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닫는 글: 이제는 취할 시간이다
인의 존재가 되어 총기 가득한 눈망울과 드넓은 포부로 삶의 우연을 긍정하게 되었다면, 이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 내가 ‘돌베개 출판사’와 『탐욕의 제국』, 『다이빙벨』과 마주쳐 공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인의 존재가 된 그대 또한 새로운 관계들과 마주쳐 인연을 만들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인이 된 그대들, 취하라
홍리경 감독처럼 ‘다수의 목소리에 묻힐 수밖에 없는 소수의 처절한 외침’에 귀를 기울이려는 공감능력을 지니든, 이상호 감독처럼 ‘77분의 고급화된 욕’을 통해 ‘문화적 짱돌’을 던지려는 삶의 적극성을 지니든, 자신이 인의 존재로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면 된다.
취하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 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런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게 위해서
당신은 쉴새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혹은 당신의 방 안에 우물 안 고독 가운데
당신은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 버리거든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샤를르 보들레르, 「취하라」
『미생』이란 드라마의 13회 엔딩 장면에서 나온 시다. 2년 계약직 신분인 주인공은 정규직과의 극심한 차별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좌절해 있을 때, 그의 상사가 써준 크리스마스 카드의 ‘더할 나위 없었다. YES!’라는 문구를 보고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그 위로는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자신이 좌절했던 과거의 모든 순간을 위로해 주는 메시지이기에, 카드는 그 순간들을 날아다니며 위로해준다. 이 때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바로 위의 시다.
핵심은 바로 취하라는 것이다. 취하는 건 내맡김이며, 빠져듦이며, 상황에 몰입하려는 적극성이다. 인연을 만들고 싶은 자 인이 되어 내맡기고, 빠져들며, 몰입하라. 그러면 모든 것들이 그대에게 다가올 것이고 또 다른 인연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그대는 인의 존재가 되기 위해 취하고 또 취해야 한다.
▲ 인이 된 자여 내맡기고, 빠져들고, 몰입하라.
글을 마친 소감
원래 이 글은 마주침이란 주제로 ‘돌베개 출판사’와 『다이빙벨』이란 영화만을 다루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 번에 올릴 정도의 글을 쓰려 했던 것이다. 『탐욕의 제국』은 『다이빙벨』이란 챕터의 소제목 정도에 불과했고 『다이빙벨』은 영화에 대한 후기만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쓰다 보니 글의 방향이 확장되어 가며, 이런 저런 얘기가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글인 셈이다.
글이란 써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글쓴이의 원래 의도와는 다른, 또 다른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스스로 살아 움직이고 확장되며, 새로운 것들과 마주치며 분기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인연이 있어 마주치며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듯이, 글도 다양한 내용들과 공명하며 글쓴이의 의도를 넘어서서 변해가는 것이다. 그쯤 되어서 ‘애초에 내가 쓰려던 글이 이게 아닌데??’라고 한들 아무 소용없다. 이미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니고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이 새로운 인연들과 부딪혀 확장될 수 있도록 글쓴이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써나가면 될 뿐이다.
어쨌든 생각보다 훨씬 길어진 글을 마치니 홀가분하다. 오늘은 신나는 목요일밤이 될 거 같다. 모두 즐거운 저녁이길.
▲ 돌베개출판사와 탐욕의 제국, 다이빙벨, 나에게 좋은 인연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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