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연처럼 두려움을 안고 제주행 비행기를 타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누군가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겠다며 동해로 서해로 종로로 또는 높은 산을 찾아 떠났겠지만, 난 내 방에 콕 틀어박힌 채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고 방안에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맘 같아선 어딘가로 홀연히 떠나고 싶기도 했지만, 그땐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렇게 있었다.
▲ 보신각을 에워싼 사람들. 산으로, 바다로, 종로로 모인 사람들. 새 기분으로 새 해를 열려는 마음이 소중하다.
망상에 시달리던 새해 첫 날의 풍경
그랬더니 스멀스멀 여러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방학이 됐는데도 왜 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 ‘늘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여행도 떠나고 하고 싶은 일도 하겠다고 하더니 뻥이었던 거야?’라는 생각들 말이다. 그러고 보면 단재학교에 들어와 지내는 6년 동안 방학이라고 해서 뭔가를 뚜렷하게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지금 잘 쉬어놓아야 학생들과도 새 학기를 잘 만들어갈 수 있어’라고 자위하며 시간을 낭비했을 따름이다. 거기에 새해까지 밝은 마당이니 온갖 망상들이 더욱 거세게 나를 짓눌렀다.
▲ 17년도 단재학교 수료식 사진. 어느 한 해 열심히 안 산건 아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그렇다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왔을 때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거나,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충실히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게 아닌, 이 시간에 얼마나 들러붙어 있을 수 있느냐다. 그건 달리 말하면 예전엔 그 순간에 머물지도 못했고 그러니 당연히 누리지도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을 준비하던 시기엔 계획에 맞춰 일 분 일 초를 쪼개가며 살았지만, 그건 미래의 영광을 위해 현재를 희생한 것뿐이며, 단재학교에 온 이후에도 학교 일정에 따라 근근이 살아가기에 바빴을 뿐이다. 어찌 보면 이건 나의 한계라 할 수 있다. 현재를 늘 미래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던지, 일상에 치여 현재를 망각하고 살던지 하는 식이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현재를 살지 못하다 보니, 맘속으론 늘 ‘현재를 즐겨야 한다’,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고 되뇌어 왔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자꾸 치닫다 보니 불현듯 ‘뭘 그리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나 자신을 끌어 내리고 있어. 그럴 거면 사람여행을 떠날 때처럼 그냥 떠나보면 될 것을’이란 막무가내의 생각이 들더라. 맞다, 언제부턴가 나는 계획보단 즉흥성을, 필연보단 우연을, 정해진 길을 안전히 가는 것보단 모르는 길을 비틀거리며 가는 것을 원동력으로 삼곤 했다. 그럴 땐 그저 떠오르는 장소에 무작정 가서 그 상황에 빠져들어 느낄 수 있는 걸 최대한 느끼려 발버둥치곤 했다.
▲ [포레스트 검프]란 영화는 우연이 만든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처럼 맘 가는 대로 살 수 있다면.
발작적으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다
가장 최근엔 ‘재즈 콘서트’에 갔을 때 정말로 그랬다. 학교 일정으로 잡혀 있어 아이들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콘서트홀에 갔었는데, 그곳에선 아름다운 선율의 재즈가 하염없이 흘러나오더라. 보통 이럴 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어, 더욱이 학교 아이들이 신경 쓰여 맘껏 즐기질 못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몇 분간은 묵묵히 앉아 듣는 정도로만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곳까지 와서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며 주눅 들어 있지? 나는 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이 시간을 허비하긴 싫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턴 눈을 감고 귀로 들려오는 음악의 선율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하고 리듬을 타기도 하며 한껏 빠져들었던 거다. 주희는 『논어』라는 책을 읽고 나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게 감격스러워 ‘손은 절로 춤추고 발은 절로 리듬을 밟는다(手之舞之足之蹈之)’고 표현했는데, 그때의 내가 정말 그랬던 거다. 물론 모든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엔 아이들이 “건빵쌤 꼭 술 취한 사람 같아서 옆에 앉아 있기가 매우 창피했어요”라고 놀리긴 했지만, 이미 그 순간을 만끽한 것이었으니 어떤 말이든 상관없었다.
▲ 17년 11월 29일에 대극장에서 있었던 재즈콘서트는 나에겐 맘껏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처럼 새해가 밝았지만 한껏 망상에 빠져들고 있던 그때, 즉흥적인 너무나 즉흥적인 생각으로 ‘그럼 제주도로 떠나보자’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서 언제 제주도로 가는 표를 끊을까 고민하다가 2일에 다음 날 제주도로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발작적(이 단어는 동섭쌤이 무척 좋아한다)으로 끊었고 4박 5일 동안 있을 생각으로 7일 오전에 김포로 돌아오는 비행기표까지 예매를 마무리 지었다. 역시 맘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맘먹고 나면 일은 순식간에 진행된다.
▲ 2일에 발작적으로 제주행과 김포행 왕복으로 예매했다.
우연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여기며
예전엔 우연을 정말 싫어했었다. 그땐 내 자신이 매우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싫어한다고만 생각했기에 뜻밖의 만남이나 갑작스런 일들은 무조건 쳐내려고만 했던 거다.
하지만 임용에서 연거푸 실패하고 출판편집자를 꿈꾸다가 다시 단재학교에 들어와 교사의 꿈을 꾸고 있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내 삶이야말로 우연의 연속’이란 생각이 들더라. 필연적으로 계획적으로 살고 싶어 아등바등 댔지만 결과적으로 내 인생은 반필연적으로, 반계획적으로 흘러온 거다.
그쯤 되니 내가 왜 그토록 우연을 싫어했는지도 알겠더라. 그건 계획대로 사는 걸 좋아한 나였기 때문에 싫어했던 게 아니라, 수많은 변수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생각 자체가 넓지 못했고, 존재 자체가 크지 못했기 때문에 싫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이 우연 속에서 이만큼이나 흘러왔듯이 우연이야말로 전혀 다른 존재를 만나게 하며, ‘나는 이렇고 이런 사람이야’라는 확고한 자기의 상을 깨부수고,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김용옥쌤도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을 이야기했지만, 인생이란 역시 필연보다는 우연이 더 지배적이다. 세포의 활동자체가 필연보다는 우연이 더 결정적이다. 진화라는 것이 결국 우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우연이 없으면 모험이 없고, 모험이 없으면 창조가 없다.
김용옥, 『중국일기 1』, 통나무, 2015, 16쪽
우연은 언제고 나를 찾아오며, 일상의 견고한 벽을 허물고, 관념이란 탄탄한 지반을 무력화시킨다. 그럴 때 지레 겁먹고 도망치거나 날 가만히 놔두라며 발버둥 칠 게 아니라, ‘이게 바로 삶이구나’라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 우린 비로소 삶이란 이름의 모험을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나(이 말엔 어폐가 있다. 애초에 ‘나’라는 고정된 존재 자체가 없으니 말이다)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우연에 몸을 맡긴다는 얘긴, 삶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맘껏 노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건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별다른 목적도 계획도 없이 맘껏 떠돌며 노닌다’는 뜻으로, 『장자』라는 책 첫 장을 펴면 나오니 그만큼 장자 사상의 핵심을 담고 단어라 할 수 있다)’와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 봉황이 날 때까지 메추라기들은 그런 봉황을 비웃고 멸시한다. 그런데도 뜻을 굽히지 않고 날아올라 자유를 누빈다.
두려움으로 시작한 제주 여행의 시작
우연에 따라 매우 발작적으로 제주도를 목적지로 정했다. 그런데 제주에 가서 무얼 할지, 어딜 갈지, 누굴 만날지 전혀 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두 번의 제주여행 때엔 자전거를 타고 제주 외곽을 일주했으니, 이번엔 좀 다른 여행을 하고 싶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이틀 동안은 제주시에 머물며 4.3평화기념관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머지 시간은 볕이 넉넉히 들어오는 해변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가 책도 읽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향유하고, 그 다음 이틀은 서귀포로 가서 정방폭포와 이중섭미술관에 가보고 시간이 된다면 오름도 잠시 돌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어쨌든 이번 여행의 컨셉은 여유롭게 제주를 누리다 오는 거다. 물론 뭘 해야 한다고 정확히 정한 건 아니니 그저 맘 가는 대로, 몸이 들썩이는 대로 하면 된다. 그래서 노트북과 책, 간단한 여벌옷만 챙겨놓고 잠자리에 누웠다.
8시 45분에 김포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래서 5시에 일어나도록 알람을 맞춰놨는데 새벽 3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6년 만에 홀로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인지, 설렘보단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설렘이든 두려움이든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반증이니 나쁠 건 없다는 사실이다.
아침밥을 간단하게 먹고 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새벽 거리는 전혀 춥지 않고 선선하게 느껴졌으며 하늘엔 보름이 이틀이나 지났음에도 크고 둥근 달이 떠있어 힘을 줬다. 마치 군생활 시절에 GOP에서 1년 근무를 마친 후 FEBA로 철수할 때 FEBA 근처에 가면 환한 불이 켜져 있고 군악대의 힘찬 연주소리가 들려 힘이 불끈 났듯이, 휘영청 떠있는 달빛은 두려워하는 나에게 맘껏 부딪히고 누려보라고 응원해주는 것만 같았다.
▲ 집에서 나와 역으로 가는 길에 두둥실 떠있는 달. 크고 밝아서 좋다. 제주 잘 다녀올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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