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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내소사와 관음봉에 가다 - 6. 사찰시의 특징과 내소사란 시의 독특함에 빠져 본문

연재/산에 오르다

내소사와 관음봉에 가다 - 6. 사찰시의 특징과 내소사란 시의 독특함에 빠져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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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찰시의 특징과 내소사란 시의 독특함에 빠져

 

 

어느 정도 내려오니 계곡이 보였다. 물이 그렇게 많진 않아도 발을 충분히 담그고 있을 만했고,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발을 계속 담그고 있으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함께 앉을 정도의 평평하고 큰 바위는 없어서 어떻게든 각자 앉았고 주전부리들을 세팅하기 시작했으며, 팩으로 사온 소주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계곡야유회를 준비하는 손길들.  

 

 

 

내소산 계곡에서 시회가 열리다

 

그리고 더욱 재밌었던 점은 교수님이 한시를 전공한 사람답게 여기에 왔으니, 내소사에 관련된 시는 한 편 봐야지라고 했다는 점이다. 지식인들의 이런 식의 고상한 놀이가 때론 싫게도 느껴졌다. 현실의 문제는 더욱 꼬여만 가는데 거기엔 지식인들의 무관심과 이와 같은 지적 유희가 한몫을 하는 면도 분명히 있기에, 마치 책임회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런 식의 유희는 해볼 수도 있고, 아니 해볼 만한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지식인들이라고 누가 이런 식으로 시를 공부하며 품위 있게 논단 말인가. 누군가는 일반인들이 술을 마시고 노는 것보다 훨씬 더 진탕하게 부어라마셔라 하며, 거기에 룸까지 빌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럽게 놀기도 하니, 그것에 비하면 차라리 이런 식의 풍류가 천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시회를 위해 스마트폰으로 한시를 찾아서 보고 있는 교수님과 아이들.

 

 

교수님은 그렇지 않아도 어제 미리 시를 뽑아 놓으려 했는데, 어제 수업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하질 못했어요. 그래서 아까 잠깐 내소사 관련시들을 살펴보니, 다른 시는 고만고만한데 딱 이 시가 좋겠더라고, 이 시는 충분히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눠볼 만한 시이니 이걸 보도록 합시다.”라고 말씀하시며, 단릉 이윤영李胤永(1714~1759)의의 내소사來蘓寺라는 시를 고전번역원DB’에서 찾아보도록 했다.

 

名區隨處我行催

명승지 가는 곳마다 나의 발길을 재촉하고

不害人間老草萊

인간세상에서 초래로 늙음을 나무라지 않네.

翠嶽將頹龍瀑瀉

비취색 언덕이 약간 무너져 내려 용처럼 폭포가 쏟아지고

春雲欲變蜃樓開

봄 구름이 변하여 신기루가 열리려 하는 듯.

壯觀滄海眸雙拭

푸른 바다의 장관에 두 눈을 부비고

悵望靑齊首獨擡

청제(山東), 머리 홀로 들려함을 맥없이 바라보네.

十載塵愁輕似羽

10년의 티끌과 근심이 깃털처럼 가벼우니

可憐前夜月明㙜

애달프다, 어젯밤 명월대에서의 풍취가 丹陵遺稿

 

다시 임용 공부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밖에 안 된데다가 한시는 어렵다는 관념까지 더해져 있어, 위의 시를 보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수님의 해석을 하나하나 들으면 머릿속에 새겨 넣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엔 머릿속에 새겨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2주가 흐르고 보니 해석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위의 해석은 최대한 기억들을 짜 맞추고, 단서들을 조합하여 만든 어설픈 해석이다. 다시 교수님과 위의 시를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그땐 좀 더 완벽한 해석을 써놓아야지. 어쨌든 완벽하진 않아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달될 것이니, 이걸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자.

 

 

한시를 함께 얘기하며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 이런 야유회는 난생 처음인데 정말 좋다.  

 

 

 

사찰시의 과장법

 

교수님은 이 시는 내소사를 그린 다른 시들과는 매우 다르다고 하셨다. 우리야 한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으니, 그게 보일 턱이 없다. 이럴 땐 한시 연구에 몰두하신 교수님의 어깨에 올라타 그 진면목을 감상하면 된다. 이래서 교학상장이 필요한 거다. 함께 보고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성장하게 되니 말이다.

왜 여타 다른 시와 이 시가 차별화되는지 교수님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시더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무릎을 세게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친 나머지 무릎이 저릿할 정도였다. 그만큼 확 와 닿았고, 묘한 한시의 세계로 저절로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사찰에 대한 시를 스터디 시간에 여러 편 봤었다. 그러다 보니 사찰에 대한 시를 볼 때마다 공통점이 보이더라. 사찰을 속세와 격절시키기 위해 엄청난 과장법을 쓰는 것이다. 깎아지른 언덕의 위태위태한 곳에, 구름이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 곳에, 북두칠성을 손으로 잡을 만한 곳에 사찰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영화 전우치에 나오는 전우치의 사당은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깎아지른 언덕 위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데, 마치 사찰시에서 사찰의 위치를 읽고 있노라면 저절로 전우치의 사당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영화 [전우치]의 사당. 마치 사찰시를 읽다 보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김지대金之岱유가사에서 짓다題瑜伽寺라는 시에선 구름 사이로 난 끊어진 돌 비탈 예닐곱 리오,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아득한 봉우리는 천만 겹이로구나.雲間絶磴六七里, 天末遙岑千萬峰.’라며 함련頷聯에서 사찰이 들어선 곳의 특징을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을 거짓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구절로 읽고 있으면 마치 엄청나게 높은 산 속의 콕 처박혀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평소엔 구름이 가득 껴서 사찰로 올라가는 길조차 보일 듯 말듯하고,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천만 겹의 봉우리만이 아스라이 보인다고 표현했다. 와우~ 이런 곳에 있는 유가사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상상만으로도 엄청난 스케일이 느껴지는데 진짜로 본다면 한 눈에 반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느낌의 유가사는 없다.

 

 

내소사에 와서 관음봉에 오르고 이 사찰을 얘기한 시를 함께 느껴본다. 그러니 내소사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내소사를 직접 노래한 시중 가장 유명한 시를 한 번 보도록 하자. 정지상이 지은 변산 소래사에서 짓다題邊山蘇來寺라는 시에선 옛길 적막하여 소나무뿌리 얽혀 있고 하늘은 가까워 북두칠성을 멋대로 만질 수 있을 듯하다古徑寂寞縈松根, 天近斗牛聊可捫.’라고 수련首聯에서 쓰고 있다. 1구야 내소사로 들어가는 길의 운치를 제대로 읊은 것이라 이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2구에선 어찌나 씨게 구라를 쳤던지 놀랄 수밖에 없다. 북두칠성이 만져질 만한 높이라면 적어도 해발 800미터 이상의 산이라야 가능하지 않을까. 지리산 노고단에서 우주가 나에게 임박해 들어오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긴 했는데, 노고단은 해발 1.500M에 있는 곳이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소사는 전혀 높은 곳에 있질 않아 시에서처럼 북두칠성은커녕 구름조차 만질 수가 없다. 이런 경우 타짜라는 영화에선 어이~ 고광렬이~ 너는 첫 판부터 장난질이냐!”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걸 정지상에게 해주고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런 시들과 대조되는 이윤영의 시만의 특징은 무얼까? 그 내용은 다음 후기에 마저 이야기를 하고 이번 여행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특히 정지상의 [소래사]라는 시를 읽으니, 이거 이거 고광렬이에게 하는 말을 내가 하고 싶어진다.

 

 

인용

목차

사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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