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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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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서양의 유명 음악가나 연예인이 방한하면 TV에서 인터뷰를 한다. 그때 거의 빠지지 않고 묻는 질문이 한국의 첫 인상이 어떻습니까?”하는 것이다. 그럼 대개들 날씨가 뷰티풀(beautiful)하고 사람들이 원더풀(wonderful)하다는 둥 오는 비행기 안에서 즉석으로 배운 틀에 박힌 찬사를 늘어놓게 마련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습관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남발하는 성향이 있으므로 그들이 말하는 원더풀이나 뷰티풀을 소박하게 믿었다간 그대로 (fool)’이 되기 십상이다.

 

외국인이 본 한국의 첫 인상은 물론 중요하지만 굳이 칭찬을 유도해서 만족하려는 심리는 대체 뭘까? 미국 대학생들이 ‘Zen’ 또는 선()이라고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든가, 비틀스의 한 멤버가 인도의 사상에 심취했다든가, 프랑스의 유명한 도예가가 고려청자에 감탄사를 연발했다든가 하는 말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게 뭘까? 서양인들도 동양의 깊은 정신과 예술 세계를 아는구나 하고 만족을 얻을까?

 

그런데 그것도 우리를 풀로 만드는 사기다. 미국의 대학생들,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 프랑스 도예가는 실상 동양을 잘 모른다. 동양에 사는 우리도 동양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예전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한국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어느 영화평론가는 정작 동양의 우리도 불교적 구도의 세계를 잘 모르는데 서양인이 어떻게 알겠는가? 아마 그래서 상을 받은 듯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모르기 때문에 상을 주었다? 아마 그 말이 정답일 것이다.

 

물론 서양인들 중에 동양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주로 지적 호기심일 뿐 애정이 뒷받침된 것은 아니다. 즉 그들은 동양을 머리로 알려고 노력은 해도 가슴으로 느끼려 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서양 문명이 세계를 정복한 이상 그들에게 동양 문명은 그저 하나의 연구 대상일 뿐이며, 더 심하게 말하면 호기심거리일 뿐이다. 그 점을 잘 보여주는 개념은 이스라엘 출신의 현대 사상가인 사이드(Edward W. Said, 1935~ 2003)의 책 제목이기도 한 오리엔탈리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은 보통 동양학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는데하지만 오리엔트라는 말은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와는 무관한 중동을 가리키는 역사적 용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 탓에 제목만 보고 마치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큰 관심을 다룬 책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가끔 있다. 실제로 국내 TV 방송에 나온 어느 교수는 이 책을 언급하면서 장차 동양 문명이 세계 문명으로 부활하게 될 조짐을 서양의 시각에서 고백하고 있다고 말하는 무지의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동양에 대한 지적 관심, 즉 오리엔탈리즘은 결코 순수한 학문적 목적을 지닌 것도, 단순한 유행도 아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소재로 하는 유럽의 공상 만화가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위한 하나의 체계로 창조된 것이다. 그 창조를 위하여 서양은 수세대 동안 엄청난 물질적 투자를 했다. 이러한 투자 덕분에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관한 지식 체계로 자리 잡았으며, 서양인의 의식 속에 동양을 여과하여 주입하기 위한 필터가 되었다. 그 결과 오리엔탈리즘을 바탕으로 한 사상과 문화 전반적인 서술들은 크게 증대했다. 그 투자는 대단히 생산성이 높은 투자였다.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은 학문적 관심도, 지적 호기심도 아닌 투자였다는 이야기다.

 

 

유럽 문명이 처음으로 세계 정복에 나선 대항해시대 이후 동양에 대한 관심은 단편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왔다. 그러던 것이 목적의식적인 오리엔탈리즘으로 바뀐 시기는 18세기 후반이며, 본격적인 체계화를 이룬 시기, 즉 학문을 넘어 성공적인 투자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알다시피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는 제국주의 시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시기에 서양은 동양을 정치적ㆍ경제적으로 정복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정복하려 했다. 그런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정복의 완성을 위한 계획이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형성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한 것은 경제적·군사적 침략보다도 문화적 침략이었다. 동양에 관한 자료들이 풍부하게 수집됨으로써 서양인들은 개별적이고 파편적인 동양 이해를 넘어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동양관을 정립하게 된다. 그 결과 바로 사이드가 말하는 것처럼, 서양의 어느 작가가 동양혹은 동양적이라는 표현을 쓰면 서양의 독자들은 즉각 그 의미를 알아듣게 되는 커뮤니케이션의 패턴이 생겨나게 되었다물론 그건 그들이 구성한 동양이며 실제의 동양과는 무관하다.

 

 

19세기 유럽의 귀족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토착 예술품 수집을 최고의 취미로 여겼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인들이 대대적으로 고고학적 발굴 사업을 벌였던 것도 이 시기이며, 중동과 극동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런던과 파리의 박물관에 소장된 것도 이 시기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선 별로 볼 만한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이드의 말처럼 오리엔탈리즘은 과연 성공적인 투자였다. 지금은 동양인들마저 동양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서양으로 유학을 간다. 이런 것만 봐도 오리엔탈리즘은 본전을 건지고도 남은 셈이다. 유학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앞으로는 서양에 유학을 가더라도 더 보편적인 주제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굳이 미국에까지 유학을 가서 조선시대 당쟁이 한국의 유교 정치에 미친 영향에 관한 고찰따위의 제목으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그건 좋게 보면 <달마……>가 영화상을 받은 맥락과 같고, 나쁘게 보면 오리엔탈리즘에 하나의 목록을 더 얹어주는 격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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