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린 단재학교 영화팀이예요(민석과 정훈편)
영화팀은 방학 중에 하루 날을 잡고 모여 영화를 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애초에 이렇게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 정례화 되었다. 그렇게 2012년부터 작년까지 쭉 진행되었는데, 올핸 그런 룰(?)을 깨고 1박 2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가게 되었다. 어찌하여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영화팀 멤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틀이 바뀌면 꼴이 바뀌듯, 멤버가 바뀌면 상황도 바뀌니 말이다.
우리는 단재학교 영화팀이예요
영화팀은 어쩌다 보니 남학생들로만 구성되어있다. 이건 의도하지 않았는데 정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여학생이 처음부터 없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2012년 1학기엔 한 명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사정에 의해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한 학기만 다닐 생각으로 2학기에 새로운 여학생이 들어왔었다. 2013년에 지민이가 들어와서, 2014년 1학기까지 영화팀 멤버로 활동했다. 지민이는 “영화팀에도 여학생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아쉽게도 영화팀엔 더 이상 여학생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쭉 영화팀 내의 여학생 역사를 살펴보니 세 명의 여학생이 있었지만, 한 명씩 번갈아 가며 활동했을 뿐 함께 활동한 적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묘한 우연의 일치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런 역사를 지나 지금은 네 명의 남학생으로 영화팀은 구성되어 있다. 맏형의 역할을 하고 있는 민석이와 정훈이, 영화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는 현세, 아직은 적응기간을 보내고 있는 막내 상현이까지 네 명의 남학생이 그들이다.
▲ 여학생들이 있을 때의 영화팀의 모습.
왼쪽부터 2012년 4월의 전주영화제, 2012년 9월의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2013년 5월의 컬투쇼, 2013년 10월 지리산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김민석
민석이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영화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멤버다. 1년 사이에 살이 갑자기 빠지면서 예전의 통통하여 귀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아이돌 오빠’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덧붙여 외모의 변화뿐만 아니라 성격의 변화까지 있었으니 놀랍다고 할만하다.
잠시 예전에 카카오스토리에 적은 민석이에 대한 글을 보도록 하자. 웃자고 쓴 내용이지만, 그 당시 민석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잘 드러난다.
호는 구황이요. 이름은 민석이라. 똥글똥글한 구여운 외모와. 들통나기 위해 현란하게 구사하는 구라. 그리고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사악한 웃음과 껌을 국가기간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말도 안 되는 포부와 로사에 대한 지독한 사랑으로. 단재학교를 평정한 전설적인 인물.
-카카오스토리 중, 2012년 10월 9일
▲ 이 글을 쓸 때만해도 단재 인물 탐구를 연재하려 했는데, 민석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이~
이와 같이 전설적인 인물이던 민석이는 더 이상 장난만 치는 아이가 아닌,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는 사내가 되었다. 2015학년 1학기 마지막에 있었던 발표회의 아카펠라를 연습할 때 전체 학생을 조율하며 연습을 했고,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9명의 선배와 후배,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를 이끌며 화기애애하게 연습시켰고 발표할 때에도 리더역할을 충실히 했다.
특히 이번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며 ‘스마트폰을 걷을까? 말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을 땐 놀라운 변화가 감지되었다. 예전엔 뭔가 부당한 상황(방학 중 여행인데 스마트폰을 왜 뺐느냐?)이라고 생각하면, 그 부당함을 한껏 목소리 높여 호소하기에 바빴을 뿐, 왜 그래야 하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의 언성이 높아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뭔가 부딪힐 만한 상황이 생길 때면 ‘민석이와 얼마나 치열하게 다투게 될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래야만 하는 상황(스마트폰만 하느라 여행을 느끼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도 있기에 배려해야 한다)을 설명하자 바로 수긍하며 “그러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을 테니, 빼앗지는 말아주세요”라고 한발 물러서 절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견하다는 생각과 함께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전엔 자신이 생각할 때 아닌 건 아니었을 뿐 그걸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는데, 이젠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렇듯 민석이는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다. 여기서 마무리 짓기는 섭섭하니 과거의 글을 패러디하며 지금의 민석이를 소개하며 마치도록 하겠다.
“호는 구황이오. 이름은 민석이라. 갸름하고 선이 살아 있는 아이돌스러운 미모와. 난민을 연상시키는 뼈밖에 남지 않은 체형. 그리고 전체를 조율할 줄 아는 리더십과 비 오는 날에 자신의 몸보다 자전거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자전거 보호사상과 초콜릿을 라면에 넣어 먹을 수 있는 도전정신으로 단재학교를 접수한 사내”
▲ 2012년의 민석이와 2015년의 민석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이정훈
정훈이는 작년 여름에 단재학교에 왔다. 키가 180Cm가 넘어가고 몸은 건장한 청년 이상으로 다부지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여리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학교에 누구 못지않게 잘 다녔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도 빠지지 않고 다녔던 성실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학교에 빠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선생님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들어 아예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부등교 학생’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성실함’을 지상과제로 여기며 살아왔던 사람이라, 그런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어떤 병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려 했다. 이를 테면 ‘어딘가 꼬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 풀어주면 정상적으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접근 말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정훈이의 상황을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정훈이의 태도를 ‘한 때의 방황’ 정도로 인식하려는 태도였다.
하지만 정훈이를 대하면 대할수록 그와 같은 접근은 오히려 서로의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군가 색안경을 쓰고 나를 본다면 대화는커녕 아예 상종도 하기 싫은 그런 마음처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해한다고 가식을 떨고 있으니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년 2학기는 이런 시행착오 때문에 서로는 더욱 엇나갔고, 정훈이는 학교에 거의 등교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1학기가 되었다고 해서 나아질리 없었다. 정훈이는 ‘왜 학교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의미부여가 되지 않았고, 어떤 부분에선 ‘월등히 잘하지 못할 바엔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부모님과의 관계는 더욱 안 좋아졌고 자신을 더욱 비하하게 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완전히 ‘멋대로 되라지’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다. 나는 넌지시 그런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정훈이가 어느 정도 맘을 열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테지만 서로 이해하기 위해,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시간은 필요한 법이다. 래포rapport 형성이라는 게 시간을 배제하고 교사의 권위로만, 또는 애정의 정도로만 형성되진 않으니 말이다. 갈등이 있고, 편견으로 상처 입히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런 시간들을 함께 겪어낼 때 쌓이게 되는 게 바로 동질감이다. 그러다 보면 점차 편견은 걷히고 그 사람이 보이게 된다.
내가 100% 정훈이를 이해하거나, 완벽하게 래포가 형성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엔 10%만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런 시간들이 기반이 되어 올해 2월엔 정훈이와 행동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행동계약이 모두 다 실패할 경우엔 최후의 수단으로 ‘건빵네 자취방에서 1주일간 동고동락하기’로 했고 결국 1주일간 같이 사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시간이 정훈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젠 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고, 긴밀한 얘기도 훨씬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다.
▲ 동고동락하던 2월의 어느 날. 정훈이와 함께 아차산에 올랐다.
어찌 보면 문제란 어떤 작은 문제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 나중엔 결국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포기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천히 시간의 여유를 두고 풀어 가면 언젠가는 풀릴 테지만, 주위의 사람들도 그 꼴을 보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도 조바심에 빨리 풀려다 보니 더욱 더 꼬여 간다. 지금까지 정훈이와 한 일은 꼬였던 매듭 하나를 푼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경험 자체가 단서이기에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풀어 가면 언젠가는 꼬였던 모든 것이 풀리게 될 것이다.
청나라의 서예가인 석도石濤,(1641~1707?)는 ‘일획一劃이 만획萬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붓글씨를 쓰는 첫 획을 보면, 전체 글이 어떨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말은 곧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에 이미 전체적인 밑바탕이 숨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훈이는 지금 아주 사소할 수 있는 첫 발자국을 내디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사소한 움직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알고 한 획 한 획 정성스레 글씨를 완성해가듯, 인생이란 화선지에 삶을 정성스레 채워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 2014년의 정훈이와 2015년의 정훈이.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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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함께 가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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