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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풍관 방문 - 녹취록(17.02.20) 본문

연재/배움과 삶

개풍관 방문 - 녹취록(17.02.20)

건방진방랑자 2019. 10. 23.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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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의 내용

 

 

개풍관의 1층은 합기도장이고, 2층은 자택이다. 일주일에 6번 합기도 지도를 하며 3시부터는 소년부 아이들이 와서 수련을 한다. 합기도만 주구장창 배우는 게 아니라, 여러 다양한 무술도 함께 배우며, 때론 여러 무예가를 초청하여 강습회를 열곤 한다. 그리고 화요일 저녁엔 정기적으로 서당을 열어 문하생들과 함께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한다.

 

 

 

 

 

개풍관에선 화요일마다 심포지엄이 열린다

 

교수로 일하던 시절에 강의를 할 때면 여러 청강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요청으로 2011년에 기초공사를 시작하여 1년 만에 개풍관이 완공됐고, 그 영향으로 자연스레 화요일 저녁엔 테라코야寺子屋(한국의 서당)를 열게 된 것이다.

테라코야의 기원은 에도시대부터인데, 개풍관도 그런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보면 된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인원 중 1/3은 교원이고, 몇 분은 의사다. 몇 명의 사람들이 돌아가며 발표를 하는데, 이때 정해지는 주제는 현재 일본 사회의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언젠가는 태어나는 것과 멸망해가는 것이란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고, 그 외에 국민국가, 교육의 문제, 의료의 문제와 같이 다양한 주제로 발표를 하기도 했다.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나는 이행기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내용으로 발표를 했던 것이다. 그땐 캄보디아, 미얀마, 네팔, 한국 등의 격동기를 겪은 나라들을 연구하며 우리들의 이야기 방향을 정해갔다.

최근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매우 흥미롭다. ‘내 책이 한국에서 최근에 왜 유행하는 걸까?’가 궁금하기도 하니 말이다. 언론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비타협적으로 보며, 한국을 안 좋은 모습으로만 다룬다. 일본의 혐한과 혐중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를 모두 싫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국민국가는 서서히 해체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렇게 한 나라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나라에 가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들 중엔 아예 일본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그렇게 조작을 하고 있다고 믿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저처럼 한국과 중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올바른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예, “너 한국인이지?”라고 근거 없는 비방까지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재일교포인 김상중 교수와 나눈 대담집이 있기 때문인 거 같다. 김상중 교수는 구마모토 출신인데 우리는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대담을 나눴었다. 거기엔 17세기에 만들어진 국민국가라는 제도가 어떻게 변해 왔고 변해갈 것인지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국민국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탄생한 짧은 역사를 지녔을 뿐이다. 국민국가의 조건엔 국경을 통한 영토, 동일 언어, 동일 종교와 같은 조건들이 있다. 동일한 행정체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국민이란 개념도 매우 인공적이다. 어떤 사람의 경우엔 벨기에에서 태어나 파리에 살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예요?’라고 묻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국민국가가 점차 해체되며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엔 오히려 기동성이 높아 여러 나라를 아무렇지 않게 오고 가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조기 유학은 바보 같은 짓이다

 

한국에서도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던지 할 테니, 위의 얘기와 그다지 다르진 않을 것이다. 한국의 기러기 아빠들이 그런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비즈니스맨이 본 육아산업과 같은 책을 보면, ‘중학생 때부터 외국에 있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게 좋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엄마와 아이만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아빠는 돈을 버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발리섬에 가서 나눴던 적이 있다. 발리섬에 일본인을 위한 국제학교를 만든다는 거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프랑스 같은 곳은 너무 비싸기에, 그나마 저렴한 발리에 학교를 짓는다는 발상이 그렇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점은 저렴한 가격에 외국어를 배울 수 있으니, 중학생 때부터 보내 학위까지 따서 돌아오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그리고 이르면 이를수록 그와 같은 경험은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을 기자가 나에게 들려주며 내 소감을 물었기에, 나는 주저함 없이 그거 바보 같은 짓 아냐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인도네시아에서 6년을 살았지만 그곳의 문화, 언어, 역사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었다. 유학을 한다는 건 그 사회에 대한 경의와 관심을 갖는 것임에도, 그 사람은 그곳을 깔보기만 했던 것이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어떻게 국제적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더욱 심각한 점은 그렇게 이른 시기에 타국으로 떠난 아이들은 괴롭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일본에 돌아온다 해도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10년 동안 떠나 있었으니, 이야기를 할 상대도 없고, 부모와의 관계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타국에서 10년 동안 고생했고, 최첨단의 교육을 받았으니, 일본에서 자란 아이들을 열등한 아이들로 치부하여 넌 모질이야라고 표현하며,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역시 일본은 이러니 후진국일 수밖에 없어라고 비하한다. 그 아이는 일본에 대한 정체성도 없으며, 아쉽게도 인도네시아에 대한 정체성은 더더욱 없다. 그런 아이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거 바보 아냐라는 말에 덧붙여 “10년 동안 고생한 아이들이 일본에서 출세조차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런 아이가 일본에 돌아와 다른 사람을 무시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무시하게 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부모다. 왜냐하면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고,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기러기 아빠처럼 자신의 먹는 걸 줄이고, 입는 걸 아껴서 자식을 가르쳤음에도, 그런 자식에게 가장 먼저 무시를 당하게 된다.

2013년에 처음으로 부산대에 왔을 때 동섭쌤에게 부산대에서 가장 인기 없는 과는 어딘가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한국어과, 한국어 문학부와 같은 과들은 인기가 없고, 경제학, 법학, 영문학과 같은 과가 인기가 많습니다라고 대답해주더라. 그 말은 곧 한국에 대한 감수성도 없고 한국사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훨씬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었다. 이처럼 국민국가는 서서히 해체되어 가고 있다.

 

 

 

국민국가 말기의 단면들

 

성공한 사람들은 돈도 있고 기동력도 뛰어나 이 나라는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와이에 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전이 터진다던지, 지진이 난다던지, 전쟁이 난다던지 하면 아무런 미련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 된다. 도쿄전력의 사장은 2011년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를 처리하려 하지 않고 그냥 싱가포르로 도망가 버렸다. 머물 수 있는 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론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더 큰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그래서 이 나라의 운명과 함께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같이 나가 싸우려는 사람들이 정책 결정권을 가져야 함에도, 기회주의자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 망해도 아무런 책임의식도, 문제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고 있는 것이다. 그건 마치 배를 타고 대양을 이동할 때 누구를 선장으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 배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배를 맡겨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헬리콥터를 소유하고 언제든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약삭빠른 사람에게 배를 맡기고 있다.

미국의 작년 대선에서 힐러리가 트럼프에게 연방 세금을 안 냈죠?”라고 물으니, 트럼프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건 미국인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말로 어떻게든 세금을 내지 않는 것, 적게 내는 것을 영리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가 당선되어 세금을 안 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세금 내는 방식을 결정하도록 하는 사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거기엔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사람들의 지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매우 이상한 현상이다. 애정도 없고, 눈치만 있으며, 이득만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말로는 국익을 말하지만 그때의 국익이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에둘러 표현한 말에 불과하다. 옛날엔 마을을 위해 학교를 만들고 다리를 만드는 등 어떻게 벌은 돈을 증여할까?’를 화두에 뒀다면, 지금은 시스템이 오히려 그런 마음을 가로 막고 있다. 일례로 유니클로 주주들은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보니, 사회 환원이나 공동체를 위한 증여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최대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만 해도 그렇다. 옛날엔 국내에서 300만대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기도 했었다. 낙수효과처럼 300만대를 만들어야 지역경제가 유지된다. 그런데 그걸 가장 싫어했던 사람들은 주주들로, 그들은 해외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는 게 훨씬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여 공장을 해외로 옮기게 했다. 그러니 당연히 고용률은 줄어 들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이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기업을 말한다. 어디까지나 주주와 같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곳이다. 그러니 글로벌 기업이 활개를 치는 세상에선 국민국가가 가속도로 해체될 수밖에 없고 이건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국가를 넘어선 느슨한 연합체로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국민국가는 완전히 해체될 것이다. 세계의 분쟁이나 난민 사태를 보면 국가의 흡수력이 매우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 같은 경우 인위적으로 유럽이 국경을 나눠 국경선이 직선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국민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내전을 막아 국민국가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생각으로, 아프리카의 국경이 붕괴되면 아프리카는 자연스레 부족국가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말리의 내전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건 국경을 없애면 된다. 이건 말리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부족으로 나눠져 있지만 같은 통화를 쓴다던지, 경제적인 통합을 이룬다던지 하는 느슨한 공동체는 가능하다. 연방제 비슷하게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다. 옛날식으로 얘기하면 말리제국이라 할 수 있는 거다. 국민국가가 해체되는 과정 속에 제국화되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국화가 되는 가장 적절한 예는 러시아와 중국을 들 수 있다. 소련은 국제 공산주의였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전 인류가 동일한 가치관과 동일한 흐름을 지녀야 한다는 거였다. 그때 소련만이 역사의 흐름을 홀로 알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편에 소속되면 모두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의 모택동도 마찬가지였다. 옛날은 세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젠 러시아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러시아는 청나라 말기 때와 비슷한 규모의 땅을 가지고 있다.

시리아와 같은 곳은 국경이 사라지면 오스만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1924년에 카리프(마호메트의 후손)가 죽었다. 그러니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카리프가 없어진 지 90년 밖에 되지 않았고, 이슬람의 역사로 보면 매우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터키 대통령에게 카리프의 역할을 맡지 않겠습니까?”라고 제안을 했었는데, “하겠습니다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려줬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와 시리아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두 나라가 하나의 공동체였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의 국민국가적인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경이 붙어 있지 않은 공동체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과 상관없이 금세기 안에 그곳은 오스만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미국도 미국 제국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말이 나오며, 전 세계의 경찰국가 노릇을 그만둔다는 말도 나오고 있고, 캘리포니아를 독립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예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국민국가의 해체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건 20년 전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 국가의 해체를 막으려는 힘겨루기가 나라 별로 진행되고 있다. 멕시코가 국경선을 만들려는 것이라든지, 일본에서 센카쿠 열도나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멕시코가 국경선을 만들어야만 미국인이라는 동질성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건 반대로 생각해보면 미국인이나 멕시코인이나 마음속의 국경은 사라진지 오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도는 그냥 바위섬일 뿐인데도 일본은 분쟁지역으로 만들려고 한다. 무리하게 선을 만들려는 이유는 그만큼 선 자체가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도쿄 하코네에 갔었는데 그곳 관광객의 60%가 중국인이었다. 어찌 보면 그 도시는 중국인 때문에 살아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의 사장은 남경대학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이 퍼뜨린 헛소문에 불과할 뿐이다고 말할 정도로 극우성향을 지녔는데, 미국기자의 취재로 전 세계에 그 내용이 알려졌다. 그러자 중국인들 사이에선 그곳에선 자지 않겠다는 운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에 격분한 일본인들 중에 몇몇은 중국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소리치거나, 센카쿠 열도에서 미국과 연합으로 전쟁을 하여 중국을 제압해야 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한쪽에선 전쟁을 걱정하지만 다른 쪽에선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이데올로기적 망상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국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한국에서 건너와 일본에 와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도 국경이 무너져서 가능한 거다. 혐한, 혐중이란 국경선이 사라지는 과정 속에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다. 위안부 문제나, 혐한 문제 같은 것은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벽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을 다시 국민국가로 만들려 하는 최후의 저항이며 단말마의 비명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민자들로 만들어진 나라인데, 지금은 이민자를 배제하고 있으니 웃기는 상황이다. 배척주의, 배제주의는 국민국가 형성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 그런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국가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함에도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어떠한 비전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 와중에도 소련, 중국, 미국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한국이나 일본, 대만 정도만 남게 됐다. 이 나라들은 한자문화권이고 유교문화권이란 공통점으로 문화적인 영향을 서로 주고받고 있다. 강상중 교수와도 이야기를 나눴듯이 이 나라들끼리는 느슨한 연대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직후, 한국은 조선 말기에 국가로서의 통합력이 가장 약하던 시기였다. 그땐 일본과 한국을 통합해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지만 통합력이 높아지면 그런 말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됐고 그런 만큼이나 동아시아 통합론이란 말은 의미 있는 말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100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역사적인 관점이 많이 바뀐 것이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 멕시코에 벽을 세우는 문제를 보며 그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선 새로운 생각이 필요한 시기다.

 

 

 

 

 

 

2. 질의응답

 

배운다는 건 신체를 민감하게 하는 것이다

 

Q

일본의 공민관이란 시설과 개풍관의 차이점은 무언가?

 

A

개풍관은 무도시설이기 이전에 종교시설이다. 개풍관을 만들기 전엔 시립체육관이나 공민관을 빌려 합기도를 한 적이 있는데, 그곳은 전혀 종교적인 공간이 아니어서 실망했었다.

무도를 한다는 것은 공간에서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닌,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종교성은 무도에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도란 움직이는 것 외엔 종교성을 포함해야 한다. 어찌 보면 무도장은 절과 같은 곳이다. 청정지역이지만, 영적 기운이 풍기는 곳이다. 일종의 풍수지리에 따라 만들어진 곳이라 할까. 벽은 나무와 흙으로 이루어지는데, 미야마라는 지방에서 나오는 자연물(흙과 나무)로만 만들어졌다. 플라스틱과 같은 인위물은 배제하고 자연물로만 만들려 한 것이다. 무도는 청결해야 감수성에 민감해져 미미한 소리나 촉감에도 반응할 수 있다. 감수성을 높이려면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이 깨끗하고 자극적이지 않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민감도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은 그런 상황 속에서 가능하다. 도장은 넓지만, 작은 목소리로 얘기해도 잘 들리는 건 그런 이치 때문이다.

 

 

 

완벽한 계획이 아닌, 지금 당장의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라

 

Q

일본 얘기를 들었지만, 한국 상황과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가슴속에 답답하고 응어리졌던 게 확 풀어지는 시원함을 맛봤다.

나 하나라도 휴지를 줍는 어른이 되자라고 말한 것은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체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오히려 함께 하자고 말하지만 실상 개인을 강조하고 있다. 언론과 교육과 종교 그 모든 게 나부터 변화하는 계기를 틀어막아 버렸는데, 이런 분위기를 바꿀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사회변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청사진이 있어야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고베 한신 대지진이 19951월에 일어났는데, 그때 언론은 신이 주사위를 흔들었고고 말할 정도였고, 고베여학원대학도 많이 파손됐다. 온 천지가 산산조각 난 모습을 보며 모두 망연자실해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멘붕 상태에 빠졌지만, ‘그저 내 앞에 떨어진 콘크리트 잔해만이라도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혼자서 하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어느 순간엔 10명이 모인 것이다. 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런데 그때 동료 중에 한 명이 체계를 갖춰야지. 그렇게 비합리적으로 일하면 더 시간만 낭비된다고 나무라듯 말했다. 계획을 잘 짜서 해야 짧은 시간에 끝날 텐데, 우리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하다간 더 일이 커진다는 비난이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선 회의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감적으로 회의를 하고, 계획을 세워선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저 손이 닿는 대로 시작하면 되는 거다. 최종적으로 보면 그것이야말로 더 효율적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를 이끌었던 구조대장은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과 물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구조에 기본적인 지식조차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이 늘 해왔던 연구처럼 미약하지만 시그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그와 같이 일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재해가 일어났을 땐 다른 사람이 아닌 시그널을 민감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을 따라야 하는 거다.

지금과 같은 혼란기에 이런 식의 좋은 방향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실상 그렇게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에서 비체계적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야말로 하나의 체계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당시엔 오합지졸처럼 보이더라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바로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거창하게 6년 장기계획, 장기적 목표를 외치는 사람을 따를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지 않을래라는 사람을 따라야 한다. 교육부 관료들이 말하는 ‘6년 계획과 같은 것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혁신이란 현재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계획을 세울 수 없지만, 사회는 끊임없에 계획을 세우라고만 말한다. 당연히 그건 어불성설이다.

 

 

 

Q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의 끝엔 복지사회나 공동체 사회가 시작된다. 이런 시대의 교육을 전환교육이라 하는데,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A

진로지도를 할 때, ‘이런 직업을 가지면, 출세할 거야라고 말하는 게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다. 해마다 90만이 줄고 있다는 식으로 엄청나게 인구가 줄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존재하는 직업 중 30%는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학교 교육은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인 상황이다. 도시로만 사람이 몰리며 농촌은 황폐화되고 있다. 그건 정말 잘못된 것이고, 경제성장을 근거로 할 때만 의미 있는 것이다. 일본엔 도시로 가지 않고 시골로 이주하는 사례들이 점차 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은 효율이라 하지만, 오히려 그건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그걸 직감적으로 알기에 시골로 가는 것이다.

어떤 삶의 방식이 옳은 것인지, 그건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도시의 생활을 그만 두고 시골로 옮기는 사람들의 감수성이 훨씬 높다라는 말은 할 수 있겠다. 직감적으로 자기를 부르는 쪽으로 가는 거라 할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을 부르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저에게 조언을 구할 때 저는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곳으로 가라고 말한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때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손을 들면 된다.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로 가면 된다.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결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리로 가면 된다.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다.

 

 

 

 

인용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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