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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정희 - 취우(驟雨)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김정희 - 취우(驟雨)

건방진방랑자 2021. 4. 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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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취우(驟雨)

 

김정희(金正喜)

 

 

樹樹薰風葉欲齊 正濃黑雨數峰西

小蛙一種靑於艾 跳上蕉梢效鵲啼 阮堂先生全集卷十

 

 

 

 

 

 

해석

樹樹薰風葉欲齊

수수훈풍엽욕제

나무마다 따뜻한 바람으로 잎사귀가 가지런하다가

正濃黑雨數峰西

정농흑우수봉서

바로 몇 봉우리 서쪽에 검은 비 짙어지네.

小蛙一種靑於艾

소와일종청어애

작은 개구리 한 종류가 쑥보다 푸르러

跳上蕉梢效鵲啼

도상초초효작제

달아나다 파초잎에 올라 까치 지저귐 흉내내네. 阮堂先生全集卷十

 

 

해설

한 무더기의 무더운 바람떼가 산비탈을 불어간다. 나뭇잎들이 일제히 여울목의 비늘 물결 부서지듯 허옇게 뒤집히면서, 요란한 여울물 소리를 낸다. 스물거리는 구름장들이 서로 마주쳐 어우러지면서, 날은 점점 어두컴컴하게 끄무러지더니, 이윽고 저편 하늘 한 끝에서 장쾌한 빗줄기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마치 천군(天軍)의 분열식을 보는 듯, 대대별 연대별로 대열을 갖춘 장대한 대군단의 행렬이 건곤(乾坤)을 주름주름 잡으며, 먼 산봉우리들을 징검다리 밟아 뛰듯 지첨지첨 건너오고 있다.

 

이때 삼라만상은 무슨 하회를 기다리듯, 저마다 제 위치로 돌아가 숨을 죽이고 있다. 이 숙연한 침묵 속에 난데없는 당돌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뇨?

 

청개구리! 그것도 어린 청개구리다. 높은 곳을 찾아 갈댓잎 끝에 뛰어오른 그는, 미구에 다닥칠 어떤 위급한 사태를 온 세상에 경고한다는 듯, 숨찬 가슴을 벌름거리며, 허위단심 외치고 있다. 도대체 저 앙징스러운 작은 몸집 어디에 저렇듯 엄청난 성량(聲量)은 울려나는 것일까? 그 음색(音色)ㆍ음조(音調)마저도 까치랑 흡사하다. 저들은 천성 우기(雨氣)에 민감하다니, 저것은 일종의 수난경보(水難警報)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저 잔약한 어린것이 저렇듯 부르짖는 그 내용이, 전설대로 물가에 쓴 어미 무덤 때문이든 아니든 간에, 그에 있어서는 일대 비상 사태에 대한 애타는 하소연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애조(哀調)를 띄지도 않은, 맹랑하게도 당찬 품이, 가련한 어린 소녀가장(少女家長)을 대하는 듯 안쓰럽기 그지 없고, 또는 어떤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의 깡다구 같기도 하여,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이 시에서 청개구리의 등장은 매우 극적이요 희화적(戱畵的)이다.

 

전반의 웅대한 세력 앞에 후반의 돌올(突兀)한 미물(微物)의 등장은, 일견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의 엉터리 같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러나 그 당당한 한 생명의 외침과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기개는, 12구에 못지않은 비중의 무게를 느끼게도 한다.

 

예리한 관찰, 자연물에 대한 곰살궂은 애정, 독특한 사실적 묘사의 필치, 이러한 그의 시는, 그의 글씨만큼이나 또한 뛰어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 541~542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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