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제주여행이 준 선물, ‘한 평생이란 시각’
자전거점에 자전거를 반납하니 공항까지 태워다 주신다. 역시나 방학 기간 중 주말답게 공항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씨가 말했던 것처럼 70~80년대엔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그저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하긴 나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제주에 온 것이니, 제주는 이제 더 이상 머나 먼 유배지의 땅은 아니게 된 것이다. 나만큼 이들도 이곳저곳 다니며 2018년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했겠지.
▲ 사람이 가득 찬 공항. 제주에 왔지만 집에 가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북새통을 이룬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전주
비행기는 공항을 벗어나 활주로에 진입하기 전 단계에서 멈췄다. 이곳은 하나의 활주로를 이착륙하는 모든 비행기가 사용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지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여행을 마친 다음 주엔 제주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는데 그로 인해 공항은 활주로가 폐쇄되며, 활주로가 하나뿐인 제주공항의 한계를 지적하는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1월 첫째 주에 제주로 온 것은 천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12분 정도 지체한 후에 드디어 활주로에 올라섰고 전속력으로 달려 제주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 비행기는 힘겹게 떠올라 서울로 향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온 제주에서 나는 간다.
비행기는 정확히 광주-전주-공주-천안을 거쳐 가는 항로로 날아가더라. 내 자리의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너무도 익숙한 호수의 전경과 산의 풍광, 그리고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옥정호였고 모악산이었으며, 전주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고향의 전경은 처음에 봤을 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점이기에 낯설었지만, 그래도 자세히 보고 있으니 너무도 낯익은 모습이 얼핏 보여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지더라.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저 도시 곳곳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괜히 그리워지고, 괜히 보고 싶어지고, 괜히 마음이 요동을 친다.
비행기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날아 김포엔 3시에 도착했고, 천호역엔 4시 30분쯤 도착했다. 이로써 3일 만에 다시 나의 집에 도착한 셈이고, 3박 4일 간의 무작정 떠난 제주여행은 끝난 셈이다.
▲ 왼쪽 옥정호, 가운데 모악산과 전주의 모습, 오른쪽 전주 시내. 전주대의 스타센터가 한 눈에 보인다.
한 평생이란 시각으로 여는 2018년
2009년에 국토종단을 할 때 비가 오던 날 원통에서 진부령 고개를 넘어 고성읍으로 걸어가야 했었다. 목포에서부터 시작한 도보여행은 어느덧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를 거쳐 강원도에 들어섰고 강원도 경로 중 마지막 목적지인 고성이 코앞에 놓였다. 그런 상황들은 기뻤지만 비가 오는 날에 진부령을 넘어 고성까지 가야 한다는 건 부담이었다. 50km나 되는 길로 걸어선 12시간 정도나 걸리는 어마어마한 거리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비까지 오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부리나케 걸어 저녁 7시가 되었을 땐 9Km만 남겨놓은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무리였기에 어쩔 수 없이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1톤 트럭이 오는 걸 보고 무작정을 손을 들었는데 바로 세워주시더라. 솔직히 내가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 입장이었다면, 비도 내리고 칠흑 같은 어둠도 깔려서 공포감이 밀려오는데 거기에 어두침침한 우비까지 입은 사람이 손까지 흔들고 있으니,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몰라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정말 감사하게도 나를 태워줬고 그 덕에 나는 고성까지 편안히 올 수 있었다.
그때 그분과 잠시 얘기를 나누며 여행을 떠나 여기까지 온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니, 그분은 “한 평생이란 시각으로 인생을 보면 지금의 이런 여행도 좋은 추억이고 계기겠죠”라는 대답을 해주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고, 그렇게 너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그리고 그 진심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2009년 국토종단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들었던 그 말이야말로 당시 29살로 30대 삶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하나의 모토가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고 정말 30대의 삶은 그렇게 산 삶이라 자부할 수 있다. 그 말마따나 너른 시각으로 인생을 보고, 긴 안목으로 삶을 대하려 노력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번에 제주여행을 갑작스레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말이 나의 심상 깊은 곳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리라.
▲ 진부령을 내려왔다. 이미 6시가 넘은 시간. 이대로 갈 것인가? 히치하이킹을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한 평생이란 시각으로 살아가기’가 화두인 건 마찬가지다. 그건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나에게, 단기적인 이익만을 생각하는 나에게, 필요성에 따라 사람 관계를 맺는 나에게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다시 새롭게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주는 시각이기 때문이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9년 이후로 9년을 살아오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고, 나 자신에게도 충실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져본다, ‘한 평생이란 시각’으로 2018년 내 삶을 잘 가꿔가겠다고. 그리고 모처럼 홀로 했던 이번 제주여행을 시작으로 지금 하는 일들, 그리고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올 한 해를 살아가겠다고.
▲ 제주는 '건넌 마을'이라는 뜻이다. 건넌 마을에 다시 와서 볼 수 있길 바란다. 제주는 나에겐 희망이고 꿈이다.
여행 경비 결산
내용 |
금액 |
기타 | |
숙박 |
32.000원 |
1박 서귀포 호텔 랑주 | |
39.000원 |
2박 성산 코델리아S호텔 | ||
35.000원 |
3박 제주 동궁모텔 | ||
항공료 |
72.300원 |
김포→제주 | |
67.300원 |
제주→김포(1월 7일 65.200원[취소 수수료 5.000원]) | ||
자전거 대여 |
60.000원 |
15.000원X4일 | |
우도 왕복료 |
9.500원 |
자전거 운송료 1.000원 포함 | |
음식 |
3일(수) |
7.000원 |
중화요리 해물볶음밥 |
4.900원 |
담배+라이터 | ||
12.000원 |
네네치킨 | ||
4일(목) |
8.000원 |
미향 해장국 | |
3.000원 |
이어플러그&다이제 | ||
12.000원 |
해장국 8.000원 + 맥주 4.000원 | ||
2.000원 |
맥주 | ||
5일(금) |
17.000원 |
우도 소풍 스페셜 메뉴 1인 | |
3.100원 |
제주소주 2병 | ||
10.000원 |
동문시장에서 회 구입 | ||
9.000원 |
동문시장에서 분식 구입 | ||
6일(토) |
8.000원 |
봉해장국에서 양곰탕 | |
28.000원 |
면세 담배 구입 | ||
체험 |
1.500원 |
이중섭 미술관 | |
결산 |
445.600원 |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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