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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내소사와 관음봉에 가다 - 4. 알면 쓸데없는 내소사 지식과 등산론 본문

연재/산에 오르다

내소사와 관음봉에 가다 - 4. 알면 쓸데없는 내소사 지식과 등산론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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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알면 쓸데없는 내소사 지식과 등산론

 

 

정확히 두 시간 만에 내소사 정류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현충일이다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절 입구를 거닐고 있더라.

 

 

 

사찰로 들어가는 길은 행복이어라

 

교수님은 원래 내소사를 둘러보지 않고 바로 관음봉을 오를 생각이었나 보더라. 하지만 막상 절을 보는 순간 맘이 바뀌셨던지,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절은 한 번 둘러보고 올라가도록 합시다.”라고 말씀하셨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는 어느 절이나 좋았던 것 같다. 순천의 강천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지금 이곳 내소사의 입구도 높게 뻗은 나무 사이로 느리게 걷고 있노라면 굳이 다른 게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의 이 여유, 그리고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적막함이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가면서, 무에 그리 아등바등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늘 무언가에 쫓겼고 뒤처질 새라 한 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마음 졸이고 긴장해 있었으며, 온갖 불안증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나는 목조건물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고, 불교에 대한 통찰도 없으며, 절의 규모와 역사에 대한 지식도 없으니, 막상 절에 들어가 건물을 보고 불상을 보는 것보다 이렇게 절로 들어갈 때의 이런 분위기가 훨씬 맘에 든다. 마치 세속과 성속이 이 길을 걸어가며 점차 벗겨지고 한시에나 나오는 말처럼 속세의 티끌은 사라지고 온전한 불성을 지닌 나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아가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  절로 들어가는 길은 최고의 길이다. 이 길을 걸을 때면 행복하다. 

 

 

 

대웅전 천정엔 문고리가 있다

 

가는 길에 사찰을 삥 두르고 있는 시내를 조계曹溪라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조계종을 통해 그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세속과 성속을 완벽히 차단하는 시내의 이름이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내소사는 백제 때 건립되었고 가장 번성했을 땐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지만 그 후 대소래사가 불타고 임란 때 소소래사마저 불타 자취가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절은 인조 때 재창건된 것이란다. 규모가 그렇게 작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관음봉을 오르면 내소사의 사찰 규모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대웅전의 수수한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다. 화려하게 단청을 칠하지 않은 나무 그대로의 질감과 색감이 느껴진다. 조용히 대웅전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엔 내소사영산회괘불탱이란 그림이 걸려있는데 보물임에도 나에겐 별다른 감흥을 주진 않는다. 원래 아는 게 없으면 보이는 것도 없는 법이다.

그에 반해 나의 이목을 잡아 끈 것은 대웅전 천정에 문고리 같은 게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걸 보고 있으니 대웅전에 있던 보살님이 저 문고리를 잡으면 극락으로 가는 문이 열려요라고 말씀해주신다. 기독교에서도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불교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기독교 경전 중에 도마복음에는 천국이 하늘에 있을 것 같으면 새가 먼저 갈 것이요, 물속에 있다면 물고기가 먼저 갈 것인데 천국은 너의 마음속에 있느니라. -도마복음42라고 이와 같은 상식을 깨는 내용이 당당히 쓰여 있다. 천국이나 극락이 어느 곳에 있느냐의 공간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현세에서 구현하고 내세를 준비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  천정에 달린 문고리가 보인다.  

 

 

종교는 서로 무척 다른 듯하지만, 그래서 서로 이단입네 언성을 높여대지만, 알고 보면 이렇게 서로 통하는 부분들도 많고 함께 공부하다보면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들이 충분히 있다. 그러니 내 종교가 절대 진리라고 생각되거든, 좀 더 타종교에 대해 관용적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진리가 결국 하나라면 어느 것을 통해서든 그 하나의 진리에 닿게 될 테니 말이다.

내소사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 둘러봤다. 솔직히 말해서 아는 게 없으니, 제대로 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교수님과 함께 온 덕에 조계曹溪가 속세와 격절되었다는 의미로 사찰 주위에 흐르는 시내를 그렇게 부른다는 것, ‘지장전地藏殿엔 선조의 명부를 모셔놓고 일정한 때에 합동 제례를 지내며, 그걸 지키는 시왕(10명의 왕)과 나한(2)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찰에 걸려있는 나무 모양의 물고기를 목어木魚(건빵을 건빵이라 부르듯, 나무 물고기라 그냥 목어라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람)’라고 부른다는 걸 배웠다. 여기서 더 배워봐야 이미 한계치를 초과해서 금세 사라질 것이기에, 이 정도가 딱 적절하다.

 

 

▲  토속신앙과 불교의 융합을 나타내는 '칠성각'이 보인다.  

 

 

 

이따금 가슴이 답답할 때면 오르다

 

우린 내소사 입구에서 갓길로 빠지는 탐방로로 산을 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등산을 하게 될 거란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회 성격의 모임으로 한시를 함께 읽어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좀 학술적인 분위기의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산을 탄다고 하니, 설레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2012년부터 13년까지 서울 근처의 산들을 많이도 탔다. 폐쇄된 교실이란 공간에서보다 자연의 너른 공간에서, 의도적인 교육활동보다 비의도적인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 아이들은 되게 힘들어했지만, 그럼에도 잘 따라와 줘서 북한산을 등산 경험이 없는 아이들과 함께 오른 것은 물론, 심지어는 지리산까지 67일의 일정으로 종주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용이 분명했지만 그 당시 우리에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었기에 가능했다. 그때의 기록이 다큐멘터리라는 영상과 등산기로 남아 있는 건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

 

 

▲  2013년 11월에 우린 종주를 했다. 그래도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후로는 학교에서 팀별 외부활동이 사라지면서 등산의 횟수는 자연스레 감소되었다. 그래도 단재학교의 좋은 점은 2주마다 트래킹이란 커리큘럼으로 외부활동을 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마지막 등산을 한 걸 생각해보면 20166월에 갔던 하남에 있는 검단산이었다. 트래킹은 야외에서 쉬다 오는 성격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냥 밑에서 편안하게 있다가 가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해에 새롭게 들어온 성민이는 달랐다. 원래 액티브하고 움직이길 좋아하며 운동감각도 좋은 친구라 초봄의 옷차림으로 와서 무지 더울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히려 내가 한참이나 뒤처져 성민이가 조금 오르다가 기다리고, 조금 오르다가 기다리고를 반복해야만 했다. 성민이 덕에 정말 오랜만에 등산을 했고 결국 정상에 올랐다. 늘 자전거 타며 곁에서만 바라보던 팔당댐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느낌이 색다르더라.

그 후로 또 다시 2년이 흘러버렸다. ‘흘러버렸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시간이 그처럼 눈 깜빡할 새에 후다닥 흘러 정신을 차렸을 땐 벌써 2년이나 흐른 거야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전주에 오고 나서 모악산에 늘 가고 싶다는 꿈만 꾸고 있었는데(실제로 330일엔 모악산에 가려 나왔다가 버스편이 만만치가 않아 우연히 덕진공원을 가기도 했다), 이번에 이런 기회로 등산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등산을 이렇게 남다르게 생각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예전에 임용공부를 할 때 답답할 때면 어디다 그걸 풀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땐 어머니 차를 운전하고 올 때면 습관처럼 모악산에 찾아가 정상을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으니 말이다. 그땐 그게 발분하는 마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때 그렇게라도 가슴 속에 쌓인 것들을 풀어내지 못했으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난처럼 예전에 임용공부할 때 나를 살린 건 등산과 자전거 타기라고 외치는 것이다.

 

 

올해 1월에 제주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 모악산과  전주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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