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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창협, 농암잡지 - 외편 31. 목릉성세 이후로 복고파에 휩쓸리며 모든 시가 비슷해지다 본문

문집/농암잡지

김창협, 농암잡지 - 외편 31. 목릉성세 이후로 복고파에 휩쓸리며 모든 시가 비슷해지다

건방진방랑자 2019. 5. 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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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목릉성세 이후로 복고파에 휩쓸리며 모든 시가 비슷해지다

 

 

至穆廟之世, 文士蔚興, 學唐者寢多. 中朝之詩, 又稍稍東來, 人始希慕倣效, 鍛鍊精工. 自是以後, 軌轍如一, 音調相似, 而天質不復存矣. 是以讀穆廟以前詩, 則其人猶可見; 而讀穆廟以後詩, 其人殆不可見, 此詩道盛衰之辨也.

 

 

 

 

해석

至穆廟之世, 文士蔚興, 學唐者寢多.

목릉(穆廟)의 시대에 이르러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어 당풍(唐風)을 배우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中朝之詩, 又稍稍東來, 人始希慕倣效, 鍛鍊精工.

그리고 중국의 왕세정과 이반룡의 강서시파 시도 점점 우리나라로 유입되어, 사람들이 처음으로 모방하길 희망하여 단련하고 정밀히 하며 공교히 했다.

 

自是以後, 軌轍如一, 音調相似, 而天質不復存矣.

이때 이후로 바퀴자국이 하나인 것처럼 음률과 격조가 서로 비슷해져 천성적인 자질이 다시는 보존되질 못했다.

 

是以讀穆廟以前詩, 則其人猶可見; 而讀穆廟以後詩, 其人殆不可見, 此詩道盛衰之辨也.

이런 이유로 목릉 이전의 시를 읽어보면 그 사람이 오히려 보이지만, 목릉 이후의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으니, 이것이 시도(詩道)가 성하고 쇠함의 구분점이다.

 

 

인용

목차 / 전문

저자 / 지도

앞 글 / 뒷 글

백악시단의 진시연구 / 한시 쇄신의 방향

081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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