쟁이 진실이든 조작이든 분명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시작했다. 서경(書經)4,000년 전에 인간이 석기를 사용하고, 국가를 처음 만들어 정복 전쟁을 시작할 때의 기록이다. 이때부터 벌써 포악한 군주와 독재자를 처단하고, 고통에 빠진 주민을 구원한다는 내용이 전쟁의 명분으로 사용되었다.

 

전쟁은 국가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어서 나라마다 이기적 입장과 이유가 있다. 3자가 보기에 선한 자가 없어 보일 수도 있고 한쪽이 너무 뻔뻔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는 집단이며 거대한 조직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대다수의 국민은 애국자가 되며 자기 전쟁의 지지자가 된다.

 

기업이라면 좀 더 당당하고 객관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이다. 그것은 당당한 이념이고, 우리 사회는 좀 더 솔직하게 이런 이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여서는 안 된다. 사업보국(事業報國)과 같은 공익적인 이념만 계속 보충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직원 입장에서 보면 기업과 직장은 자신의 일생을 투자하고 의지하는 곳이다. 공익적 이념은 훌륭하지만, 근본적으로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에게 모두 숭고한 공헌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이들에게 필요한 대의명분이란 사막에서 행군하는 로런스 일행처럼, 피곤하고 힘들고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직장인들에게 자기 행동의 지침이 되고 위로가 되는 현실적인 숭고함이다. 예를 들면 우리 기업의 목표는 가난한 국민에게 맛있고 영양가 높은 빵을 값싸게 제공하는 것이다와 같은 이념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이념을 못 살던 시대의 추억으로 간주하거나 심하면 기업의 자기 미화 정도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나마 우리 사회가 좀 부유해지면서 기업부터 이런 이념을 쑥스러워해 한때의 추억이 되어버렸고, 새로운 이념을 개발하려고 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 자리는 ‘1등이 되자’ ‘00만 대 달성과 같은 사업목표들로 대체되고 있다. 숭고함을 잊어버리고 현실적 목표, 즉 탐욕에만 집착하는 조직은 끝내 위험한 순간을 맞이한다. 군대로 비유하면 이런 군대는 승리할 때는 야수처럼 싸우게 할 수 있겠지만, 결정적 위기의 순간이나 고귀한 희생과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는 사령관조차 헌신짝처럼 버리고 도망칠 것이다. 손자의 후손이었던 명장 손빈(孫臏, ?~?)은 이렇게 말했다

 

무력을 함부로 앞세우는 자는 멸망을 자초한다. 승리를 탐내는 자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병졸의 수가 대단치 않아도 무적의 전투력을 보이는 군대가 있다. 이는 그들이 싸울 가치가 있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손빈 지음, 김진초 옮김, 손빈병법상편 위왕을 만나다명문당, 1994. 60.

 

 

개성적인 포상이 가장 공정한 포상이다

 

무기와 군량은 파괴하기보다 노획하면 더 큰 이익이 된다. 적의 전차를 파괴하면 적 전차 한 대의 손실이지만 노획해서 아군이 사용하면 적 한 대 손실, 아군 한 대 증가여서 적의 전차 두 대를 파괴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다만 전차를 파괴하는 것도 어렵지만, 노획하기란 더 어렵다. 전투 중에 적 전차에 손상을 주지 않고 탈취하려면 병사들에게 몇 배의 위험과 희생을 감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병사들에게 생명을 건 모험을 요구하려면 그만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포상만 해서는 안 되고 널리 선전해야 한다. 손자는 효과적인 선전 방식까지 제시했다.

 

그런데 손자가 제시한 포상의 방법이 영 이상하다. 손자는 적의 전차 10대를 노획하면 먼저 탈취한 병사 한 명에게 포상으로 전차 한 대를 주라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 아홉 대를 탈취한 병사에게는 포상이 아예 없다는 의미일까? 전차에는 보통 서너 명의 병사가 탄다. 이들을 해치우고 전차를 노획하려면 한 명의 힘으로는 어렵다. 한 대당 5~10명이 달려들었다고 했을 때 10대면 100명이 협력한 것이다.

 

이런 불공평한 포상은 동기부여는커녕 불평과 사기 저하를 남지 않을까?

 

손자 시대에 보병과 전차의 비율은 100 1이었다. 보병 1만 명이면 전차 100대이고 전차 한 대당 말 네 필이 달려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보병과 전차의 비율도 100 1이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고대의 생산력이 지닌 한계수치였던 것 같다.

 

전차도 고가의 제품이었지만, 전차를 끄는 말 역시 평범한 말이 아니다. 전차를 끌고 전쟁터를 달리는 말은 3 1 에서 5 1의 선발을 거쳐 특별한 훈련과 관리를 받은 말이다. 이 시험에서 탈락한 말은 짐수레를 끄는 말이 되고, 여기서도 탈락하면 제대해서 농사를 짓거나 식용으로 소비된다. 전차 한 대가 이 정도로 귀한 장비였다. 이를 재사용할 수 있도록 노획하려면 병사들이 생명을 걸고 탈취해야 하는데, 10대당 한 명만 포상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전차 한 대만 탈취해도 승진이나 물질적 포상이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손자의 말은 단 한 명만 포상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손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선전을 통해 포상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노획한 전차 한 대를 병사에게 통으로 주고, 포상으로 주었다는 표식을 충분히 달고 퍼레이드를 시킨다. 이보다 더 좋은 홍보 방법이 있을까?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은 전쟁영웅을 귀환시켜 전시 채권 모집 행사에 출연시켰다. 어떤 병사는 응당한 보상이라고 여겨 유흥에 빠져들었고, 어떤 병사는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삶을 망쳤지만, 정부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

 

M60을 든 영화 람보포스터의 원형은 과달카날의 전쟁영웅 존 바실론(John Basilone, 1916~1945) 하사의 포스터였다. 바실론은 영웅이 되어 도시를 순회했고, 여자들과 향락에 빠졌다. 그러나 자괴감을 견디지 못한 그는 간절하게 전선으로 복귀하길 원했다. 이오지마(硫黄島) 상륙 작전에 투입된 그는 기관총 분대원을 이끌고 적의 참호와 토치카를 부수며 눈부신 전진을 했다. 그리고 전군의 가장 앞선 지점에서 박격포에 산화(散花)했다. 아마도 전우들이 죽어가는 동안 후방에서 홀로 영웅 대접을 받았다는 죄책감에 더 흥분해서 싸웠던 것 같다.

 

바실론 하사는 그렇게 죽었지만, 그의 영웅담은 영화포스터로도 남고 미군정의 이름으로도 남았다.

 

동기유발을 위한 상은 과감할 정도로 탐구하고 투자해야만 한다. 전차 한 대면 롤스로이스를 포상하는 것보다 큰 보상이다. 대부분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손자는 전쟁에서 이기려면 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 힘들고 중요한 결단이 있다. 개성적인 맞춤형 포상이다. 리더의 입장에서 포상은 가장 큰 투자다. 효과를 막연하게 기대해서는 안 되며 다른 곳에서 효과를 보았다고 함부로 도입해서도 안 된다.

 

어느 작은 기업에서 매년 우수사원 한 명을 선발해 특별 보너스를 주고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시행했다. 우수사원도 사원들의 투표라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하게 했다. 경영자는 업무능률이 크게 오르고 애사심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 회사는 여직원이 대부분이었다. 당시는 결혼으로 인한 퇴직, 이직률이 높던 시대였다. 직원들은 서로를 로테이션으로 선출했다. 특히 결혼으로 퇴사하는 직원에게 투표해 해외여행이 결혼선물이 되었다. 이직률과 퇴사율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고, 감상적으로 접근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포상하지 않는 이유

 

고대 노예라고 하면 다들 채찍을 맞으면 돌을 나르는 사람을 생각한다. 이런 참혹한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보통 그런 방식으로는 생산성을 보장할 수 없었다. 노예들에 대한 최고의 동기유발책은 해방이었다. 일정 기간 성실하게 일하면 땅을 주어 자영농이나 지주로 만들어주거나, 상점을 열어주었다.

 

로마의 해방노예 중에는 지주나 중산층은 물론, 거부가 되고 자손들이 고위층으로 신분 상승을 이룬 사람이 의외로 많다. 중세의 길드 같은 곳에서는 임금은 박했지만, 성실하게 일하면 상점을 내줘 독립시키는 방식도 사용했다. 이런 방법이 유용했던 것은 삶의 완전한 전환을 이루는 보상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동기부여를 하려면 임무와 적성에 따른 다양한 심리 분석과 포상 방식의 개발이 필요하다. 특별한 임무에는 적합한 재능과 적성이 있다. 임무마다 필요한 적성이 다르다. 적을 죽이려면 적개심이 필요하고, 육체적 피로와 고생을 요구하려면 물질적·육체적 보상이 효과적이다. 전쟁 임무치고 육체적 피로와 고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적의 전차를 탈취하는 것은 특별한 용기와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앞장서서 전차 탈취에 도전하는 선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전차 노획을 시도한 병사를 포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조직이 이런 맞춤형 포상제도를 운영하기를 두려워한다. 한때 손자의 전차 포상과 유사한 펭귄 어워드(Penguin Award)가 유명세를 탔다. 북극에 사는 황제펭귄은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우다가 새끼들이 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먹이를 잡을 때가 되면 부모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함께 떠나 버린다. 정성 들여 키운 새끼들에게 수영과 사냥 교육조차 하지 않는다. 그 직전에 새끼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부모들이 떠나면 남은 새끼들은 옹기종기 물가에 모인다. 부모들이 물에 뛰어들어 사냥하는 것은 보았으니, 먹고살기 위해서는 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수영도 사냥도 해본 적이 없으니 물을 쳐다보며 망설이기만 한다. 때로 이 망설임은 며칠을 가고 약한 새끼는 배고픔에 쓰러진다. 새끼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누군가가 물에 뛰어드는 것이다. 단 한 마리의 용기 있는 펭귄이 필요하다. 그가 물에 뛰어들면 거짓말처럼 모든 펭귄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에 뛰어든다.

 

화면으로 보았지만 단 한 마리의 효과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한 마리의 펭귄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펭귄 어워드다. 모든 보상이 성과를 근거로 한다는 통념을 깨고, 성과를 불문하고 그해에 선도적으로 용기를 갖고 도전한 사원을 포상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방식을 불편해하는 회사들이 많다. 이런 방식이 사원들의 도전적 태도를 양성하기는커녕, 좌절감을 주는 역효과가 더 큰 기업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 환경과 문화가 이런 거부감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포상의 효과 이전에 기업문화가 있고, 그 이전에 해당 사회의 문화가 있다. 그러면 사회와 교육과 문화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효과가 떨어지더라도 우리 문화에 맞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기업이 세계 경쟁에 뒤처지고 매너리즘에 빠지더라도 감수해야 할까?

 

구성원들이 맞춤형 포상을 부담스러워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기회균등일 뿐만 아니라 개인과 조직의 발전을 촉진한다고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어떤 제도든 부작용과 반발은 있다. 부작용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목적과 방법이 정당하다면 문제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기업은 이런 문제를 고민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연수든 세미나든 단계적인 변화의 방식을 모색하고 도전해야 한다.

 

 

인용

지도 / 목차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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