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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창협, 농암잡지 - 외편 30. 목릉 이전의 시엔 송풍(宋風)의 시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본문

문집/농암잡지

김창협, 농암잡지 - 외편 30. 목릉 이전의 시엔 송풍(宋風)의 시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건방진방랑자 2019. 5. 1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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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목릉 이전의 시엔 송풍(宋風)의 시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世稱本朝詩, 莫盛於穆廟之世.’ 余謂詩道之衰, 實自此始.

蓋穆廟以前, 爲詩者, 大抵皆學宋, 故格調多不雅馴, 音律或未諧適. 而要亦疎鹵質實, 沈厚老健, 不爲塗澤艶冶, 而各自成其爲一家言.

 

 

 

 

해석

世稱本朝詩, 莫盛於穆廟之世.’ 余謂詩道之衰, 實自此始.

세상에선 조선의 시는 목릉(선조)의 시대보다 성대함이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시도(詩道)의 쇠함은 실제론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蓋穆廟以前, 爲詩者, 大抵皆學宋, 故格調多不雅馴, 音律或未諧適.

대체로 목릉의 이전에 시를 짓는 사람들은 대저 송풍(宋風)을 배웠기 때문에 격조는 우아하거나 올바르지 않은 것이 많았고 음률은 간혹 적당하지 않기도 했다.

 

而要亦疎鹵質實, 沈厚老健, 不爲塗澤艶冶, 而各自成其爲一家言.

그러나 요체는 또한 성기고 거칠어도 자질은 실재하여 침착하고 중후하며 노련하고 강직하여 꾸며대거나 수식하려 하지 않아도 각각 스스로 이루어 일가의 말이 되었다.

 

 

인용

목차 / 전문

저자 / 지도

앞 글 / 뒷 글

백악시단의 진시연구 / 한시 쇄신의 방향

081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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