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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2. 무작정 제주로 떠나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2. 무작정 제주로 떠나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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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작정 제주로 떠나다

 

 

제주도 여행은 2011에 여자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34일 동안 제주도를 일주했던 여행을 시작으로 2012엔 단재학교 아이들과 45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일주했던 여행이 끝이었다.

 

 

2011년엔 10월에 2012년엔 4월에 갔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 주는 선물

 

생활이 안정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더 많은 여행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역시나 나중에 ~이 되면 그땐 맘껏 할 수 있으니, 지금은 하지 말고 나중에 해라는 말은 매우 그럴 듯해보여도 전혀 사실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무엇이 된 이후엔 그때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인해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그러니 맘이 동할 때 재지 말고 그냥 할 수 있는 저력이 필요하다. 그처럼 이번에 무려 6년 만에 제주로 떠나는 여행은 어찌 보면 나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다.

더욱이 이번 여행은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아닌, 오롯이 내 느낌에 따라 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누군가와 함께 떠나 그 순간의 감정을 공유하고 어떤 일이든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때론 혼자 떠나는 것도 좋다. 그래야만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감정에 더욱 충실할 수 있고, 나의 한계를 더욱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야말로 깨지기 쉬운 사람이지 않은가. 겉으론 단단한 척, 거침없는 척, 정의로운 척 온갖 척척은 다하지만, 그럴수록 얼마나 큰 씁쓸함이 찾아왔는지 모른다. 여릴 대로 여리고, 늘 좌충우돌하며, 수많은 생각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해 이랬다저랬다 하고 때론 나의 욕심으로 누군가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안기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 뿐, 그걸 드러내거나 그때그때 잘 풀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오만가지 감정이 어떤 사건이 트리거가 되어 한 순간에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사도라는 영화에 사도세자가 그의 어머니인 영빈이씨 회갑연을 6년이나 지난 다음에 열며 어머니를 꽃가마에 태워 길을 가다가 물렀거나. 내 어머니 중전마마 행차시다라고 포효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엔 중전마마가 될 수 없던 어머니의 한과 함께 왕이 될 수 없는 자신의 한까지 묘하게 겹쳐 사도세자의 처절한 몸부림과 울부짖음이 나를 한없이 흔들어재낀다. 그러니 그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럴 때 무엇 때문에 이렇게 눈물이 나오지?’라고 물을 필욘 없다. 그렇게 흘러내린 눈물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그처럼 풀어내지 못한 감정, 여리고 여린 나라는 존재,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욕망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 홀로 떠나기로 했다.

 

 

사도의 처절한 울음에 영빈이씨도, 그의 아들인 이산도 눈물을 흘린다. 

 

 

 

제주에 스민 역사, 나에게 스밀 제주

 

제주도는 지금에 와선 신비의 섬으로,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고 여유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관광지로, 소길댁 효리네 집이 있는 곳으로 매우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엔 유배지이며 제주 해산물을 납기기한에 맞춰 진상해야 하는 척박한 곳이자 그에 따라 육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져 심지어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1629)까지 내렸던 억압의 땅이었으며, 일제시대엔 태평양 전쟁의 전진기지로 몸살을 앓던 곳이었다.

 

 

제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출저-한라일보

 

 

그렇다고 해방이 된 이후엔 사정이 좀 나아졌을까? 역시나 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주는 좀 더 다루기 쉬운 곳 중 하나로 수탈하는 장소였을 뿐, 이곳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48년에 일어나 1954년까지 77개월까지 자행된 제주 4.3사건이다. 이념의 극한 대립 속에 뭍에선 웬만하면 하지 않을 일을 이곳 제주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만다. 그래서 군대를 파견하고 토벌대를 파견하여 아무 죄도 없고 아무런 이념도 없는 제주 양민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고 만 것이다. 그건 어찌 보면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자신의 입지를 키우려했던 이승만 일파의 과욕이 낳은 참극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국가폭력을 무려 58년이나 지난 2006년에야 정부적인 차원에서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니, 얼마나 철저히 뭍 사람들이 제주를 무시하며 수탈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알만하다.

이와 같은 아픔의 역사를 지녔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뭇 사람들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제주를 무작정 찾아간다. 과연 이번 여행은 나에게 어떤 말들을 걸어올까?

 

 

대통령이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를 했다. 제주인들이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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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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