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스프
WASP
미국은 흔히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현재 미국의 인구 구성을 보면 백인이 2/3가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왜 이런 별명이 붙었을까? 그 이유는 백인의 구성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얼굴이 희다고 해서 다 같은 백인이 아니다.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백인들은 특별히 와스프라는 명칭으로 분류된다. 와스프는 White-Anglo-Saxon-Protestant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로, ‘앵글로색슨계의 신교도 백인종’이라는 의미다.
1620년에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Mayflower) 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이래 1860년대까지 200여 년 동안 미국의 인종 구성은 단순했다. 청교도 이주민인 와스프와 약 2~3만년 전에 베링 해가 육지였을 때 이곳을 통해 아메리카로 건너온 아시아 몽골인들의 후예인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대부분이었다. 초기 이주민들에 이어 19세기까지 유럽에서 미국으로 간간이 건너온 이주민들도 소수 아일랜드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영국이나 독일에서 온 신교도들이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의 남북전쟁 이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폴란드, 러시아, 이탈리아 등 중부 유럽과 동남부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이 갑자기 많아진 것이다. 이들은 영어를 쓰지도 않았고 신교도도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영국 문화의 모방으로 신대륙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다고 자부하던 초기 이주민의 자손들은 후발 주자들과 아예 이름부터 선을 분명히 그었다. 이때부터 그들은 자신들을 와스프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정통 미국인임을 자부했다. 실제로 그들은 명칭만이 아니라 기업, 은행, 법률, 문화 등의 중심 집단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굳힘으로써 여타 계층과의 구별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와스프는 주로 미국 북동부에 거주하면서 그 지역을 유럽풍으로 꾸미는 데 열심이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이 지역의 일부 도시들은 유럽보다 더 유럽적인 풍모를 간직하고 있다.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하기 전까지 미국의 거의 모든 대기업들은 와스프가 소유했고, 공화당과 민주당을 망라한 정계의 요직도 대부분 독점했다. 대공황 후로는 유대인 같은 신흥 세력이 미국의 경제계를 장악했고 가톨릭 신앙을 가진 아일랜드계 인물이 대통령에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와스프의 권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차별적 이미지를 물씬 풍기며 탄생한 와스프라는 개념은 자신들 외의 모든 인종 집단들에 대해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아프리카계나 아시아계 등 다른 인종의 이주민보다 와스프 이외의 백인들에게 더 강렬한 배타성을 보인다. 인종 자체가 다르면 노골적인 차별이 가능하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출신의 라틴계는 겉으로 볼 때 백인과 구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때로는 더욱 적대적인 감정이 조장된다. 그래서 와스프는 창조성이 없고 배타적인 사람을 뜻하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지만 일반 단어로 쓰이는 wasp는 성미가 까다로운 사람을 뜻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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