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움이 기동하는 장소의 특징
고베여학원대학에 지금은 유서 깊은 오래된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내가 30년 전에 처음 학교에 왔을 땐 건물이 오래 됐으니 부수고 새로 만들자, 여대이니 남녀공학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 개풍관에 찾아가 듣는 우치다쌤의 이야기. 그곳은 언제나 뜨겁다.
교육에선 미세한 감각들을 깨우는 게 중요하다
그땐 나의 연구실이 도서관 가장 자리 부근에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져서 좋았으며, 각 단과대학의 강의실에 들어가면 크게 소리를 내지 않아도 목소리가 저절로 공명되었기에 강의하기에 좋았다. 강의실은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로 만들어져 작은 소리로 속삭여도 뒤에까지 잘 전달됐다.
이처럼 학교란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앞에서 편하게 말하면 뒤까지 잘 전달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내 목소리가 잘 들릴까?’라는 부분을 염려한 적은 없다. 강의실에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잘 전달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망설이고 있다’, ‘선생님이 뭔가 생각에 잠겨 있다’와 같은 비언어적인 부분까지도 잘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런 환경 속에서만 교육의 가능성이 태동하기 때문이다.
음향이 별로 좋지 않은 곳에선 데시벨이 100또는 0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누군가 앞에서 말을 하면 큰 소리로 들렸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땐 정적이 감돌게 된다. 그러나 음향이 좋은 곳에선 아주 농밀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한숨을 쉰다거나, 뭔가 언어 외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거나 하더라도 충분히 학생의 입장에서 낚아챌 수 있으니 말이다. 예전엔 미처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지만, 고베여학원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교육에서 소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고베여학원대학은 유서 깊은 건물들로 분위기가 남다를 뿐더러, 배움을 위해서도 훨씬 좋은 곳이다.
윌리엄 보리스가 만든 건물은 교육적이다
고베여학원대학교는 윌리엄 보리스라는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가 만든 건물 외에 10년 전에 최신식 기법으로 만들어진 건물들도 있다.
새 건물을 지으려 할 때 나는 검토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때 설계사무소 담당자에게 “소리는 어떻게 들립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그 사람은 “방음이 아주 잘 됩니다”라고 대답해주더라. 그 대답이야말로 건축가가 소리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대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이 안에서 소리가 잘 울려 퍼지는지 궁금할 뿐입니다”라고 내용을 바꿔서 물었더니,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해주더라. 그건 그만큼 건물을 짓는 사람들이 ‘교육에서 소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현대의 건축이란 방음만 중요할 뿐 울림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줬다.
살아있는 감각을 지니고 태어나 자라는 인간에게 귀중한 것은 벽의 감촉이라던지, 문의 손잡이를 돌렸을 때 느낌이라던지 하는 것들이다. 보리스가 설계한 건물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둡다’라는 것이다. 평상시엔 어둡던 건물이 해가 떠서 자연광이 들어오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진다.
이처럼 보리스의 건축철학은 ‘이게 뭐지?’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건물은 구조가 같아 1층에서 화장실이 있는 자리에 2층도 3층도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1층만 둘러본 것만으로도 전체 구조를 짐작하며 더 이상 둘러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보리스는 모든 층을 다르게 설계했다. ‘1층은 이런 구조니까, 다른 층도 마찬가지일 거야’라는 관념을 무색하게 만들어,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르게 만든 것이다.
분수대를 중심으로 양 옆에 건물이 있는데 두 건물의 높이는 같지만, 한 건물은 2층 건물이고, 다른 건물은 3층으로 지어져 있다. 문학부 건물에서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이과부 건물도 같을 거라 짐작하여 한 번도 가보지 않고 그대로 졸업한다. 그런 식의 짐작만 해보고 관념적으로 생각해선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자기 발로 직접 걸어가서 문손잡이를 돌려보고, 구석구석 살펴보며 숨겨진 장소들을 찾아야만 한다. 보리스는 ‘건물이 인간을 만든다’는 철학으로 건물을 지었으며, 그건 배움의 비유로도 매우 적절하다.
▲ 윌리엄 보리스는 그냥 단순한 설계사가 아니었다. 그의 설계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베여학원대학의 건물, 건물로 구현한 배움의 세계
뭔가를 배울 때 가장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걸 아니까, 다른 것도 똑같을 거야’라는 지레짐작이다. 내가 아는 단편적인 지식들을 아무리 양적으로 가지치기하고 늘려봤자, 다른 것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그건 도약이나 비약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에 가든 학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지도는 있지만, 구석구석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는 없다. 호기심이 있는 사람만이 직접 걸어가며 알지 못하던 것들을 알아간다. ‘저거 한 번 열어볼까?’, ‘계단을 한 번 올라가 볼까?’라고 생각한 사람만이 새로운 광경을 볼 수 있고, 알지 못하던 것을 알 수 있다.
호기심에 이끌려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 문손잡이를 돌리는 아이들, 지하로 내려가 보는 아이들은 두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다. 첫째는 다른 쪽으로 통하는 문과 창문을 만나게 되며 새로운 창문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성의 활동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활성화된다. 뒤집어 본다던지, 옆으로 본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호기심을 지닌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둘째는 그런 식의 새로운 시각을 통해 본 사람에겐 선물이 온다는 점이다. 이 건물은 보리스가 명확히 고민하고 그걸 건물의 형체로 구현해낸 것이다. 고민한 부분 중 하나는 ‘잠그지 마라’는 것이다. 그건 호기심을 지닌 사람을 막아서서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에 반해 새로 만든 건물들은 모두 자동 잠금 시스템에 의해 닫혀 있다. 보리스가 만든 건물은 원칙적으로 모두 열려 있다. 모두가 떠난 시간엔 당연히 잠그지만, 적어도 학생이 있는 시간엔 잠그지 말자는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물론 옥상은 학생이 있는 시간에도 잠그지만 말이다. 학교라는 곳은 다른 곳들과 달리 이런 원칙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땅이 넓지 못하니, 한 건물 안에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있는 경우가 많다. 와세다 대학 같은 경우처럼 어떤 학교는 모든 층이 똑같은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그것을 학교 건물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1층을 봤는데, 그걸 통해 10층까지 모두 알 수 있다면 거기에선 호기심이나 배움이 일어날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배움이란 ‘하나를 보면 10개를 알 수 있도록 설계하자’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배움과는 멀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건물엔 수수께끼를 담겨있는 것과 함께 애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호기심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창문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본 사람은 ‘이 광경을 본 사람은 내가 처음이다’라는 자부심을 지니게 된다. 그때 ‘나는 보리스에게 선물을 받고 있구나. 이렇게 호기심을 지니면 선물을 받는구나’라는 느낌을 받는다. 일반적으론 오래된 건축물을 보더라도 건축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지만, 이 건물에선 건축가에게 그런 배려심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80세 할머니가 학교에 기부금을 내겠다는 상황도 생겨나는 거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학교는 담아야 한다
이러하기 때문에 ‘교육은 시간이 축적되어 성립된다’고 하는 거다. 교육의 시간이란 단순히 지금 나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을 넘어서, 예전에 이 학교에서 가르쳤던 사람, 미래에 가르칠 사람까지 모두 포괄해서 말해야 한다. 교육이란 100년이란 시간의 간극을 넘어서 예전 건축가가 현재의 학생들에게 주는 선물이라 봤듯이, 길고 긴 시간을 통틀어서 봐야만 한다.
21년 동안 대학에 근무하며 느낀 점은 그처럼 교육은 교사 개인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교사단이란 집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확신이었다. ‘저 학교에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교육은 시작된다. 그건 예전에 내게 메일을 보내온 학생의 예를 통해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학생은 직장을 옮길까 말까하는 고민을 안고서 학교에 왔다. 그 학생이 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3층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90%의 학생들은 신관 도서관에 가고, 10%의 학생만이 구관 도서관에 간다. 구관 도서관은 가려진 비밀의 장소들이 많기에, 그걸 발견한 사람은 남에게 말하지 않고 그 장소를 자기만의 비밀장소로 남겨둔다. 그 학생도 학창시절에 그 장소를 우연히 발견했고,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곳에 와서 생각에 잠기곤 했던 것이다. 그곳에 가면 20살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고, 지금의 내가 아닌 그 당시의 나에게 질문을 하면 더 현명한 결정을 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라면 더 투명했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그 친구의 메일을 보고 매우 기뻤다. 그건 자신의 원점을 모교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교사든 학교든 학생에게 있어 모항이 되어야 한다. 그건 ‘졸업 후 교육’이란 말로 부르는데, 그건 ‘평생교육’이란 의미와는 완벽히 다르다. 평생교육은 또 다른 무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지만, 졸업 후 교육은 졸업한 학생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니 말이다. 그 이미지는 등대를 생각하면 쉽다. ‘나의 등을 비추고 있구나’라는 안정감이 있는 배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내가 얼마만큼 왔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잴 수 있다.
졸업생들이 개풍관에도 자주 오는데, 옛날 생각이 나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오는 것이라기보다 자신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20살 때보다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아는 방법은 그 당시 함께 했던 동기를 만나거나, 그때 함께 했던 교사와 만나는 것이다. 교사란 어찌 보면 계속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학교를 졸업해서 교사를 만나러 갔는데 주식을 팔고 있다던지, 래퍼가 되어 있다던지 하는 건 별로 좋지 못하다. 다른 직업군들은 글로벌화에 따라 자꾸 바뀌는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지만, 교사는 오히려 그 자리에 예전 모습 그대로 있는 게 좋다.
이처럼 학생들은 ‘개축하지 마라’, ‘가능한 한 커리큘럼을 바꾸지 마라’고 학교에 요구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 학교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철학으로 운영되는 학교는 오히려 졸업생들을 버리는 학교라 할 수 있다. 그건 한 마디로 ‘당신들이 예전에 이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이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선언하는 꼴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꿔야만 한다’, ‘변해야만 한다’는 발상을 멈춰야 한다. 물론 일정 부분은 바꿀 수도 있고, 그래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모든 걸 다 바꿔야만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원래 학교란 있는 그대로 성립되는 체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꾸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가치를 알려주는 곳도 필요한데, 바로 학교란 그런 곳이다. 반사회적일 수는 있지만, 그런 반대의 흐름을 통해 젊은이들은 배움의 계기를 충분히 찾아가게 될 것이다.
▲ 윌리엄 보리스에게 배운 배움터에 대한 통찰들을 그대로 녹여낸 장소가 바로 개풍관이다.
배움의 장소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조건
배움은 기본적으로 자학자습이다. 자기에게 배움의 싹이 터오를 때 비로소 배운다. 언제 어떤 계기로 아이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주는 게 학교의 역할이다. 교사의 여러 경험을 통해 ‘이런 식으로 하면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를 알게 되고 그래서 교사는 정형화되지 않은 여러 메시지를 마구 던진다. 물론 그때 막 던진다는 게 중요할 뿐, 바라거나 의도하거나 하는 건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인해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눈이 번쩍 뜨이며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럴지라도 교사가 별다른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아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도록, 배움을 지원하고 그 활동을 응원해주면 된다.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배운다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를 몸소 보여주면 된다. 거기에 덧붙여 교사가 되는 조건 중 하나는 ‘나의 위에 선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된다. 그건 달리 말하면 학교 교육을 믿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학교교육은 망했다고 말할 때, 그럼에도 난 학교교육을 믿는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개풍관을 만들 때도 보리스의 건축철학을 이어 받아 ‘도장이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이곳 나무와 흙은 교토의 미야마라는 곳에서 가져왔다. 한 장소에서 가져온 흙과 나무가 궁합이 제일 잘 맞는다. 가능한 건물 재료 중에 인공첨가물을 배제하려 했고, 소리의 울림을 중요시했다. 그래선지 능악의 무대로 쓰더라도, 현악2중주의 무대로 쓰더라도 콘서트장 부럽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소리의 울림을 신경 쓴 만큼이나 청결하면서 감촉이 좋은 곳이 되도록 신경 썼다. 몸의 감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청결이 중요하다. 외부가 더럽거나 유해한 것이 많을 경우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아도 방어하기 위해 몸을 움츠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개풍관의 환경은 청결하니, 아이들도 몸의 감촉을 민감히 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거다. 이처럼 도장이나 학교나 할 것 없이 몸을 개방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환경을 만들어놔야 한다. 저자극의 환경이 배움에선 매우 중요하다.
▲ 개풍관은 무도장이지만 순식간에 콘서트장이 되기도 한다. 이 날은 한국 학생의 하모니카 공연이 있었다.
2. 질의응답
한국에 뒤늦게 마르크스 열풍이 부는 이유?
Q
일본에서 마르크스를 읽는 것이 유행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마르크스의 번역본이 유행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이 내용은 이미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의 한국판 서문에 쓴 적이 있다. 동아시아 중에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축적된 나라는 일본 밖에 없다. 1930~40년까지 마르크스 연구는 대단히 위축되었지만, 그 전엔 대단한 성황을 이뤘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의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는 최상급 수준이었다. 150년 역사로 봤을 때 일본의 경우 마르크스 연구가 탄압된 시기는 겨우 15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한국에선 마르크스를 접할 기회가 없었고, 한국전쟁 이후엔 북한이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이유로 더욱 극렬히 탄압되었다. 반공법의 역사는 마르크스를 탄압하고 적대시한 역사라 해야 맞을 것이다.
19~20세기까지 마르크스가 가장 활발히 연구됐고, 반마르크스주의도 기본은 마르크스 연구로부터 시작됐다. 인문, 사회, 역사를 통틀어 마르크스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다. 그러다 보니 마르크스의 저작이나, 논쟁, 그리고 여러 단편들까지 많은 저작들이 일본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전혀 그런 상황을 누리지 못하다가 비로소 1980년대에 이르러 연구가 시작됐다. 겨우 30년 정도의 연구 성과가 쌓이게 된 건 그 이유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알 수 있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와 같은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에 열광하며 연구하던 시기는 끝났다. 그러나 한국은 축적된 연구 성과도 없이 이제야 마르크스를 접하게 되었기에, 한국에선 열광적인 반항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좀 아쉬운 부분이라면 1945년에 마르크스가 한국에서 한창 다뤄지던 시기에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어떤 부분이 과한지 면밀히 연구됐다면 훨씬 나은 사회적 비전을 지닐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마르크스에 대해 더욱 세밀히 연구했던 중국의 서적들이 왜 한국엔 나오지 않았던 걸까? 그건 아마도 중국에선 마르크스에 대한 하나의 내용과 주제를 정해주며 연구를 하다 보니, 오히려 교조화 되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일본의 연구서들이 한국에 소개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Q
‘고베여학원대학 건물의 예화를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여 새로운 문을 열게 됐을 때 배움이 기동된다’는 말이 많은 걸 느끼게 했다. 그러나 교육 공간의 이야기가 정리되려면 한국 사회문제까지 고루 고려되어야 할 정도다. 더욱이 한국은 호기심을 키우도록 지지해주는 사회가 아니라, 억제하도록 감추도록 만드는 사회다. 과연 한국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그 가르침을 적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A
지금은 오히려 일본이 더 억압적인 상황이지 않나 싶다. 대안형 고등학교인 현천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한국이 훨씬 자유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은 교육감을 직선제로 뽑다 보니, 진보적인 교육관을 지닌 학자들이 많이 당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한국의 교육을 다룰 땐, 오로지 ‘영어 과목만 강조하는 나라’, ‘7시에 등교하여 10시에 하교하는 나라’ 등 안 좋은 내용만 보도하고 있다. 물론 그런 기사의 취지는 ‘혐한’에 있다. 그러나 실상 한국은 오히려 일본보다 더 자유로우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교육적 실험들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한국 교육의 희망이 있으며, 한국 사회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 17년 1차 모임에 참여했던 분들. 2년 전 방문 때나 올해 방문 때나 함께 하진 못했지만, 녹취파일을 듣는 것만으로 열기가 느껴진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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