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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 15. 감정을 폭발시켜라 본문

연재/시네필

죽은 시인의 사회 - 15. 감정을 폭발시켜라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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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감정을 폭발시켜라

 

토드는 12번째 후기에서도 잠시 살펴봤다시피 형의 후광에 짓눌려 자기표현도 잘 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키팅의 수업을 받고 친구들이 조직한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들어가면서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입학식 때의 도드. 한껏 주눅 들어 있고, 그로 인해 말수도 적다. 닐과 룸메이트가 되면서 표정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사람의 변화는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확실히 하고 가야할 점은 토드의 변화는 결코 외부의 자극 때문만이 아니라, 그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한 순간들을 감내하면서 스스로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 모든 변화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처럼 외부의 조건과 내부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성어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변했다는 설명은 사람의 변화를 가장 저급하면서도, 손쉽게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보통 자식에게 큰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는 내 자식은 전혀 문제도 없고, 순진했는데, 나쁜 친구들 때문에 그런 거예요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건 자식을 전혀 알려 하지 않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말일 뿐임에도 말이다. ‘자식이 하필 그런 친구들을 사귈 수밖에 없었는지?’를 물을 수 있다면, 그런 변화는 결코 외부의 강제가 아닌 자식 스스로 그걸 원했고 그런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토드의 변화를 볼 때에도 당연히 이런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쇠귀님의 글씨. 가슴 뭉클하다.

 

 

 

토드, 거세된 욕망을 폭발시키다

 

토드의 형은 이미 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류대학까지 입학한 수재다. 그 형의 후광이 짙게 드리워진 이 학교에 입학한 셈이니, 토드는 나름 형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그저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맞춰 살 수밖에 없었다.

부모 또한 그런 토드에게 그렇게까지 관심은 없다. 단지 형이 밟았던 루트를 잘 따라가기만을 바란다. 부모가 토드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는, 그의 생일 선물에서 여지없이 폭로된다. 생일 선물은 필기도구 세트인데, 그건 무려 작년에도 똑같이 받았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선물을 받고 토드는 내년에도 똑같은 것을 받게 될 거야라는 사실을 직감했고, 그만큼 자신에겐 관심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시무룩해진 채 학교로 들어가는 호수의 다리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다.

 

 

씁쓸한 마음 때문에 다리에 앉아 있는 토드와 말을 거는 닐.

 

 

그런데 이 장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이란 영화에서도 석우는 딸 수인이의 생일에 게임기를 선물했는데, 그 선물은 어린이날에도 똑같이 사줬던 것이니 말이다. ‘똑같은 선물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다는 메타포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관심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본 룸메이트인 닐은 가만히 다리에 앉아 있는 토드를 보고 가까이 다가갔고 자초지종을 들은 후에야 기분이 매우 나쁜 상황임을 알게 된다. 과연 이 때 닐은 토드를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을까? 일반적인 방식은 부모님의 마음은 그게 아닐 테니, 이해해라는 걸 테다. 그러니 이번엔 그 필기도구를 쓰고 내년 생일엔 미리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하라고 조언을 해주는 정도겠지.

 

 

이미 받은 선물을 다시 받고, 못마땅해 하는 딸과 그 상황을 모른 아빠의 모습이 대비된다.

 

 

이런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방식(?)인데, 닐은 그럴 맘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 선물이 토드를 괴롭게 만들었다면, 과감히 버리면 된다고 알려준 것이다. “이 선물은 공기역학적이어서 날고 싶어해라는 말을 꺼내며, 괴로워하지 말고 버리라고 말해준다. 아마 예전의 토드였다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꽤나 반감을 가졌을 것이고, 그런 말을 한 닐을 이상하게 쳐다봤을 것이다. 하지만 토드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동아리의 일원으로 일탈을 경험했고, 키팅 선생의 야성을 지르는 수업을 통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는 법을 알게 됐다. 그러니 닐의 말을 듣자마자 미련 없이 선물을 강에 날려버릴 수가 있었고, 언제 무거운 표정을 지었냐 싶게 한껏 밝아진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물을 버리며, 즐거워하고 있는 토드와 그를 지켜보는 닐.

 

 

이런 식의 위로 방법은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오는 방법과 동일하다. 바둑 천재 택이는 연패를 당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 택이의 모습을 봐야 하는 어른들은 얼마나 힘들겠냐?”, “때론 질 수도 있는 거야라며 일반적인 방식으로 위로를 하지만, 택이에겐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이 때 친구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위로를 한다. 택이를 보자마자 어휴~ 너 완전 깨졌다며. 동네 챙피해서 어디 다니겠냐?”, “택이 졌다며, 에라이~”, “너 발렸다며, 에휴~ 너 그래. 이때쯤 한 번 발릴 때도 됐어”, “야 지금 웃을 때냐 차라리 욕을 해 욕을~ 이런 X~ X 같네라는 말을 하며 애써 태연한 척, 괜찮은 척할 게 아니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폭발시켜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택이는 처음엔 친구들의 말에 불쾌했지만, 욕을 함께 하며 찐한 위로를 받게 됐다. 도덕 교과서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때론 욕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토드에겐 닐이, 택이에겐 쌍문동 친구들이 욕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때론 함께 욕해줄 수 있는 친구,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도록 해주는 친구가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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