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연횡책으로 최후의 승자가 된 장의와 초나라 애국시인 굴원
① 장의(張儀)와 초반의 비굴함
1. 장의는 초반에 등용되지 않았고 초(楚) 재상의 잔치에 갔다가 도둑으로 몰려 매질당하는 수모와 절친 소진(蘇秦)에게 문전박대 당하는 수모 겪음.
2. 마침내 진혜왕(秦惠王)에게 등용됨. 위와 맹약을 맺고 초회왕(楚懷王)을 만나 제(齊)와 맹약을 끊도록 하자, 초회왕이 제(齊)에 모욕스런 편지를 보내게 됨. 그러자 진(秦)-제(齊) 친교 맺음.
3. 화난 초회왕이 진을 공격했지만 크게 패했고, 오히려 진은 빼앗은 땅을 돌려주며 화친을 요구함.
② 최후의 승자가 된 장의
1. 이에 초회왕은 땅보단 장의가 화근임을 알고 장의을 보내달라 요구했지만, 조정 내 친진파(親秦派)의 활약으로 풀려났고 화친까지 맺도록 간언함.
2. 진(秦)-초(楚) 화친은 굴원(屈原)만이 반대했지만 맺어졌고, 그 외 나라와도 연횡의 맹약을 맺음.
3. 장의가 진에 와서 보고하려 하자 혜왕은 죽고 무왕이 즉위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6국은 다시 합종하였다가 결국 진이 통일하게 됨.
③ 초나라의 정세
1. 장의가 위(魏)에서 죽은 후에도 진(秦)의 정책은 그대로 유지됨.
2. 제(齊)-초(楚)는 동맹국이었으나, 진무왕이 죽고 소왕이 즉위하여 뇌물로 유혹하자 초회왕(楚懷王)은 친진(親秦) 정책을 폄.
3. 제(齊)-위(魏) 연합군이 초(楚)를 치자 진(秦)에 구원을 요청하였고, 진(秦)이 초(楚)의 태자를 인질로 지원군을 보내 전쟁이 종결됨.
4. 초(楚)의 태자가 진(秦)의 대신을 죽이고 귀국하여 진(秦)과의 관계는 끊어졌고 결국 진(秦)ㆍ제(齊)ㆍ한(韓)ㆍ위(魏)의 연합공격에 대패함.
5. 진(秦)이 무관(武關)에서 회담하길 요청하자 굴원(屈原)이 반대했음에도 참석하여 초회왕은 인질로 잡혔고, 대신들은 제(齊)에 잡혀 있던 태자의 귀국을 도와 즉위시킴. 이후 초의 국력은 나날이 약해짐.
④ 애국시인 굴원(屈原)
1. 초회왕의 신임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상관대부 근상(靳尙)의 모함으로 왕과 멀어지게 됨.
2. 제(齊)와 관계가 끊어지고 진(秦)의 침입까지 받게 되자 다시 등용되나, 경양왕 즉위 후 상관대부의 참소로 추방당하게 됨.
3. 양자강과 동정호 일대를 전전하며 떠돌다가 진(秦)에 침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62세에 멱라수에서 자살함.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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