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떠날 수 있는 자유와 힘을 위하여
(…)
폴짝인은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숨었다가 폴짝 나타나기도 하지요. 우물마다 그곳이 가장 안락하다고 느끼는 누군가들이 있고 그들은 폴짝인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 우물에서 폴짝 나와 다른 우물로 들어가는 이들도 있는데 그들이 다시 폴짝인이 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요. 아무튼 폴짝폴짝인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 고 나는 폴짝인인 내가 퍽 자랑스러운데 나도나도! 폴짝폴짝! 드넓은 하늘 밑에서 서로를 알아본 폴짝인들은 문자로 기록된 바 없으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폴짝인의 서(序)를 떠올리곤―
“우물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 결국 우물에 포섭되고 만다네”
뜨겁게 서로를 응원하며 폴짝폴짝, 저마다 갈 길을 갑니다. 폴짝, 폴짝폴짝, 폴짝폴짝폴짝!
-김선우, 「폴짝인입니까?」, 『문학동네』 (2023년 가을호)
떠날 수 있는 힘! 장자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자유의 소중한 의미입니다. 국가에서도,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마저 우리는 떠날 수 있습니다. 떠나면 불행할 것 같고, 떠나면 살지 못할 것 같고, 떠나면 외로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떠나본 적 없는 불행한 영혼들의 착각입니다. 떠나서 행복할 수 있고, 떠나서 살 수 있고, 떠나서 새로운 누군가와 든든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강박적으로 떠나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떠날 수도 있지만 머무는 것도 진정한 자유의 또 다른 의미니까요. 그래서 자유인의 머물기는 가치가 있는 겁니다. 억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머물고 싶어서 머무는 것이니까요. 자유롭게 떠나고 자유롭게 머뭅니다. 그래서 자유인의 거동은 여러모로 유목민과 유사합니다. 유목민이 어딘가를 떠났다면 그는 그곳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가 어느 곳에 머물고 있다면 그곳의 풀들이, 바람들이, 물들이, 구름들이, 그리고 석양의 장관이 그를 행복하게 했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 이 삶의 주인일 수 있는 곳, 자신에게 충만한 삶의 뿌듯함을 안겨주는 곳에서 자유인은 머물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체의 불만과 투정도 없이 그냥 쿨하게 떠나버립니다.
떠날 수 있는 힘이 당장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이나 떠나려 하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국가 바깥을, 사회 바깥을, 회사 바깥을, 가정 바깥을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그 순간 우리 삶은 여유로워지고 넓어집니다. 한마디로 숨을 쉴 틈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책을 읽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다른 삶, 다른 사랑, 다른 세계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타인의 말과 글을 가까이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시도, 소설도, 철학도, 음악도, 영화도 모두 바깥을 향한 우리 희망과 꿈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자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장자의 48가지 이야기들은 48줄기의 상쾌한 바람이라고 보면 좋습니다. 감옥에만 갇혀 있는 사람에게 감옥 창살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입니다. 이름 모를 작은 새의 지저귐입니다. 봄날 들꽃의 꽃 냄새입니다. 바깥이 존재한다는 느낌, 밝고 향기로운 곳이 벽 너머에 있다는 느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유일한 세계가 아니라는 느낌! 새가 비상하기 전에 가슴 가득 들이마시는 맑은 공기! 장자의 48가지 이야기가 그런 것으로 다가가기를 바라며 강연도 하고 글도 쓴 나날입니다. 질식할 것 같은 우리 이웃들의 삶에 숨을 쉴 여유를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떠날 수 있는 마음이, 나아가 떠날 수 있는 힘이 마치 새살이 돋는 것처럼 자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책의 부제는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입니다. 사실 장자의 정신을 전하는 강연과 글에 착수하기 전에 제가 다짐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 강연을 듣거나 제 글을 읽은 사람, 한 회의 강연이든 한 꼭지의 글이든 듣거나 읽은 사람은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혹은 무가치하다고, 장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용하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무용하기에 베이지 않고 거대하게 자란 나무의 지혜가 힘이 되리라 확신했으니까요. 그러나 모든 여정을 마무리하는 지금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국가에서도, 사회에서도, 회사에서도, 심지어 가정에서도 가장 외곽까지 밀쳐진 우리 이웃들에게 제 목소리와 제 글이 다가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집니다. 버려졌다는 느낌에 위축되고 외로운 사람들, 그래서 마음을 걸어 잠그기 쉬운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의 귀에 장자의 목소리가 그들의 눈에 제 글이 들어올 수 있을까요. 아무도 우리를 쓰지 않으니 이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반전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밀쳐난 중심부에 대한 향수를 접고 과감히 등을 돌려야 합니다. 지배에의 의지와 복종에의 욕망이 끓어오른 곳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리석고 서글픈 일이니까요. 밀쳐졌기에 중심부를 보호하는 알량한 벽에 이른 겁니다. 이제 한 걸음이면 전혀 다른 삶이 열릴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겁니다. 중심부에서 권력과 부를 거머쥔 사람들이 결코 하기 힘든 일입니다. 자유와 사랑의 길!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는 이렇게 울려 퍼지게 됩니다.
모든 여정을 마무리할 때쯤 제 눈에 시 한 편이 들어왔습니다. 소요유의 유목민적 상상력, 대붕으로서 장자가 말하고자 했던 자유인의 정신을 멋지게 포착한 시입니다. 지배와 복종, 당근과 채찍, 이익과 손해, 경쟁과 질투가 지배하는 세계가 유일한 세계라고 믿는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습니다. 심지어 이 우물 안에 적응해 지배와 복종, 당근과 채찍, 이익과 손해, 경쟁과 질투를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기까지 합니다. “우물마다 그 곳이 가장 안락하다고 느끼는 누군가들이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서 희망을 찾으려는 시인의 애정이 눈에 띕니다. 개구리는 폴짝폴짝 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요. 우물 밖으로 바로 나가지 못할지라도 폴짝폴짝 뛰는 만큼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집니다. 바깥에 대한 감각과 희망은 이로부터 조금씩 자랄 수 있을 겁니다. 분명 개구리는 자기도 모르게 우물 중심부가 아니라 도약하기 쉬운 우물 안 가장자리로 옮겨 갈 겁니다. 밀쳐졌다는 절망이 아니라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우물 중심부에서는 아무리 물이 적어도 폴짝 뛰기는 힘들 겁니다. 물이 늪처럼 개구리의 도약을 방해할 테니까요. 우물 안 가장자리로 밀쳐진 개구리는 여러모로 운이 좋습니다. 물이 깊지 않아 폴짝 뛰기도 용이할 뿐만 아니라 도약하게 받쳐주는 돌들이 있기에 더 높이 뛸 수 있을 테니까요.
우물 안에서 바라본 하늘만이 하늘인 줄 알았던 개구리지만, 그들은 폴짝폴짝 뛰다가 우물 바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마침내 우물 밖으로 나간 개구리들은 알게 될 겁니다. 우물이 자신을 보호해준 것이 아니라 감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늘은 우물 입구 모양이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 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메추라기가 아니라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대붕이 된 셈이죠. 그렇지만 개구리는 그 광대한 하늘과 대지에 무서움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축축한 공기와 좁은 하늘에 이미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졌으니까요. 자유와 사랑의 삶을 감당하기에 아직 너무 여린 개구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한 우물에서 폴짝 나와 다른 우물로 들어가는 이들도 있다”고 말입니다. 인간이 주어진 자유를 거부할 수도 있다. 는 사실을 통찰한 시인의 서글픈 섬세함입니다. 그렇지만 시인은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그들이 다시 폴짝인이 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요.”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가도 여전히 폴짝거릴 개구리입니다. 그리고 이미 우물 바깥의 큰 하늘과 넓은 대지를 보아버린 개구리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굳은 마음을 다시는 우물 안으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마음을 가지고 폴짝 뛰어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인은 개구리들 모두가 우물 안에서 빠져나올 날을 너른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처음 빠져나와 당당히 폴짝거리는 개구리들도 있고, 한 번 혹은 두 번, 아니면 세 번 우물을 들락거린 개구리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개구리들의 힘, 그 폴짝거리는 힘이 지속되는 한, 개구리들 모두는 폴짝인이 될 겁니다. “아무튼 폴짝폴짝인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고 나는 폴짝인인 내가 퍽 자랑스러운데 나도나도! 폴짝폴짝!” 바로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국가에서, 사회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밀쳐졌다고 해서 풀이 죽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그 밀쳐진 가장자리에서 폴짝폴짝, 과거보다 더 즐겁고 유쾌하게 폴짝폴짝 뛰어야 합니다. 분명히 모든 우물과 단절하는 그날이 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독한 길이 결코 아닙니다. 광막한 하늘과 대지를 감당할 만큼 충분히 성장하면, 우리는 주변에 수많은 자유인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드넓은 하늘 밑에서 서로를 알아본 폴짝인들”은 합창을 하게 될 겁니다. 개골개골! “우물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 결국 우물에 포섭되고 만다네!” 그러고는 광활한 대지를 거침없이 폴짝거릴 겁니다. 폴짝 인들 사이에는 지배와 복종 관계가 없습니다. 그들의 폴짝을 이끄는 사람도, 그리고 누군가의 폴짝을 따르는 사람도 없으니까 요. 그래서 「폴짝인입니까?」라는 멋진 시는 “뜨겁게 서로를 응원하며 폴짝폴짝, 저마다 갈 길을 갑니다. 폴짝 폴짝폴짝 폴짝 폴짝폴짝!”이라고 마무리되는 겁니다. 개골개골!
대붕보다 폴짝인이 장자의 자유정신을, 그리고 책과 강연의 취지를 더 멋지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대붕은 너무 압도적인 것 같고 너무 높은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 바라보기만 해야 할 존재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폴짝인이라는 시어는 매력적입니다. 무언가 친근하고 귀여워 위화감이라고는 전혀 없으니까요. 장자도 폴짝인이고 저 강신주도 폴짝인입니다. 우물 안과 바깥을 오가며 개골개골거리는 폴짝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우물 안이든 바깥에서든 폴짝거리고 있는 폴짝인일 겁니다. 자유와 사랑을 노래한 장자의 소리를 강신주는 더 근사한 톤으로 노래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의 목소리로는 구석구석 외롭게 폴짝거리는 이웃들에게 가닿기에는 역부족 입니다. 다행히 함께 개골개골 울어주는 폴짝인들이 제 곁에 있었습니다. 더 크고 더 우렁차고 더 매력적인 합창이 그래서 가능했던 겁니다. 제가 지쳐서 폴짝거리지 못할 때, 옆에서 폴짝폴짝 뛰어준 사람들입니다. 다시 제가 힘을 내 폴짝거릴 수 있었던 힘입니다. 제가 목이 아파 개골개골하는 소리가 낮아질 때, 제 낮은 소리에 보태듯 저보다 더 크게 개골개골 울어주신 분들입니다. 당연히 저도 목청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 그 고마운 폴짝인들의 이름을 기록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강연과 녹화는 한강 야경이 아름다웠던 마포 어느 북카페에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밤에 진행되었습니다. 식사도 거르며 강연장을 찾아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폴짝인들,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고향도 사는 곳도 겹치지 않은 분들입니다. “뜨겁게 서로를 응원하며 폴짝폴짝, 저마다 갈 길을 가는” 멋진 폴짝인 들입니다. 김수연, 김영숙, 박미경, 정송은, 김정희, 지서현, 박경태, 강수정, 고광희, 권영준, 기민화, 김견민, 김동혁, 김모영, 김문숙, 김미나, 김민경, 김민지, 김성민, 김수진, 김신희, 김우정, 김정은, 김지현, 김지혜, 김태형, 김현지, 김혜린, 남선우, 남지 원, 문정미, 박상훈, 이연경, 박성혜, 박영순, 박은주, 박정현, 박 지혜, 박혜경, 박희준, 성지은, 김아, 오다연, 오영옥, 오주상, 오 지훈, 오훈성, 우미숙, 우선희, 원혜경, 윤미경, 윤진규, 염주은, 윤하나, 이경선, 이경애, 이명화, 이미, 이윤정, 이주희, 이지아, 이진성, 이현아, 이혜진, 임혜경, 전한숙, 정연미, 정유선, 조선영, 조윤기, 진형준, 최기범, 최선경, 최예원, 최지원, 최현순, 함형우, 허은정, 이설자, 박숙자, 김민정, 안상현, 이혜자, 엄태인, 이기호, 윤영필, 도왕자 기록하지 못한 폴짝인이 있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혼자서 폴짝거리며 개골거리는 강신주를, 이 보잘것없는 철학자를 선생으로 대우해주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하고 다니는 행색마저 천둥벌거숭이인 저를 아들마냥 챙겨주시는 너그러운 폴짝인들이죠. 앞으로도 폴짝폴짝 개골개골 멋지게 사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매주 두 번 북카페를 근사한 스튜디오로 만들어주신 폴짝인들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한두 시간 먼저 도착해 강연과 녹화 준비를 하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녹화가 끝난 뒤 늦은 시간까지 스튜디오를 다시 북카페로 돌려놓느라 분주했던 모습에 마음이 짠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강연장 준비하랴, 녹화하랴, 그리고 편집하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시청자분들이 강연을 흥미진진하게 보았다면 그건 모두 이들 헌신적인 폴짝인들 공입니다. 한송희, 박하늬, 박태립, 최성실, 신채원, 윤기성, 임완식, 김택준, 김용백, 임영훈, 고병윤. 이분들이 이 책 초고의 최초 독자라는 것도 제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장자와 강신주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함께했던 시간, 제게도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에필로그로 마무리되는 지금 이 책과 함께했던 소중한 분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유열, 김광호, 오정호, 이주희, 박혜숙, 최재진, 이현정, 박민주, 전상희, 김마리. 제 기억에 남을 책을 선물해준 고마운 폴짝인들, 독자들도 이 책과 함께 폴짝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분들입니다. 함께 폴짝하고 개골거렸던 폴짝인들이 많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장자와 강신주의 목소리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구석구석 외롭게 폴짝하는 이웃들 혹은 잠시의 기소침해하는 분들에게 상쾌한 자유의 공기가 조금이라도 도달했다면, 우리 폴짝인들의 합창이 그만큼 근사했다는 증거일 겁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아무튼 “폴짝인의 역사는 이렇게 계속될 겁니다.”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폴짝폴짝! 개골개골!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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