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주가 친숙한 곳이 된 이유
오전에 많이 걸었다. 오늘부터 시원해진다고 했는데 구름만 꼈을 뿐 오히려 더 덥더라.
9시가 조금 넘었을 때, 갑자기 어떤 봉고차가 내 앞에 멈춰 선다. 그러고선 운전하시던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알고 보니, 목사님이더라. 좋은 일 한다며 오늘은 일요일이니 꼭 교회에 가라고 신신당부하신다. 그러면서 여기서 조금만 가면 바로 교회가 있다는 정보도 알려줬다.
그런데 그땐 시간이 이른지라 무작정 걸었고 10시 10분경부터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는 보이지 않는다. 목사님이 알려주신 교회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그때 지나는 곳은 공장지대였다. 그곳에서 교회를 찾고 있었으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느낌이랄까?
29년을 살아온 나에게 주는 선물
한참을 걷다 보니 11시가 넘었고 곧 가남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 멀리 큰 교회가 보였지만 건물에 세든 개척교회가 더 가까웠기에 그리로 갔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좋으련만(종일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하기에 쉴 땐 벗는 게 최고다^^) 신고 들어가게 되어 있더라. 작은 교회치고 교인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목사님 친척분들이 특별히 참석한 거란다. 분위기가 참 맘에 들었다. 가족 같은 분위기.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서는 실망스러웠다. 목사님에게 있어 최대 목표는 ‘교회 이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설교말씀에도, 모든 기도에도 이 말은 빠지지 않고 반복된다. 하나님이 이미 교회 이전을 허락하셨으니 맘 편히 먹고 믿음에 따라 그렇게 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꼭 세뇌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뭐 어쩌다 하루 설교 말씀 들은 것으로 교회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인 줄 안다. 하지만 그 말씀이 귀에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것만 빼면 교회의 분위기는 참 편하고 좋았다.
예배가 끝난 후엔 모두가 관심을 보여주시더라. 밥도 주시고 가다가 먹으라며 떡도 싸주셨다. 그리고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신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것~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세요?”라는 것. 그래서 이 연사 힘주어 외쳤다. “이건 29년간 살아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예요.” 이렇게 받은 것들 나도 언젠가 낯선 이에게 베풀 날도 오겠지. 그렇게 같이 어울리며 살고 싶다.
늦은 빠름
오후엔 정말 여유 있게 걸었다. 오늘 경로의 2/3를 오전에 다 걸은 터라 바쁘게 걸을 필요가 없었다. 7시까지 맞춰서만 가면 되니, 한껏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조금 걷다가 쉬고, 다시 조금 더 걷다가 쉬고를 반복했다.
자연과 하나 되어 걷고 있다. 한 걸음씩 걸으며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끼며 걷고 있다. 햇살은 내 몸에 와서 닿는다. 그저 숨 쉬며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왜 이런 기쁨을 이제야 느끼게 되는 걸까? 그만큼 내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기일까? 이런 게 바로 ‘늦은 빠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시기적으로 보면 29살에 깨달았으니 ‘늦은’ 것이지만 내 인생의 시계로 보면 꼭 알맞은 시간에 깨달은 것이니 ‘빠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소소한 기쁨을 느끼면서 세상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낯선 공간은 낯익은 공간이 된다
여주에 들어섰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향교를 들렀다.
6시 30분에 여주 터미널에 도착했고 7시에 친구를 만났다. 늘 전주에서 보다가 낯선 곳에서 만나니깐 어색하고도 반갑더라. 새로운 곳에 대한 낯섦은 금세 가셨다. 맘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걸으니 그곳이 늘 걷던 전주 같더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낯선 공간은 순식간에 낯익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이란 참 특별한 존재이려니.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고기로 몸보신도 하고 술도 마시며 넋두리도 풀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참 행복한 저녁이었다.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음료수 |
1.000원 |
여관비 |
25.000원 |
총합 |
26.0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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