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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겨울비와 관리의 횡포를 풍자적으로 그리다
이 시는 겨울에 때아닌 비가 억수로 쏟아진 특수한 상황을 설정해서 간고한 농민의 삶을 해학적 수법으로 그린 것이다.
앞의 「전옹가(田翁歌)」에서처럼 촌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노인의 집에 양식이 바닥나서 도토리나마 빻아 먹으려는데 방아도 비에 푹 젖어 찧지 못하고 이웃집에 양식을 구하려는데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들이닥친다. 이것이 서사적 화폭으로 펼쳐져 있다. 여기서 노인은 하늘을 가리키며 “햇빛이 따뜻이 쪼이면서 빈한한 집구석은 비추지 않고[白日有光不照懸罄室]”라며 원망의 소리를 높인다. 이때 하늘과 해는 통치권력의 정상인 국왕에 빚대어진 셈이다. 절박한 처지에서 마침내 원성이 임금에게까지 돌아감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더없이 암울하고 처연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웃음과 익살이 결들어 있다. “계집아이 밥을 빌러 사립문 동쪽 고샅으로 나가고 / 고을 아전 납세 독촉 사립문 서쪽 고샅에서 들어온다[兒女索飱柴門東 縣吏催科柴門西]”라고 장면을 극적으로 만들어 모순을 첨예하고도 익살스럽게 드러내었으며, 마지막 “산골 늙은이 신세 부황 나 죽을 건 기필하겠네[山翁涷死唯可必]”는 절망적 감정의 표출이라기보다 분노를 삭이는 풍자의 절정으로 느껴진다. 서사적 구조는 간결하지만 의미는 심대하며, 참담한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처리한 것이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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