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갑갑증이 몰려올 땐 무작정 떠나야 한다
닭의 해에 태어난 나에게 닭의 해인 2017년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해였다. 단재학교에서의 생활이야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6년차 교사가 된 만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6년 간 생활해온 민석이와 잘 마무리하는 해이자, 단재학교 학생 외에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나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기도 하는 등 도전이 가득한 해였으니 말이다.
그뿐 아니라 송파마을예술창작소에선 매달 한 번씩 지역민들과 만나 독립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도 이끌 수 있었으니, 좀 더 사람과 사람, 관계와 인연에 대해 생각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쓰는 기록은 제주도 여행기이기에 이에 관한 내용은 별도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 마을예술창작소에서 독립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다.
즉흥적인 제주 여행, 콜?
그렇던 2017년이 흐르고 눈 깜빡할 사이에 2018년 개의 해가 밝았다. 헌 해가 지고 새 해가 밝는다고 뭔가를 꾸미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하진 않았다. 부산함보단 지금은 고요함 속에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헛헛한 기분으로 방에 앉아 있으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울분 같은 게 올라오고, 왠지 모를 갑갑함이 나를 삼키려 하더라. 늘 군중 속에 있었기에 이와 같은 고독함을 그리워했으면서도 막상 방학이 되어 고독과 쓸쓸함의 한 가운데 있으니 그걸 만끽하질 못하고 한껏 몸서리치고 있었던 거다. 역시 놀면 일하고 싶고 일하면 쉬고 싶으며, 무리 속에 있으면 홀로 있고 싶고 홀로 있으면 무리 속에 있고 싶다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감정 상태를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내 자신이 많이 약하다는 사실을 직시한 채 약간이나마 숨 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경강선 KTX를 타고 강릉에 가볼까 하다가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엉겁결에 끊게 되었다. 역시 이럴 때 보면 나란 인간은 늘 계획적으로만 살아왔고 그런 계획대로 살길 원하면서도, 이처럼 막상 상황에 닥쳐선 참 즉흥적이고 막무가내인 측면이 있다. 아마도 그런 즉흥적인 모습은 너무도 짜인 틀 속에서만 살려했던 내 과거에 대한 반동이기도 할 테다.
▲ 티켓을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그건 내 삶에 대한 반동이기도 하다.
떠나면 보이는 것들
때론 이처럼 막무가내로 여행을 떠날 때가 있었다. 2009년에 했던 한 달간 나의 두 발로 걸어 목포에서 고성까지 갔던 국토종단이나 2011년에 목적지도 없이 정처도 없이 그저 발길이 닫는 대로 가며 사람을 만나고자 했던 사람여행이 그것이다. 해야 할 일도 있었고,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함에도 그 당시의 나는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 매우 운명론적인 스멜이 물씬 풍기지만, 그건 운명이라기보단 그저 ‘그렇게 안 하면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늘 두려워 그 자리에 머물려 했고, 늘 이것저것 재며 ‘지금 말고 나중에 하자’라고 미루어 왔던 게 그 순간엔 그런 여행으로 폭발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빠져들어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고 반복되는 쳇바퀴처럼 답답하게만 느껴질 때, 호기심에 모든 게 새롭게 보이던 삶이 너무나 평범해져서 더 이상 아무런 궁금증도 일으키지 못할 때, 그런 일상과 그런 삶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떠난다는 건 일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하여 그 일상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하며, 눌러앉은 삶을 조망케 하여 늘 똑같은 삶이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 고성읍으로 가는 길에. 2009년에 국토종단은 일상을 정말 풍요로운 순간으로 느끼게 해줬다.
그건 마치 우치다쌤이 “다른 조건을 모두 똑같이 만들어야 조그만 변화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생활이 자주 바뀌면 자기 몸의 작은 변화를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연의 변화도 눈치 채지 못하게 됩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길로, 똑같은 행위를 해야 작은 변화도 바로 알게 됩니다. 특히 계절의 변화, 같은 시간대의 어둡고 환한 정도, 몸 속 기의 흐름, 봉우리의 변화 등과 같은 것은 모든 조건을 똑같이 만들 때에만 비로소 감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반복적인 삶의 의미와도 통한다. 반복적인 삶을 살지만 얼마나 의식을 깨인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느냐, 외부의 자극에 충실할 수 있느냐에 따라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발견할 수 있고, 일상 속에서 이상을 간파할 수 있듯이, 나에게 현재를 떠난다는 건 그와 같이 무뎌진 감각들을 깨워내는 일이니 말이다.
▲ 사진작가 리처드 실버(Richard Silver)가 24시간을 사진 한 장에 담았다. 변화를 느낄 수 있으려면 그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
‘파랑새는 곁에 있다’는 말의 의미
아마도 ‘파랑새는 그 어디에 있었던 게 아닌, 바로 주위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와 같은 여행의 이유라 해야 맞을 것이다. 떠나봐야만 머물렀던 그곳,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던 그 순간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파랑새의 이야기를 간혹 착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걸 마치 ‘현실의 가치는 망각한 채, 헛 희망을 찾아 떠나는 어리석음’으로 이해하여 떠나려는 사람을 만류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부터 쭉 말했다시피 떠나봤기 때문에 현실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멀리서 조망해봤기 때문에 내가 서 있는 기반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즉 그런 탐색과 모험의 과정을 통해서만 현실이 파랑새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지, 그런 과정도 없이 그런 깨달음에 이르라고 한다면 그건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를 수 있다’는 말처럼 매우 피상적인 얘기가 될 뿐이다.
▲ '파랑새 이야기'는 '쥐의 혼인' 이야기와 닮아 있다. 가까운 것의 가치는 멀리 떠날 때에 보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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