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이 여유로워지자 세상이 달리 보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씻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오늘 안으로 여주에 도착할 수 있는지 지도책을 펴고 거리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제발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기를 바라며 말이다. 실을 가지고 거리를 계산해 보니 30Km 쯤 되더라. 아! 정말 다행이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라 해도 부담되는 먼 거리도 아니다.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야지.
여유로워지자 보이는 세상
친구에게 문자로 보냈다. “오늘 부리나케 걸어 도착할 거니까 저녁에 보자”고 말이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답문자가 왔다. 그러면서 잠은 어떻게 잘 거냐고 물어본다. 난 친구가 일하는 곳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봉사활동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가 직원이니까 그런 정도는 쉽게 받아들여지겠지 하는 기대로 문자를 보냈는데, 미리 신청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답장을 보내오더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찜질방에서 자겠다고 말했다. 하루 일정이 다 정해졌다. 자는 문제까지 해결했으니 오늘은 아무 부담 없이 걷기만 하면 된다. 저번에 함열로 향할 때도 그랬지만 누군가 기다리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도 나름 행복한 여행의 조건이긴 하다.
그런데 하루 일정이 정해지고 나니 맘이 바빠지기 시작하더라. 30Km면 8시간 정도를 걸어야 한다. 도중에 점심을 먹으러 교회라도 들리게 되면 시간은 더 촉박해진다. ‘오늘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밥 먹는 것도 포기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할 때, 문자가 왔다. 일이 6시 40분에 끝나기에 여주에는 7시에나 도착할 수 있단다. 많이 늦는다고 미안하다는 문자였지만 난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그만큼 여유 있게 갈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교회에서 6시 40분에 나왔다. 저녁 7시까지라면 아직 12시간 정도 남아 있는 셈이다. 느긋하게 즐기면서 가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더라. 세상은 아름답고도 ‘싱싱’했다. 만물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만 같다. 그런 생동감 넘치는 자연 속에 나도 하나의 자연물이 되어 그런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발엔 힘이 실렸고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으며 머리는 맑았다.
납량특집, 이름 없는 지방도에서 겪은 일
어젠 국도를 따라 걷느라 힘들었지만 오늘은 한적한 2차로의 지방도를 따라가면 된다. 그래서 재밌게 걸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한껏 했다.
그런데 막상 길을 걸어보니 실망스럽더라. 이건 도무지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갓길이 없다. 갓길엔 잡초들이 우거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도로 한복판으로 걸어야 했다. 그러다 대형차들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재빨리 몸을 날려야 했다. 한 번 생각해보라. 차가 올 때마다 몸을 날리는 내 모습을~ 이건 뭐, 순발력 테스트도 아니고~~ 운전기사 아저씨들도 신경 쓰이시겠지만 내 몸도 많이 고됐다. 굴곡 진 코스가 많은 탓에 위험천만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길은 왜 그리도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들이 자꾸 눈에 띄던지. 짓눌려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시체가 나올 때면 섬뜩해서 쳐다보며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눈은 정면만을 응시한 채 걸어야 했다. 얼굴엔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등엔 땀줄기가 흘러내리는 데도 온몸이 싸늘해지는 그 느낌이란. 납량특집 영화가 따로 없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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