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같지 않기에 재밌는 여행
처음에 경로를 정할 때만 해도 여주로 갈 생각은 없었다. 그땐 목포에서 철원까지 직선으로 선을 그어 가까운 루트로 가려 했다.
친구가 알려준 국토종단의 의미
하지만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내가 국토종단 할 수 있도록 의미부여도 해주고 힘까지 팍팍 북돋워주던 친구다. 그런데 그때 “어느 경로로 어떻게 가냐? 혹시 여주로 오게 되면 연락해. 내가 맛있는 저녁 사줄게~”라고 말하는 거다. 그래서 알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머리에는 오만 생각이 들더라. 여주로 가려면 조금 돌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가는 길인데 친구도 못 만나고 가는 것도 그랬다. 그날 저녁 곰곰이 생각해보니 생각해보고 자시고 할 문제도 아니더라. 그건 이 여행을 하는 목적만 살펴봐도 답은 이미 내려져 있다.
난 왜 이 여행을 떠나려 했던 거지? 그렇다! 길 위에서 서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과연 내가 그 순간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헤쳐나가는지 보고 싶었던 거다. 길 위엔 수많은 우연과 인연이 있다. 즉, 목적지까지 가는 건 이 여행의 한 가지 이유일 뿐, 전체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는 도중에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또 이런저런 인연들, 사건들을 만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목적지에 하루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그런 중간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이 여행은 목적을 상실한 ‘여행 아닌 여행’이 되는 거다. 그럴 바에야 뭐 하러 걸어서 가랴? 버스 타고 가면 돈도, 시간도 다 절약되는 것을. 그런 ‘여행 아닌 여행’을 하지 않기 위해선 지나며 만나는 인연과 우연에 충실해야 한다. 여주는 그런 생각 끝에 중간 경로로 들어간 것이다.
우연 예찬론
계획대로였으면 전주로 가기 전에 여주에 도착해서 친구와 함께 부어라 마셔라 했을 거다. 그런데 진천 초평 이장님 댁에서 이틀을 보내게 되면서 시간이 틀어졌다.
그래서 지금 후회하냐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또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오히려 후회가 된다면 연기군 양화리에서 교회 사모님이 제안한 점심 초대를 거부했던 일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를 자신들의 일상에 초대한 것인데, 갈 길 운운하며 거부했기 때문에 그게 두고 두고 후회가 된다.
내 맘 같지 않기에 여행은 재밌는 거다. 여행이 내 맘만 같다면 그건 여행이라기보다 일상의 연장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여행은 돈으로 산 여행이거나 늘 가던 곳으로 안전하게 떠난 여행일 뿐이다. 계획이란 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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