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부를 벗어나 공부를 하게 되다
2016년 11월의 한국은 일대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토요일이면 데이트도 해야 하고, 푹 쉬기도 해야 하고, 놀러도 가야 함에도 벌써 5주째 광화문 광장에 모여 시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20만명으로 시작된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는 5주차에 이르러 날씨는 훨씬 추워졌고, 첫눈까지 내리는 굳은 날씨였음에도 150만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분명 우린 한국에 살면서 매번 ‘무언가 잘못됐다’, ‘살기에 너무 팍팍하다’, ‘하시고 편할 날이 없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게 선뜻 무엇이 잘못인지,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말하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잘못된 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났고, 그에 격분한 시민들이 광화문에 나와 “박근혜 하야”를 외치게 되었다.
▲ 매주 토요일마다 사람들은 광화문에 나오고 있다. 추운데도 힘든데도 긴 싸움이 되고 있다.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내 생각에 고립되다
지금의 사태는 누가 봐도 명백히 보이는 문제이기에 사회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사람도 광화문에 모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한다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 [다큐3일]의 한 장면. 정권 초기엔 국민대통합을 외쳤는데, 하지 못하다가 정권 말기에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말았다.
그런데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집회나, 2004년 노무현 전대통령 탄핵촛불 집회나, 2002년 효순미선 집회는 그렇지 못했다. 거기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명백히 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념대립까지 가세하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정치선동’으로 낙인찍히기 쉬웠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만 보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역사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 자리에 함께 참여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참가해본 집회는 전주 오거리에서 열린 2008년 쇠고기 집회 때였다. 그전까지는 사회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나 혼자 살기도 버겁다고만 생각했었다. 서당을 다니며 『사자소학四字小學』을 배우며 한문을 공부하게 된 이후에 『소학小學』까지 배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충효忠孝(學優則仕, 爲國盡忠 - 배움이 가득차면 벼슬에 나가고,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다)와 같은 전통적인 가치만을 강화하는 ‘전통적 가치의 공부’였을 뿐이었고,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들은 단순히 시험성적을 잘 받아 좋은 학교에 가서 성공하기 위한 ‘학교화된 공부’였을 뿐이었다. 그때도 열심히 공부했고,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매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을 좁히고, 성공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 2008년 5월 10일에 전주 오거리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진규와 함께 나간 게 처음이었다.
깨져야만, 무너져야만, 앎의 무가치를 알아야만 생각이 확장된다
그러던 2006년에 진규와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나의 기반이라 생각해왔던 기독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늘 ‘나를 이렇게 일으켜 세우고 늘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 분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다 바쳐도 좋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대학생 때 만났던 여자 친구는 오죽했으면 “기독교를 믿지 않는 건 어때?”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 말 속엔 하나의 가치만을 진리로 추종한 나머지 다른 것엔 무관심하고, 심지어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무관심하다는 비난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엔 그 말뜻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건 이미 내 삶의 기반이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어서 그걸 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되거든. 그러니 절대로 그럴 수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것이다. 이런 대답을 흔히 ‘동문서답東問西答’이라 한다.
하지만 2006년의 종교 논쟁은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게 진리라고만 믿어왔던 것들에 수많은 의문을 던지게 했으며, ‘절대 진리이니 그냥 믿을 뿐이야’라는 게 얼마나 큰 착각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그 친구와 얘기하면서 열심히 기독교를 믿어왔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내 자신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 기독교엔 한 때의 추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
기독교가 나에게 반공부의 깨달음을 주다
그래서 그때부터 도올 선생의 『요한복음』, 『기독교 성서의 이해』와 같은 책들을 읽으며, 성경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 친구와 논쟁이 붙었을 때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 ‘좀 더 공부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였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순히 ‘성경=절대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하더라. 66권의 정경확정正經確定이야말로 정치적인 사건이자, 신의 계획하심이 아닌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사건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건 나에겐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지금까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만 굳게 믿어왔는데,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고 정치적 견해가 반영되어 정경正經과 외경外經을 나누고, 정경에만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나를 사정없이 흔들었으며, 지금껏 나의 기반이라 여겨왔던 기독교에 대한 모든 관념들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아노미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 카톨릭은 73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기독교는 66권만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지금까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해방감이 느껴졌다. 지금까진 단순히 ‘절대 진리’라고만 생각했고, ‘공부는 그런 것과는 별개로 현실의 욕망만을 채우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여러 책을 읽고 공부를 해보니,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이 사상누각처럼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며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재밌는 점은 혼란스러운만큼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깨달아가는 재미가 깨닫게 됐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여태껏 해온 ‘전통적 가치의 공부’나 ‘학교화된 공부’는 반공부反工夫에 가까웠던 것이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죽은 시인의 사회]의 장면. 누구나 학생인 이상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건 '학교화된 공부'일 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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