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 그대로의 여행을 받아들이다
이미 시간은 8시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이 막막해지는 이 느낌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세상의 쓴맛이다.
하긴 그 말을 뒤집어보면 지금까진 운 좋게 일이 술술 풀렸다는 얘기이리라. 친구는 국토종단을 하면서 노숙을 해봤냐고 장난삼아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젠 그 말이 현실이 될 판이다. 이런 맙소사.
우여곡절 끝에 잠자리를 얻다
그때 개척교회 목사님께서 한 말씀 덧붙이셨다. “농협 근처에 싼 여관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 말에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섭섭하다고 해야 하나? 목사님께 인사도 하지 않고 나왔다. 두 번이나 찾아갈 땐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인데 그것마저 외면한 게 야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남 탓! 이런 심보야말로 ‘못 돼먹은 건빵심보’다.
농협 쪽으로 걷다 보니 십자가가 하나 보인다. 여인숙 간판도 보였지만 정읍 여인숙의 악몽이 있는지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교회로 향했다. 목사님에게 잘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나의 절실한 마음과는 달리 별관심 없다는 투로 교회에 계신 전도사님께 물어보라고 하신다. 교회의 사용은 목사님 권한일 텐데 전도사님께 떠넘기는 그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여긴 다들 왜 이러시는지, 안습이다. 그래도 아예 거부한 것은 아니니 다행이려나.
전도사님께 가봤더니 글쎄 시내에 나가셨단다. 이건 뭐 제풀에 지쳐 떠나가길 바라기나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물러설 나도 아니었다. 목사님은 전화해서 허락받으라고 했지만 불쑥 전화해서 동의를 구하는 것도 이상해서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교회 입구에 앉아 오늘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담고 있다. 편하게 누워서 쓰는 게 아니라 앉아서 쓰니 허리도 아프고 글씨도 개판이고 내용도 별로다. 밤이 되면서 찬바람까지 불어와 속으로 파고든다. 공주 경천리에서 아무 대책 없이 벤치에 앉아 기다릴 때의 그 느낌이 든다. 여차하면 노숙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9시 40분이 되어서야 사택으로 차가 한 대 들어왔다. 전도사님인 줄 알고 달려갔더니 목사님이시더라. 그러면서 왜 아직도 안 들어갔냐고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신다. 이건 뭔가요? 그제야 들어가 쉬라며 이불도 주시던걸.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지만 전후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드디어 잘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그 순간 긴장이 풀어지면서 잠이 일순간 밀려오더라. 교회 유아실 같은 곳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여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저녁도 차려주진 않았지만 그저 잘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순조롭지 않은, 그래서 삶다운 출발
지금 생각해보면 국토종단 전반기는 초보 여행자인 나를 위한 배려들이 가득했던 여행이었다. 오늘 이런 경험을 해보니 이제야 그걸 깨달았다.
그에 반해 후반기는 진짜 여행다운 느낌이랄까? 처음부터 꼬이긴 했지만, 이것 또한 여행의 한 단면일 것이다.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냉방에서 잔다. 그래도 이렇게 자는 게 노숙하는 것보다 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젠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아무래도 괜찮다.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서울-안성 버스비 |
5.000원 |
맥주 |
2.000원 |
총합 |
7.0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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