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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 - 납십구 아자명준배파유시 추사내한심격상 여우화지 이시추사(臘十九 兒子命準拜坡有詩 秋史內翰甚激賞 余又和之 以示秋史)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신위 - 납십구 아자명준배파유시 추사내한심격상 여우화지 이시추사(臘十九 兒子命準拜坡有詩 秋史內翰甚激賞 余又和之 以示秋史)

건방진방랑자 2021. 4. 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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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일 19일에 兒子命準拜坡有추사 내한이 매우 격렬히 칭상하니 나 또한 그 시에 화운하며 추사에게 보여줬다.

납십구 아자명준배파유시 추사내한심격상 여우화지 이시추사(臘十九 兒子命準拜坡有詩 秋史內翰甚激賞 余又和之 以示秋史)

 

신위(申緯)

 

 

幾人學得眞髓 貌襲區區釰鍥船

不必粧梳同結束 天然秀色逞㛹姸 警修堂全藁冊八

 

 

 

 

해석

幾人學得眞髓
기인학두득진수
몇 사람이 두보를 배워 진수를 얻었는가?
貌襲區區釰鍥船
모습구구일계선
쪼잔하게 외형만 답습하여 배에 둔하게 새기네.
不必粧梳同結束
불필장소동결속
화장하고 빗질하여 동일하게 묶을 필욘 없고
天然秀色逞㛹姸
천연수색령변연
천연한 빼어난 빛이 더욱 곱고 어여쁘네. 警修堂全藁冊八

 

 

해설

이 시는 신위의 시학(詩學)에 대한 단상(斷想)이 드러난 시이다.

 

정조(正祖)홍재전서(弘齋全書)』 「文學 一에서, “지금 사람들은 모두 고문의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명청 여러 사람들 중에 어렵고도 괴이하며 허풍 치는 곳에 나아가서 괴이한 체를 얻어 가지고 곧바로 서로 자랑하며 말하기를, ‘나는 당을 배웠다. 나는 송을 배웠다. 나는 선진, 양한을 배웠다.’고 하는데, 이것은 거의 잠자리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今人都不解古文體裁 却就明淸諸家中艱棘詭誕處 學得恠體來 便自相詡曰 我學唐 我學宋 我先秦兩漢也 此殆一場夢囈之歸矣].”라 언급한 것은 위의 시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두보(杜甫)의 시문집이 우리나라에 통행하게 된 것은 고려 중엽이며(이때는 蘇軾의 영향이 더 컸음), 고려 말 이색(李穡)독두시(讀杜詩)이수(二首)를 비롯하여 학사(學社)에 힘쓰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에 두보(杜甫)ㆍ소식(蘇軾)ㆍ황정견(黃庭堅)을 배웠으며, 성종(成宗)조에 두시언해(杜詩諺解)가 간행된 이후로 의 문학사조를 받아들여 학당(學唐)을 기울었다(前後七子들은 文必秦漢 詩必盛唐을 주장). 이후 김정(金淨)이 학당(學唐)을 창시한 이래로 삼당시인(三唐詩人)에 의해 고조된다. 그러나 실학(實學)이 대두한 영조(英祖) 이후 청()의 사조를 받아들여 시풍이 크게 변한다. 이용휴(李用休)ㆍ이가환(李家煥) 부자(父子)이덕무(李德懋)를 비롯한 후사가(後四家)에 의해 기궤(奇詭)하고 청신(淸新)한 시풍(詩風, 神韻說)이 등장한다. 정조(正祖)에 이르러 두보(杜甫)의 영향을 많이 수용하고 그 위에 도학사상(道學思想)을 잘 반영한 육유(陸游)를 계제(階梯)로 삼은 유육입사(由陸入杜)’가 학시(學詩)의 정도(正道)라 믿었다. 신위(申緯)는 후사가의 뒤를 이어 그들의 장점을 계승하는 한편 청()의 시학사조(詩學思潮)도 직수입하여 유소입두(由蘇入杜)’를 시학(詩學)의 정도(正道)라 믿었다. (이병주 한국한문학상의 두시연구, 손팔주 신위론).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348~349

 

 

인용

목차

한시사

문학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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