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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 17. 사람에게 인형이 되길 희망하다 본문

연재/시네필

죽은 시인의 사회 - 17. 사람에게 인형이 되길 희망하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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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람에게 인형이 되길 희망하다

 

교육은 대화여야 한다. 가르치려는 사람과 배우려는 사람이 유기적으로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해야만 한다. 키팅의 교수방법이 탁월한 이유는 단순히 남다른 수업을 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학생과 주고받는 수업을 했다는 데에 있다. 그에 따라 키팅 자신도 성장해 갔으며, 그를 만난 학생들도 성장해갈 수 있었다. 의식의 움직임을 통해 그들은 만나며 함께 성장해 갔고, 그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갔다.

 

 

만남은 서로에게 변화를 만들어 낸다.

 

 

 

닐의 아킬레스건, 아버지

 

닐 페리는 꽤나 유쾌하면서 밝은 학생이다. 학교생활도 잘하며 교우관계도 좋다. 더욱이 성적까지 좋으며, 토드와 같이 소심한 친구까지 살뜰히 챙길 줄 아는 팔방미남형 인물이다.

 

 

토드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닐. 붙임성 좋고 밝다.

 

 

하지만 완벽한 그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 자신도 아닌 친구들도 아닌, 아버지였다. 닐의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닐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로 자식에게도 성공만을 바라는 타입이라는 건 알 수 있다.

닐과 아버지의 관계를 볼 수 있었던 첫 장면은 입학식이 끝나고 난 후 기숙사에서였다. 보통 이땐 이미 모든 부모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입학식의 회포를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며 푸는 시간이다. 그런데 닐의 아버지는 다짜고짜 닐의 방으로 들어오더니,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는 닐의 입장은 상관도 하지 않고 , 방금 교장 선생님과 얘길 했는데, 넌 이번 학기에 과외활동이 너무 많으니까, 졸업연감 일은 그만 둬라라고 말해 버린다. 누가 보면 완곡한 어조의 권유 같지만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통보였다.

 

 

친구들이 있건 말건 자신은 명령조로 말한다. 꼭 군대의 상관 같은 말투와 어조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닐은 그런 아버지의 말에 반대를 하지 않고 순순히 따랐나 보다. 그건 곧 아버지의 말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아버지의 통보에 그대로 따를 수 없어서 닐은 하지만 전 부편집장인걸요라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을 뿐인데, 아버지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단둘이 얘기하자며 방에서 데리고 나와 사람들 많은 데서 나에게 반항하지 마!”라고 화를 낸다. 아버지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닐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이 감정에 치우쳐서 그런 것이며, 아버지 말에 따르겠다고 말한다.

이 장면을 통해 닐과 아버지의 관계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사인 아버지는 대화가 아닌 명령을 내리고, 부하직원인 닐은 부조리할지라도 따라야만 한다. 그러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라며 쐐기를 박는다. 그건 아버지의 뜻에 따를 경우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을 해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모든 걸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에 다름 아니었다.

 

 

필요한 게 있어도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정열에 찬물을 끼얹다

 

이로써 닐은 그토록 하고 싶던 졸업연감을 만드는 일에서 빠지게 된다. 모든 일엔 자신의 생각보다 아버지의 생각이 깊이 개입되어 있고, 공부와 관련 없는 일들은 의대를 졸업한 이후에 하는 것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닐은 가슴 속에 뜨거운 정열을 지닌 학생이었다. 그 뜨거운 열망은 누군가 막는다고, 꺾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막히고 꺾어질수록 더욱 분명하게 더 큰 정열로 자라났다. 그래서 닐은 어느 순간에 자신이 연극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부모 몰래 오디션까지 보기에 이른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누구에게 묻거나 자문을 구할 필요도 없이 전광석화로 오디션을 봤고 결국 가장 중요한 배역을 맡게 된다. 아주 열심히 사는 건실하면서도 힘찬 청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청소년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걸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게 어느 순간에 갈등의 요소가 될 거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아는 날엔 초반에 잠시 봤듯이 스파크가 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버지는 닐이 연극을 한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됐고 다짜고짜 닐의 기숙사로 찾아왔다. 아버지가 화난 이유는 두 가지로, 첫째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일을 벌였다는 것과, 둘째 연극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아들의 말을 들을 마음은 없으면서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나무라고 있었으며, 연극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연극 연습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나무란 것이다. , 자기가 정해놓은 것 외에 다른 것은 용납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은 것이다.

 

 

자식에 대한 관심보다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그렇게 부추긴 배후를 찾는데 더 관심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허튼 짓을 하고 자신을 속일 수 있었던 데엔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게 키팅이냐고 묻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도 하지만, 한 번도 반항해보지 못한 닐은 아무 말도 없이 그걸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연극을 관두라는 아버지의 말에 마지못해 “Yes sir!”이라 대답하면서 말이다.

 

 

표정에 우수가 감돈다. 여기서 알겠습니다라는 말은 수긍의 말이 아닌, 체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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