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어와 한문의 맛
언어를 공부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언어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언어의 감수성’은 그런 언어가 사용되는 까닭, 그리고 같은 단어일지라도 사용되는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감식안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말만 해도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은 ‘끼니를 잘 챙겨 먹고 살고 있냐?’는 의문임과 동시에,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의 엔딩 장면에 나오듯이 알지 못할 범인을 향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밥이 목구멍으로 먹어가느냐?’라는 핀잔의 의미를 담기도 하는 것이다.
▲ 같은 말일지라도 쓰이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그 단어가 내용까지 담고 있는 경우라면, 더하겠지.
한문의 어휘엔 역사가 담겨 있다
한문을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것 또한 여기에 있다. 단순히 한자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한문이 해석되진 않으니 말이다. 왜 한자를 아는데도 불구하고 한문은 해석되지 않는 것일까? 거기엔 실사와 허사로 이루어진 품사의 문제와 함께 한문문법이란 문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개입함과 동시에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에도 수십 년간 사용된 역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자를 많이 안다고 한문 문장을 해석하겠다고 달려드는 꼴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는 말과 진배없는 것이다.
‘품사’나 ‘문장의 구조’는 그래도 한문 문장을 해석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윤곽이 생기고 감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간혹 헛갈리는 것들이 있을지라도 그건 하나의 방편일 뿐, 한문해석에 있어 절대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이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면서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건 당연히 ‘단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단어는 그냥 한자와 한자를 결합하여 만든 것 같지만,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바로 문인들이 자주 쓰는 단어들엔 그 단어가 만들어진 상황에 대한 이야기인 전고典故가 담겨져 있고 문인들이 그 단어를 주로 쓰며 전하고자 하는 정감 같은 것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문 단어엔 역사가 담겨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쉽게 알기 위해서 아래에 제시된 변계량의 「산에 올라 혜상인의 집에 쓰다(登山題惠上人院)」 시를 보도록 하자.
| 秋林摘實共寒猿 |
이 부분을 그저 한시의 일반적인 해석방법인 2/2/3으로 나누어 해석해보면 ‘가을 숲 / 열매를 따다 / 한기 가득한 원숭이와 공유하다’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만 해석하고 끝내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니 시인의 감정을 따라 이렇게 해석된 내용에 살을 입힐 필요가 있다. 살을 입혀서 제대로 해석해보면 ‘가을 숲에서 딴 열매 추위에 떠는 원숭이와 나눠 먹네.’가 되는 것이다. 이쯤 되니 시인이 어떤 상황에서 이 시를 썼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가을에 산길을 걷다가 토실토실 여문 열매를 보고 그걸 따서 먹으려 했는데 그때 하필 곁에 원숭이가 있는 게 보였고 그래서 그 열매를 혼자만 먹지 않고 원숭이와 나눠 먹는 광경이 그려지니 말이다. 이 정도만 해석해도 한문에 대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 이 시를 해석할 땐 사찰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한다.
단어를 알아야 한문의 맛을 알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그건 바로 ‘한원寒猿’이란 단어를 말이다. 원숭이면 그냥 원숭이지 왜 ‘찰한(寒)’을 쓴 원숭이여야 했을까? 그리고 왜 시인은 그런 원숭이와 열매를 나눠 먹고 있는 걸까? 더욱이 우리나라엔 원숭이가 없으니 아마도 이 시의 구절은 사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보다 시인 자신의 정감을 전달해주기 위해 상상적으로 만들어낸 시구일 가능성이 크리라. 그래서 정약용은 아예 「우아한 말로 하자를 지적하다(雅言指瑕)」라는 글에서 ‘우리나라엔 짐승 중에 원숭이가 없고 나무 중에 계수나무가 없다(我邦獸而無猿, 木而無桂).’라고 말문을 열고 시인들이 원숭이와 계수나무를 시어로 사용한 여러 예들을 보여주고선 ‘손 가는 대로 사용하였으니 참으로 그것들이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만약 중국 사람에게 보여줘서 그들이 장차 원숭이를 찾아대고 계수나무를 징험하려 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隨手使用, 若固有之. 若使中國人見之, 將求猿而徵桂矣, 何以應之?]’라고 힐난하기까지 했다. 즉, 그는 우리나라에 없는 시어들을 아무런 자의식없이 마구 써대는 시인들의 풍조를 이렇게 비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읽고 말면 변계량은 그저 거짓말쟁이가 되며, 그저 그럴듯한 글로 보이도록 애쓰는 허례허식의 지식인이 되고 만다. 그런 식으로 따지며 시나 문장을 감상하다가는 하나의 글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시나 문장이 담고 있는 중요한 맥락을 잃게 될 것이다. 변계량이 여기서 우리나라엔 없는 원숭이를 끌고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속세를 떠나 사찰을 찾아가는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 이야기를 알기 위해선 ‘단장斷腸’이란 고사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진나라 사람이 재미 삼아 새끼 원숭이를 잡아 배로 잡아 왔는데, 그 어미는 멀리부터 울부짖으며 벼랑을 따라오더니 마침내 배에 뛰어 오르며 죽었다는 것이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잘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단장斷腸’이란 고사엔 ‘인간의 욕심에 자식을 잃은 어미 원숭이의 원통함이 창자마저도 끊어놓았다’는 내용이 담기게 됐던 것이다. 그러니 이 고사를 통해 ‘원숭이=단장斷腸=자식을 잃은 원통함=인간의 욕망이 파괴한 자연’ 등의 메시지들이 담기게 됐다. 그러니 변계량이 이런 메시지가 담긴 원숭이를 시어로 차용했을 땐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지금 속세의 번잡함을 떠나 깊은 산속의 산길을 따라 사찰로 한 걸음씩 가고 있다. 그런 그는 새끼 원숭이를 잡아대던 권력욕에 쩌든 인간들의 어리석은 욕망을 떠올리며 새끼 원숭이를 잡으려 하기보다 오히려 그 원숭이와 열매를 나눠 먹고 있다. 그건 그만큼 권력욕, 세속적인 욕망에서 놓여났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자의 단어엔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얼마만큼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냐에 따라 같은 시를 놓고도 해석의 깊이는 달라진다.
▲ 시인은 시어를 그냥 쓰지 않는다. 그 시어를 통해 담고 싶은 정감이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2. 6월 한달 간 한문단어와 만나다
무려 8년 만에 한문을 다시 공부하며 다른 건 어떻게든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위와 같이 전고典故가 가득한 단어들을 제대로 익힐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건 수많은 한문들을 해석해가며 습득해야 하고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 공부를 한다는 건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만큼 펜이 다는 일이다. 시간과 공부의 상관관계.
단어장, 정리법을 알게 되다
그래서 2018년엔 아예 단어장이란 것을 만들기도 했었다. 마치 영단어를 외우듯 단어장에 모르는 단어들, 새롭게 나온 단어들을 정리하고 그걸 수시로 들여다보며 익히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단어도 그렇듯 단어만 무수히 나열된 단어장은 들여다보면 머리만 지끈거렸고 미처 한 장을 보기도 전에 잠부터 스르르 오더라. 맥락 없는, 내용이 없는 단어만 외운다는 건 역시나 곤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단어장을 통한 공부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 마침내 작년엔 좋은 본보기를 찾게 됐다. 한문에 나오는 여러 단어들은 주로 ‘고전번역원’ 사이트를 통해 검색해보지만 그곳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것들이 있을 땐 그냥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를 입력하기도 한다. 그때 몇 번인가 ‘옛글산책’이란 블로그에 접속이 되었고 아주 자세히 단어들이 정리되어 있는 것들에 감탄을 했었다. 처음 봤을 땐 그저 경이롭기만 했었는데 몇 번이나 그 사이트에 들어가게 되다 보니 작년 6월 17일엔 갑자기 ‘이 사이트에 올라 있는 내용들을 나만의 단어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날엔 부리나케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 시작할 땐 하루 만에 끝날 걸로 예상하고 막무가내로 달려든 것이었지만 그 내용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많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해낼 수 있는 작업은 아니었다.
▲ 공부를 하려면 멀리 볼 수 있는 안목과 끈기도 필요하다. 단어장 정리는 끈기와의 싸움이다.
6월 한 달 간 단어장과 어울리다
그때부터 조금씩 하던 작업이 올해 5월에서야 끝날 수 있었다. 마친 작업이라고 해봐야 그저 그 블로그에 있던 글들을 하나하나 모아놓은 것일 뿐이다. 그러니 나만의 컨셉에 맞춰 다시 편집을 하고 이미 블로그에 실린 글들에 대한 링크를 다는 작업까지 하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6월 한 달 간은 아직 임용 시험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는 걸 감안해서 단어장만을 정리하는 것으로 정해놨다. 그래서 두 가지만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스터디를 하는 날엔 서사시를 보며 공부를 하고 그 외엔 단어장 편집하고 업로드하는 일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많고도 많은 단어장의 업로드가 반절 정도 끝났기 때문에 그걸 자축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기록을 남겨두기로 한 것이다. 이 단어장 정리가 모두 끝나고 업로드까지 마치고 나면 한문공부에 더욱 큰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이 단어장을 기본 자료로 삼고 늘 보충해가며 한문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지. 과연 이 작업은 언제 끝이 날까? 끝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기대하며 단어장 정리는 계속된다.
ㄱ
| 極口 | 故舊 | 奎星 |
| 規規 | 嘉平 | 橋司 |
| 踑踞 | 搆陷 | 金篦 |
| 供職 | 彀率 | 甄別 |
| 公兄 |
ㄷ
| 都講 =熟頭 | 帶礪 | 等閒 |
ㄹ
| 裂眦 | 陵夷 |
ㅁ
| 無妄 | 閩囝去勢 | 無狀 |
ㅂ
| 柄臣 =權臣 | 盤根 =錯節 | 班首 |
| 靡靡 | 不世 | 變怪 |
| 排比 | 輔相 | 分義 |
| 浮靡 |
ㅅ
| 絲綸 | 釋位 | 詞采 |
| 疏榮 | 上營 | 先稿 |
| 詞命 | 成算 | 襲謬 |
| 相須 |
ㅇ
| 菀結 =鬱結 | 擩染 | 沿襲 |
| 逸志 | 易簀 | 令胤 |
| 用權 =用事 | 原委 | 儒宗 |
| 援例 | 如許 |
ㅈ
| 措大 | 宗匠 | 障防 |
| 前車 | 殿屎 | 程限(=程度, 限度, 定限) |
| 頂禮 | 在世 | 蠶室淫刑 |
ㅊ
| 沈吟 | 遞歸 =遞來 | 推問 |
| 穿結 | 出宰 | 沉浸 |
| 捷書 | 捷徑 | 借問 |
ㅌ
| 退瞖 |
ㅍ
| 匍匐 | 風致 | 風雲 |
| 廢居 | 品定 |
ㅎ
| 黃雲 | 緘辭 | 罕倫 |
| 赫蹄 | 軒冕 | 泫然 |
▲ 2018년에도 단어장 작업을 했지만 이렇게 정리해선 끝이 없다는 생각이 포기했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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